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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패는 처음부터 노출되어 있다.
 

치아즈(탕웨이 분)가 이(양조위 분)에게 접근하여,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다.
대학의 친구들과 함께 벌인 치기어린 '쇼'로 한번,
3년 뒤 반군 조직에 의해 보다 철저히 준비, 위장된 '작전'으로 한번.


 

 첫번째 접근에서는, 그들의 정체가 금세 탄로나리라는 것이 쉽게 예측된다.

그들은 그저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고,

돈 좀 있는 집 자식인 한 친구의 비상금을 털어

어쭙잖게 도모한 '결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치기어림, 어쭙잖음으로도

그나마 치아즈와 이의 단독 만남까지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치아즈의 매력의 힘이었다.

이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자태에 현혹되어

그녀의 패거리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런 연극에 한 꼭지 출연해 놀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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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연극은 이의 갑작스런 상해로의 귀국으로 금세 막을 내린다.

그리고 그들의 연극이 이의 부하이자 광위민의 동향 선배였던 조덕희를 통해

얼마나 허술한 애들 장난이었는지가 밝혀진다.

치아즈 패거리는 조덕희를 우발적으로 죽이면서

해산되고, 3년이 흐른다.



3년 뒤, 그동안 중경정부의 첩보단 조직에서 일하게 된 광위민이 다시 치아즈를 찾아온다.

그는 그녀에게 3년전의 계획을 다시 한번 실행해 볼 것을 권유하고

치아즈는 이를 수락한다.

그녀는 중경정부 조직의 오와 만나 이에게 다시 접근할 방법에 대해 학습을 받고

그녀의 신분도 막부인으로서 좀더 철저하게 위장된다.

재회한 이와 치아즈는 3년 전에 못 다한

서로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밀회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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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역시, 그녀의 신분은

너무도 쉽게 이의 부하들에 의해 노출되어버린다.

다만, 그녀에게 빠져있는 이에게 보고만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치아즈의 정체는

'첩보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쉽게 발각된다.

즉, 그녀의 '첩보'는 처음부터 실패였다.



조덕희와 이의 부하가 치아즈와 그녀의 조직에 대한

조사 결과를 줄줄 읊는 장면들은

그녀의 '임무'와 '소명'이란 것이

얼마나 하릴 없이 파괴될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줘서

허탈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중경정부의 첩보원이 사랑(욕망)때문에

자신의 임무를 '포기한다'는 내용이라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사전 정보는 조금 잘못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됐다.



처음부터 치아즈에게 주어진 선택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이나 국가(민족)의 강요에 따라

이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자신의 임무를 지키거나 포기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녀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 끼고

이에게 '가요...어서 도망쳐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러면 그는 죽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살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가 암살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죽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미 이의 조직에서는 그녀의 정체와 그녀 관련 조직단에 대해

모두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이가 죽은 뒤에 그녀의 단체 역시 모두 체포, 처형되었을 것이다.

이가 소속된 왕정위의 정부는 그녀의 조직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잡아들여 처리할 수 있을만큼

훨씬 철저하고 치밀한 조직과 정보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녀를 계속 감시하고 주시하면서, 그녀가 무슨 짓을 벌이는지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 놓고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첩보'나 '암살' 등을 목표로 한 한 여자의

국가적 차원의 행위, 결의를 다룬 영화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부분에 있어서 치아즈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1938~1942년, 항일, 반제, 애국 등의 시대적 배경은 그냥 이 영화를 화려하고 심오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적당한' 외피에 불과하다.



나에겐

"원수인 한 남자에게 응징을 하기 위해 접근한 한 여자가

그와 만나면서 결국 사랑을 하/믿게 되는 과정"

이라는 편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더 적절한 독법으로 보였다.



2. 그 남자, 그여자

남자,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일반적인 사랑'의 문법으로만 대했다.

다만, 자신의 상처와 삶의 방식 때문에

표현 방법이 때때로 거칠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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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집에 놀러온 그녀와 말을 섞고,

비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돌연 한 우산을 쓰게 되면서 가슴떨려하고,

그녀의 연락처를 외워 그녀와의 데이트를 즐기고,

자신의 일때문에 3년간 소식을 모르다가 다시 만나자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고,

영화를 보러가는 그녀를 납치하듯 데려와 '당신을 가지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야?'라며 가학적인 섹스를 하고,

그녀가 홍콩으로 돌아갈 지 모른다는 사실에 초조해하며 그녀의 침실로 들어가 정사를 나누며

아무도 믿지 않는 것 만으로 지켜온 자신의 목숨이지만 그녀의 말만은 모두 믿겠다고 말하고,

바쁜 일들 속에서도 그녀 생각때문에 일에 집중하질 못해 괴로워하고,

그녀의 위로와 그녀가 불러주는 "우린 영원히 함께 하리이다"란 노래를 부르며 잡아주는 손 앞에서 눈물을 짓고,

그녀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며, '반지 따위는 관심없어, 반지를 낀 당신 손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의 감정은 언제나 솔직하고 명료했다.



문제는 여자, 치아즈이다.

그가 저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공식대로' 사랑에 빠져들고 있을 동안

치아즈는 자신의 정체성때문에 그 말들을 오인하기도 하고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의 행동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인지,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닌지,

그가 자신의 정체를 파악해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인지

늘 확신이 서지 않아 두려워한다.



이 불안과 불신을 어떻게 넘어서서

치아즈 역시 그의 사랑을 '믿게' 되는가의 과정이

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3. 놓아라, 다이아몬드가 그리 좋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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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안과 불신을 일거에 소거해 버린 것은 반지, 다이아몬드였다.

이것 때문에 혹자들에게서는 이 영화가(혹은 치아즈 캐릭터가)

"왜 다이아몬드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그 남자에게 넘어가느냐?" 또는

"다른 건 다 안되고, 다이아몬드에 넘어가는 게 사랑이냐?"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또한 "결국 여자한테 사랑이란 다이아몬드와 섹스 아니냐"는,

좀더 냉소적인 말로 그녀의 감정의 '이동'을 이해해주는 축도 있다.



그러나 반지는 값비싼 물질이어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다.

그녀가 그 반지 앞에서 마음을 바꿔 먹은 이유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이 설명해 준다.



마작을 함께 하던 이의 부인이 이에게 "지난번에 사달라는 다이아도 안사주고"라며 핀잔을 하고

이는 "다이아도 돌덩이인데 그런 거 끼고 있으면 마작 패도 못들걸"이라며

아내에게는 다이아몬드 선물을 해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치아즈에게도 말했듯 다이아몬드 따위는 관심이 없으며, 그것은 돌덩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끼고 있어봐야 생활하기에도 불편하기만 한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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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치아즈에게는 선물하고, 그걸 낀 그녀의 손이 보고싶다는 소박한 진심 때문에,

그 '비실용적'이고 비싸기만 한 6캐럿짜리 비둘기 알 반지를 그녀에게'만' 안긴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런 귀한 걸 끼고 거리로 나가기가 두려워요"라고 말할 때

"내가 함께 있어주잖아"라며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확신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다이아몬드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일이었다면 어떤 것이든

그녀는 그를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다이아몬드'였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에게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의 확인,

그리고 오랜 세월 고독과 두려움에 길들여진 자신과 함께해 주겠다는 그의 약속이었다.



감독이 다이아몬드라는 상징적인 '물질'로

치아즈 감정이 고조되는 정점을 만들어 낸 것은 어떤 점에서 무척 손쉬운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낼 감정의 '불순'에 대한 오해를 덜기 위해

영화의 도입을 '다이아몬드'에 관한 대화로 시작했던 것은 나름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4. '시작'과 '확신'의 지점?

그러나 '다이아몬드' 지점은 그녀가 그의 사랑을 믿게 되는 지점이지,

그녀가 그를 사랑하게 되는 지점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훨씬 이전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을때, 그 사랑이 언제부터인지를 더듬어보는 것 만큼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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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 걸 본 순간 반했다, 식의 말을 하기 좋아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사후적으로 만들어 낸 작위적인 낭만 모멘트일 뿐

감정의 기점같은 건 찾기 어려운 법이다.



치아즈에게 있어 이를 사랑하게 된 순간은

어쩌면 1938년 처음 만나 인사만 나눈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날 돌아와서 치아즈는, 원래 피우지 않던 담배를 아주 익숙하게 꺼내 물고,

이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 친구에게 "살짝 봤는데...상상했던 거랑은 다르더라"라는 말 한마디에서

이미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짐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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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와 함께 빗속에서 우산을 쓰게 되었을때, 함께 양복을 맞추러 갔을 때, 함께 식사를 할때,

처음 섹스를 했을 때, 섹스 도중 절정에 올라 울부짖게 됐을 때, 그의 눈물을 보았을 때...등

그 어느 순간일 수도 있다.

그녀의 감정이 움직였음은 오와 광위민 앞에서

자신이 그에게 마음까지 빼앗기고 있음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이미 확실해졌다.

그녀는 다이아몬드 사건 이전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며,

다만 그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해 자신의 마음도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다.



따라서 다이아몬드 씬은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는 첫 지점이 아니라,

치아즈가 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마지막 지점이다.



 이가 그녀의 말을 듣고 반지 상점에서 뛰쳐 나와 도망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부하로부터 그녀 일당의 정체에 대해듣고

화를 내며 그동안 왜 보고하지 않았냐고 묻자 부하는,

"그건...두분 관계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아서..."라고 답한다.

그리고 "물론...지금은 확실해 졌고"라는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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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하가 확신하지 못한 '두분 관계'란 무엇인가?

제3자의 눈에서 볼 때,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임에도,

그들의 관계는 '정치적 게임'의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었을까?

'첩보'의 문제로만 접근하기엔

이도 치아즈도 '감정'이 너무 강렬해 보여서

어쩌면 '적대'관계가 아닐지도,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서

그녀에 대한 보고를 미뤄뒀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은 확실해' 진 것은

명백한 암살계획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5. "욕망, 그 위험한 色, 신중, 그 잔인한 戒"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정치 게임'이 아니라 '사랑게임'으로 점철된 영화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 제목이 말하는 '색'과 '계'는

사랑이라는 개인적 욕망의 '색'과

국가, 이념, 정치 등이 강요하는 룰의 '계'의 충돌로도 볼 수 있지만,

사람이 사랑을 할 때 촉발되는 욕망(색)과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지/인지하지 못하는 사랑의 룰(계)로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두 사람을 항상 불안하고 두렵게, 그러면서도 지독한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 드러냄/인지를 힘들게 하는, '신중함'에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랑은 언제나 그 '신중함'때문에

유지되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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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쾌락의 역설'이다.

모든 욕망이 너무 쉽게 충족되면, 쾌락의 역치는 점점 커진다.

그것은 결국 욕망을 사그러들게 만들고, 사랑을 끝장내게 한다.

그러나 반대로 지나치게 충족되지 않는 욕망은 쾌락을 주지 못하므로

점점 지치게 만들고, 욕망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와 치아즈가 그렇게 치명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욕망(색)과 신중함(계) 사이에서의 줄타기를 잘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줄타기를 가능하게 한 힘은 자신들의 신분-정체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까지 부인할 순 없다.)

양자 사이의 균형이 깨지고, '계'를 포기하는 순간

'색'은 두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다.



죽은 치아즈도, '일단은' 살아남은 이도

그들의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더 살아가야 하는 이의 고통이 심할 수도 있다.

그는 믿어의심치 않았던, 그래서 확인하려 들지도 않았던

치아즈의 사랑을 이제부터 다시 되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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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을 사랑했던 것일까,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뿐인것일까.

그녀가 마지막 순간 자신을 도망치게 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까지 철저히 자기 신분을 속이고, 암살계획의 현장으로까지 자신을 이끈 것은

그동안의 관계가 모두 거짓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게 하기도 한다.

또한 그런 그녀를 자신이 처형하도록 명령해 죽였다.

이 삼중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의 운명은,

(물론 1945년 뒤에는 어쩜 살아있기도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사랑을 믿으며 죽을 수 있었던 치아즈보다 훨씬 가혹할 것이다.




6. 덧붙여-

이 영화는 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이라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두 개의 기승전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38년 이야기/ 1941년 이야기

두 개의 닮은 꼴 이야기가 각각 완결된 기승전결을 지니고 있으면서

첫번째보다 두번째에 모든 것의 강도를 높여놓았다.

그러나 기본 틀은 두 개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

이것이 이영화의 재미난 특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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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 이야기에서

이와 치아즈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가 하는 말,

"입고 계시오."와 "끼고 있어"는

그의 그녀에 대한 감정과 그것의 표현방식을 보여주는 말이어서

짧지만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또한!!!!

절대 잊지 못할 것은

이 영화 속 양조위의 눈빛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찍은 영화속의 삶을 진실로 살아낸 것은 아닐까 싶을만큼

그 상처와 외로움이 나이와 함께 체화된 듯한 그 눈빛, 표정은

이 영화가 주는 최고의 매력이다.



다시 양조위가 출연한 영화들을 찾아서 다 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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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중국, 색계 실제 주인공 사진전

    2008/01/12 21:31 | TRACKED FROM China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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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ㅁㅎ 2008/01/09 18:03

    재밌는 글이네요. 같은 이유로 저 역시 양조위 씨가 출연한 영화를 다시 죽 훑어보고 있습니다.

    • BlogIcon coolya 2008/01/09 19:39

      앗, 감사합니다...
      글이 길기만 길고, 얘기가 산만하고 두서없어서
      사실 쓰고 나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는데, 감사함미당.
      양조위, 쵝오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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