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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살에 대해서 '그러할 용기로 살아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겠는가'를 아쉬워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다르다.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어느 아줌마 조문객이 대한문 노대통령 분향소에
남긴 고인에 대한 글이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글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나는 한참을
의아해 했다. 그리고는 이 말이 우리가 요즘 거의 듣지도 하지도 않는 말이라는 것을 곧 깨달
았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잘 살 것'을 요구해왔지 '똑바로 살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행여나 자식들
이 옳은 길을 가다가 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어른들의 마음
과 가슴을 장악한 지배이데올로기였다.

무언가 잘못한 사람의 부모들에게 '당신,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쇼!'라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집
으로 돌아와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식들이 기회를 잘 타고 시험을 잘 보고 '잘난 친구'들을
 사귈지를 걱정하였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죽음은 이 아줌마 조문객이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겠다'라는 결연한 의지
를  글로 남기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 학부모가 이런 글을 스스로 남기도록 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들이 그 이름도 후세에 전하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에 스러져가는 동안 일제와 결탁하여 치부한
 자들이 반민특위의 위기를 돌파하고 다시 군사독재시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도
층'으로 자리잡았다. 그 뒤틀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옳은 것'을 자신있게 주장할 용기를 잃어갔
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용기의 부재를 성숙함으로, 조직성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타인의 말에 반대를 하는 것은 너무 쉽게 '빡빡함'으로, 조금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에 대한 반대는 '버릇없음'으로 여겨졌다. 누구나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고 수군
거리면서도 사법제도를 바꾸려다 '손해'를 보려는 사람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기기 위해 법을 회
피하는 기술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왕따'를 무릅쓰고 고집스럽게 추구
하였다. 누구도 3당 합당 때의 그처럼 수많은 동료들을 버리고 신념을 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이다.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하던 시절의 노무현을 서울대 출신 386운동가들마저도 왕따시킬 때 노무
현은 '친구들을 사귀려고' 원칙을 굽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대통령 취임을 통해 우
리 역사 속에서 흔치 않은 '사필귀정'을 실현해 보였고 자신의 취임 일성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
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서 가려던 길을 갔다. 그 길은 노 대통령 영결식의 와중에도 경영권 편법
상속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사회의 '주류' 그리고 법원이 방패가
 되고 검찰이 창이 되어 지켜주던 '주류'에 대한 '거부'의 길이었다. 예상치 못한 개인적 비리 의
혹으로 자신이 가려던 길이 막히자 그는 생명을 내던지며 그 길을 뚫었다.

운동권과 노동계의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저항'하였지만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도리어 '제발 너는 저렇게 되지 말아라'며 자식들이 불의에 눈감고 살기를 바랬다.

노 대통령은 죽음으로 학부모들에게 각인시켰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지금부터라도 당장 자식들에게 '잘 살기'를 가르치던 것을 중단하고 '올바르게 살기'를 가르치
기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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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롭게 묵비권을 행사할 자유

2009/06/04 08:38 | Posted by <소문> 편집실

검찰수사 도중의 ‘자살’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검찰수사가 형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검찰수사가 형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영장주의와 자기부죄거부권이 존재한다. 영장주의란 체포, 구속, 압수수색과 같은 개인의 신체적 자유나 사생활의 제약은 수사기관과는 독립된 법관이 ‘범죄수사에의 필요성’이나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 등을 영장을 통해 인정한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헌법적 원리이다.

묵비권은 헌법적 권리
자기부죄거부권이란 피고나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헌법적 권리를 말하며 소위 ‘묵비권’으로 불리워진다. 이 권리는 피의자의 신체적 자유나 사생활의 절차상의 보호를 넘어서 훨씬 더 섬세하고 실체적으로 피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한다. 즉 피의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진술강요도 용납되지 않아 강압적이거나 다른 권리침해가 없어도 불법이 되며 이를 통해 취득된 진술은 증거력이 부인된다. 기실 진술이라 함은 뇌와 입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물리적인 강제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진술은 자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요행위가 합법적인 영장에 의한 구금 하에서 이루어졌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자기부죄거부권도 검찰이 강압적인 신문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규범으로 작용한다. 묵비권의 보호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예컨대 미국에서는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묵비권을 선언하면 모든 신문은 중단된다. 이때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 신문을 통해 취득된 진술은 모두 증거력이 거부된다.
뿐만 아니라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였다는 것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은 물론 피고의 묵비권 행사는 사회적으로도 비난받지 않는다. 입증에 대한 책임은 검찰이 가지고 있고 피의자는 자기파괴에 이르는 입증에 협조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든 피의자신문은 피의자가 진정으로 원할 때만 이루어진다. 결국 피고가 검찰에게 진술을 하는 경우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검찰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의 죄과를 줄이려 할 때뿐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전혀 피의자의 진술에 의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증거를 취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검찰, 법원 그리고 언론이 영장주의와 묵비권을 보장하는 사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검찰은 우선 노대통령의 입을 통하지 않고 ‘포괄적 뇌물죄’의 증거들을 독자적으로 찾아야만 한다. 물론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215조 상의 ‘범죄수사에의 필요성’을 입증한다면 봉하마을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압박의 정점이 된, 김해에서 서울에 이르는 수 시간에 이르는 버스여행 뒤에 다시 새벽 5시에 돌아오는 형벌과도 다름없는 수사는 없었을 것이다.

출두거부도 문제 안돼
물론 검찰이 노대통령이 출두요구에 불응한다면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 상의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를 입증하여 체포와 같은 더욱 강제력 있는 수사도 가능하였을 것이고 (구속영장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으므로 발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바로 이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노대통령은 굴욕적인 검찰출두에 동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가상사회에서는 노대통령은 출두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포영장의 발부가능성이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실제로 정당하게 영장을 받아낼 정도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필자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리한 증거는 모두 공개해왔던 검찰의 관행에 비추어 그러한 증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노대통령은 출두거부에 대해 아무런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누구도 이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아무것도 입증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비극이 ‘명예롭게 묵비권을 행사할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빈다. 물론 ‘기회’라는 말을 붙이기에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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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온라인글쓰기, 운전만큼 위험한가?

2009/05/13 16:50 | Posted by <소문> 편집실
구글이 유튜브의 게시 기능을 없애면서까지 실명제 적용을 거부하였다. ‘익명성이 웹의 정신’이라는 말은 틀렸다. 많은 카페나 웹사이트들이 이용자들 사이의 자발적인 약속에 따라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에 확대실시된 실명제는 강제적이라서 문제이다.

국민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국가에게 공개하지 않을 사생활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국가는 형법 215조와 같은 “범죄수사에의 필요성”과 같은 특별한 공익이 있는 경우에만 사생활 및 사적인 정보의 공개를 강제할 수 있다. 신원 공개도 마찬가지다. 불심검문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떳떳하면 왜 실명 등록을 못하는가’라고 다그치는 실명제 찬성자들도 길거리를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신원 공개를 요구당하면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불쾌해할 것이다. 인터넷실명제 반대자들의 심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기통신사업법 54조에 따라 포털들이 모든 게시글에 붙어 있는 실명을 영장도 없이, 게시자에 대한 고지도 없이 수사기관들에 넘겨주고 있어, 실명이 스크린에 떠 있지만 않을 뿐 글쓰기를 할 때마다 실명을 국가에 등록하는 ‘순수 실명제’라고 봐야 한다.

물론 강제적 실명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부동산실명제와 금융실명제는 사기 및 탈세의 위험성 때문이다. 자동차에 번호판을 달도록 하는 것은 자동차의 파괴성과 이동성 때문이다. 청소년 유해물을 보는 사람에게 성인 인증을 위해 주민번호를 강제하는 것도 이를 청소년이 보았을 때의 유해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자동차 운전, 금융거래처럼 위험한 행위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익명의 글쓰기는 도리어 사상의 전파라는 공익적 구실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위험’이 있더라도 보호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시절 탄압을 피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한 수많은 익명의 글들을 보라. <폭풍의 언덕> 저자 에밀리 브론테는 여성 작가들에 대한 편견을 피하기 위해 ‘Acton Bell’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이 밖에도 시대의 편견과 권력의 탄압을 피하여 자유로운 비평과 예술활동을 한 필명 사용자들은 ‘몰리에르’, ‘볼테르’, ‘졸라’, ‘트로츠키’, ‘조지 오웰’ 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 사드 백작, ‘오 헨리’, ‘조르주 상드’, 심지어는 아이작 뉴턴도 있다.

온라인 글쓰기라고 다를까? 온라인의 글은 수십만 수백만 명이 볼 수 있거나 퍼 나를 수 있지만, 이것은 게시자의 통제 밖의 일이며 방송과 달리 독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다. 독자의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하여 실명 등록의 부담을 지우는 것은 어떤 장르의 책이 잘 팔린다고 해서 갑자기 그 장르의 저자들은 모두 실명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다.

인터넷 실명제 아래서는 불법 게시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어차피 의도적으로 불법 게시물을 올릴 사람들은 자신의 실명과 번호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고 불법 게시물을 올리는 자들은 어차피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합법적인 게시물을 쓰려는 사람들의 글쓰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감시를 받기 싫어서이다. 자제의 미덕이 아니라 강제된 위축이다. 자발적인 실명제 사이트에서 명예훼손이 적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길거리 범죄를 막겠답시고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에게 명찰과 주민번호를 달고 다니도록 강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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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수사 '법대로' 하라

2009/05/03 12:41 | Posted by <소문> 편집실

이종걸 의원실 주최로 지난 4월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장자연 사건에서 바라본 국민의 알권리와 명예훼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경신 고려대 교수


체포·압수·구속·수색·압류·징역·손해배상 등은 모두 사법부가 그와 같은 기본권 제한의 타당한 사유를 인정하였을 때 허용된다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원리이다. 국가가 범죄수사 목적으로 개인 소유 정보를 압수수색할 때도 역시 사법부의 결정인 영장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법부가 이렇게 결정하기 위해서는 '왜 그 사람에 대한 압수수색이 타당한지'에 대한 입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심검문의 예를 들자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만을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7조와 제201조에 따르면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구속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2항도 마찬가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체포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형사소송법 215조는 "검사는 '범죄수사에 필요한 때에' 영장에 의하여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범죄수사에 필요한 때"를 단순히 형식적인 요건이라고 해석하는 형사소송법 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요건은 국민을 국가의 자의적인 사생활 침해로부터 보호해주는 실체적인 내용을 가진 요건이다.

 

진실을 밝혀보자고 주장하는 것이 사회적 담론의 시작

 

그러나 <PD수첩> 수사에서는 검찰이 취득하고자 하는 취재원본의 '범죄수사에의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죄목은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이다(이번 보도는 공익성이 명백하여 '진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만이 적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검찰은 다른 소송들과 마찬가지로 '허위' 및 '위계' (이하 '허위')를 입증해야 한다. 물론 허위의 입증 자체는 재판에서 해도 되지만 우선 영장을 신청할 때 허위가 무엇인지 제시를 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취재원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중간수사발표를 통해 공개된 검찰 스스로의 주장과 자료들에 따르면 그러한 '허위'는 없다. 'CJD가 의심된다'를 'vCJD인지 의심된다'로 바꾼 것은 현지 언론보도를 분석해보면 당연한 조치였다. 주저앉는 소(다우너)를 '광우병 의심소'로 지칭한 것은 허위도 과장도 아니다. 미국인의 먹거리 불안감 여론조사의 조사방법 등을 생략한 것은 허위가 아니다. 사물의 어느 측면을 언급할지는 순전히 견해의 영역이며 법적 규제의 밖에 있다.

 

"94% 발병률", "발병율이 다른 나라에 2∼3배" 등등 과학자들이 특정한 조건들을 가정한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보에 근거하여 수립한 가설들을 그대로 옮긴 것이며 누구에 의해서도 허위라고 입증된 바가 없다.

 

혹자들은 94% 발병률이 진실이라고 입증된 바도 없다고 하면서 '정부비판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적 담론들은 정보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형성된다. 진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진실을 밝혀보자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담론의 시작이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발생 가능성이 그런 사례다. 광우병인지 여부를 확신하지 않더라도 '의심이 드니 조사해보자'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을 근거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 말라는 건 아무것도 비판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더욱이 작년에 이번 형사사건의 수사의뢰인인 농림수산부가 제기한 <PD수첩>보도에 대한 정정 및 반론보도재판에서 법원은 '과장됐다', '근거가 불충분하다', '편파적이다' 라고 판시했을 뿐 '명백히 허위'라고 판단한 것은 없다. '... 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정정해야 한다'는 등의 판시가 있을 뿐이다.  '과장'이나 '근거 불충분'은 '허위사실의 적시'와는 완전히 다르다. 민사재판에서도 허위가 밝혀지지 않은 이상 입증책임이 훨씬 높은 형사재판에서 '범죄수사에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허위'의 입증은 더욱 요원해보인다. 

 

법치주의에는 성역이 없다

 

검찰은 <PD수첩> 측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원본제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PD수첩> 측이 입증해야 할 위법성조각사유이지 검찰이 입증할 것이 아니다. 즉 검찰이 허위를 특정하면 <PD수첩>측이 '허위이기 하지만 우리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니 면책된다'고 할 일이지 지금 검찰이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강간사건에서 피고가 자신이 발기불능이라거나 성전환자라는 주장을 하지도 않았는데 검찰이 피고가 밝히길 원치 않는 자신의 발기능력이나 성정체성에 대한 검증을 하려는 것과 같다.

 

물론 '범죄수사의 필요성' 여부는 법원이 결정하며 이번 수사에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장의 요건인 '범죄수사의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부된 영장은 불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압수수색 영장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는 제도가 없다. 압수수색영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장집행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영장의 거부는 실정법 위반이기는 하지만 압수수색영장에 대한 항고를 할 수 없는 현재의 제도에 대해서는 헌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헌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서라도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옥에 가는 것이 원본제출하는 것보다 낫다.

 

법치주의에는 성역이 없다. 압수수색, 구속 등의 모든 기본권의 제한은 공정한 사법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공정한 사법적 절차란 기본권 제한의 수용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함이 기본이다. 구속에 대해서는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을 통해 두 번이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과 법원만이 참여하는 절차를 통해 발부된 압수수색영장에 대해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은 성역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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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는 환상이다

2009/04/11 09:12 | Posted by <소문> 편집실
 “보수는 가치 추구 세력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
»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2008년 8월5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300여 개 보수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나라사랑 한국교회 특별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우리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한탄하며 ‘진정한 보수’의 출현을 기다려왔다. 2005년 11월 ‘뉴라이트’가 출현했을 때, 2007년 말 과거 군사 쿠데타 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던 박근혜를 누르고 이명박이 승리했을 때, ‘수구보수’가 아닌 ‘실용보수’의 출현으로 우리도 ‘우아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두 번 다 여지없이 무너졌다.

보편적 경제발전 원하지 않아

그리고 2009년 들어 우리는 다시 한번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 있는 진보가 협력해… 일종의 거국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백낙청 교수의 요청을 듣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합리적인 보수를 기다려온 데는 이유가 있다. 진정한 정치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투쟁이지 이익집단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의 주 전선은 식민지와 독재정권의 역사 속에서 유래한, 특권을 지키려는 집단과 특권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었지 여러 가치들 간의 투쟁이 아니었다. 2009년 2월 촛불시위를 지켜본 한 자칭 보수 네티즌의 말이다. “현재 상황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다. 수구와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싸움이다. …쇠고기 반대집회를 반대했던 이른바 ‘보수’라는 단체는 거칠게 이야기해서 친미매판 수구세력이다. …어느 나라 보수단체가 자국의 국기와 다른 나라 국기를 (함께) 들고 집회하는가.”

1997년에 출간된 <보수주의자들>(삼인 펴냄)이라는 책은 김대중·이건희·김문수 등 10인에 대한 평가하고 ‘한국에 보수주의는 없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과연 합리적 보수는 존재하는가? 보편적으로 세계의 보수 진영들이 내세웠던 가치는 전통·국가·가족·자유·경제발전·생명·법질서 등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자원개발이 전통 생활양식의 파괴를 수반하게 될 때, 보수 진영은 항상 전통의 반대편에 섰다. 가족은 혈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혈연관계의 성립과 유지를 위해서는 국가의 출산 지원 등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축소하려는 세력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 진영이다. 보수 진영은 자유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탄압했던 쪽은 항상 보수 진영이었고, 도리어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의 표현의 자유까지 보호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미국시민자유연합(ACLU)과 같은 진보 진영이었다.

세계사 속에서 보수 진영은 절대로 보편적인 경제발전을 원하지 않았다. 초기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의 이유는 효율성이 아니라 기득권의 유지였다.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할 불법체류자들 없이는 미국 경제가 망할 것을 알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미국의 보수적 정치인들은 불법체류자 추방을 외치며 보수표를 집결시켰다. 보수 진영은 사형제를 요구해왔고 기아 선상의 사람들에게도 인색했다. 보수 진영이 생명을 중시할 때는 낙태와 존엄사같이 자신의 우주관과 가치관에 따른 인간다운 삶과 죽음을 선택하려는 개인을 위선에 굴종하도록 억압하려 할 때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법질서에 대해서는 신영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지 않는 보수 진영의 모습을 지적하고만 넘어가자.

가치들을 지향하는 순수한 ‘보수적 개인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보수주의의 본질이다. 보수주의가 세력을 형성할 때 그 리더들은 항상 원래 내세웠던 가치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다. 보수주의는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이 아니라 동시대에서 획득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일 뿐이다.

‘합리적 보수’라는 개념은 진보 진영이 현재의 정치를 ‘이익 다툼’이 아닌 ‘가치의 투쟁’으로 해석해 만들어낸 환상으로 보인다. 가치 지향으로서 보수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 조금 더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진보 진영은 그런 ‘조금 더 양심적인 사람들’이 협상 파트너가 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익집단의 다툼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합리적 보수’를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 자신의 지위에서 눈치 보지 말고 ‘가치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현재의 정치는 ‘가치 투쟁’도 ‘이익 다툼’도 아니며 현실정치를 가치의 투쟁으로 만들려는 사람들과 현실정치를 이익집단의 다툼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간의 투쟁이다. 필요하면 불복종을 선언해야 한다. 또 진보집단 스스로가 ‘가치 투쟁’이 아니라 ‘이익 다툼’에 빠져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거나 부자들에게서 무엇을 빼앗아오는 것이 진보는 아니다. 구태여 도식화하자면 부자들이라는 ‘지위’ 자체를 없애는 것이 진보다. 이를 망각한 진보는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얻어낸 지위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그 지위는 임금으로 또는 정원제로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한 미련은 정치를 ‘이익집단의 다툼’으로 만들고 이 다툼으로의 진입 자체가 패배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한겨레 2009.04.03 제7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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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휴대폰 감청 불가’를 외치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감청이 어려운 휴대폰이야말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필요성을 주장한다. 현행법상 휴대폰 감청은 법적으로 가능하나 기술적으로 어려워 통신사업자들에게 협조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필자는 휴대폰 감청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기본 전제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감청 범위의 확대에 반대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독재정권 시절 횡행하였던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감청을 막기 위해, 모든 감청에 헌법상의 영장주의-즉 수사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법부가 범죄 발생의 개연성을 서면으로 인정하였을 때만 압수/수색이나 구속이 허용된다는 원리-를 적용하자는 취지로 1994년에 탄생한 ‘좋은 법’이다. 특히 피감청자가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감청은 ‘수색’ 의사가 공지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수색보다 훨씬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크기 때문에 법원 허가의 요건도 더 엄격하고 피감청자에게 별도의 통지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번호 또는 아이피(IP)와 언제 통신했는가 등의 정보(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음은 물론 통신의 연결 및 진행을 위해서는 통신자가 어차피 통신사업자에게 ‘공개’해야 하는 정보이므로 일반적인 수색의 경우보다 수사기관이 더욱 쉽게 취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가 감청을 허가함에 있어 감청 대상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수호하는 독립적인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2000년대 들어 감청 신청 기각률은 평균 2%대이고 통신사실 확인자료 취득 신청의 기각률은 1% 미만이다. 우리나라는 감청 허가에 대한 판례가 없어 낮은 기각률에 대한 평가도 불가능하다. 미국은 감청이 기각된 판례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색 및 감청영장이 발부된 뒤에 그 영장 발부의 불법성을 다투는 절차가 없어 기본적으로 피의자는 수사기관들의 수색 및 감청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또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취득 허가 요건이 너무 느슨하며, 감청 기간이 2개월 내지 4개월로서 미국이 테러 및 총기사건 등의 위험까지 고려하여 정한 30일에 견줘 너무 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감청자 통보 시점이 기소나 불기소 결정 이후라서 수사가 길어지면 아주 오랫동안 감청 사실을 모르게 된다. 미국의 통신비밀보호법(ECPA)은 감청 허가가 기각되거나 인용되면 무조건 통지하도록 하고 있어 감청이 신청만 되어도 감청 대상자는 통보를 받는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휴대폰 등으로 감청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반대한다. 같은 취지로 개정안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통신사실 확인 자료에 포함시켜 훨씬 더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반대한다.

더욱이 지피에스 위치 정보는 통신자가 통신을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공개’한 정보가 아니므로 통신사실 확인 자료도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미행은 영장 없이 시행될 수 있지만 사적 공간으로의 ‘미행’은 일반적인 영장을 필요로 한다. 이번 개정안이 상정하고 있는 지피에스 정보는 5m 이내까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적 공간으로의 미행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감청 협조 의무가 부과되는 대상은 접속서비스 제공자뿐만 아니라 포털이나 웹호스팅 업체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군소업체들을 포함하는 이렇게 많은 사업자들이 타인들 사이의 대화 및 통신 내용을 국가에 넘겨줘야 한다면 이 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통신비밀공유법’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한겨레신문, 20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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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을 넘어 새 6.10으로 가자
  [촛불의 소리]6월항쟁세대가 촛불집회에 부쳐
 

뭐가 달라지나요?
 
  촛불집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대학원생이 문득 나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 촛불집회가 과연 무엇을 실질적으로 바꿔낼 수 있나요? 뭐가 달라지나요?"
 
  '88만원 세대'인 스물 네살 짜리의 냉철하고도 절망적인 질문은, 우리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 회의를 담은 것이었다.
 
  과연 그러하다. 장관 고시가 철회되면, 혹여 전면재협상이 선언되면, 아름답게만 보이는 저 촛불이 꺼지고 다시 사람들은 일상으로 뿔뿔이 돌아갈 것 아닌가? 저 뜨거운 거리의 10대들과 20대들도 차갑고 끔찍한 경쟁의 나락으로 돌아갈 게 아닐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정치적 불복종과 연대의 첫경험을 아련한 기억으로만 간직한 채 말이다.
 
  이 촛불은 무엇을 바꾸고 남길까? 이미 여러가지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12.18(대선)과 4.9(총선), 철옹의 아성을 구축한 줄 알았던 보수우익을 청소년들이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너나 쳐 먹어!". 단 3개월만에 한국의 보수우익은 자신의 온알몸을 국민 앞에 폭로당했다. 대중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잘 살겠다'는 욕망이 제도정치 속에서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점도 재차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야말로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한 젊은세대를 우리는 얻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명박정부는 이제 국민의 눈치를 좀 더 보는 스타일로 바뀔지 모른다. 대운하도 진짜 중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체제를 떠받치는 불안의 뿌리인 비정규직과 '88만 원' 문제나 이 끔찍한 교육모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가고 때문에 서민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결국 양극화는 중단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저항은 새로 출범한 정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이 물려받은, 이전 '개혁정권'이 길고도 오래 잘못 든 길과,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10년'이 쌓아온 모순을 고쳐내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
  

▲ 촛불집회가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봐야할 때다. ⓒ프레시안


  촛불과 실질적 민주주의
 
  질문을 받고, 6월항쟁 세대인 나는 20년 전의 그날들을 떠올렸다. 6월항쟁이 만든 그야말로 실질적인 변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그때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7-8월 노동자대투쟁과 함께 왔다. 그 대투쟁을 통해서, 노예처럼 감시받고 일상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일하던 노동자도 '인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80년대의 고도성장의 과실도 조금이나마 노동자들에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민주노조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연대의 틀이 생겨났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독재타도-호헌철폐'라는 정치적 항쟁을 통해 그렇게 느리게 왔었다.
 
  그리고 목졸림을 당해 지난 20년간 서서히 망가졌다. 노조를 공격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노무현정권과 이명박정권은 정확히 동문선배격이다. 아무리 예쁘게 보려 해도, 노무현정권은 교육과 비정규직문제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오늘날 '88만 원 인간'도 인간이 아니길 강요받는다. 그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노동하고 해고된다. 그래서 그들은 동료인간에 대한 연대의식과 관심도 차단당한다. 초등학생부터 그렇게 하기를 강요받는다. 오로지 경쟁과 약육강식이 학교와 일터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데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10대와 20대는 사실 기적이다.
 
  예쁜 촛불에 온 눈이 팔려 있는 동안에도, 사회는 '양극'으로 빨리빨리 움직이고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공 농성 중이고, 이랜드와 코스콤 노동자도 여전히 거리에 내몰려 있다. '10대의 반란'이 거대한 행진을 촉발했지만, 다시 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든 감옥 속에 구금되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포기될지 몰라도, 촛불과 비정규직 문제는 전혀 무관해보인다.
 
  과연 오늘의 촛불이 우리들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를 담고 있을까? 촛불이 내 식탁과 내 '건강권'을 지키자는 것만이면,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쇠고기 문제에 아무리 많은 새 패러다임이 담겨 있어도 그렇다.
 
  87년 체제의 '아래로부터의' 종언
 
  그러나, 인터넷과 거리에서는 연대가 꽃을 피운다. 또 다행스럽게도(?),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의 구호들이 외쳐진다. 뜬금없이 헌법 제1조까지 외쳐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보수우익은 시위의 배후를 운운하고, 비현실적 정치구호에 대해 일부 지식인들은 비웃음을 보낸다. 하지만, 이 정치구호들이말로 절망을 부르는 경제적 모순과 모순에 가득 찬 정치체제를 한꺼번에 꿰뚫고 있다.
 
  국민의 직접행동은 쓰레기 같은 제도정치와 민중의 열망 사이의 참기 힘든 간극을 폭로하며 또한 메워주고 있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거리의 10대와 20대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외침은 여전히 정치가 '최종 심급'임을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 '비현실적'ㆍ'초법적'구호들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상상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주의'를 넘어서버린 진리의 목소리이다.
 
  소위 지식인들과 진보진영은 87년체제의 종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정권이 바뀌자 다시 개헌론도 솔솔 피어오른다. 그런데 오늘의 촛불은 '위로부터' 논의되어온 '87년체제의 종언'에 관한 논의가 아무 의미 없음을 보여준다.
 
  민중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고, 근본적으로 그것을 반영할 정치체제가 아니면 논의는 헛짓이다. 촛불은 위로부터의 체제 재편에 대한 진정한 안티테제이며, 우리가 보듬어 꽃피워야 할 진테제이다. 어찌 18대 국회가, 오합지졸로 패퇴한 야당이 이 진테제를 받아안을 수 있을까?
 
  이미 몸으로 87년식 운동과 통치가 불가능함을 젊은 촛불들은 너무 많이 보여줬다. 87년 체제의 종언은 이미 거리에 있다. 2008년의 6월 10일, 우리는 일단 다같이 촛불을 들고 길이 막히는 데까지, 아니 그 너머서까지 끝없이 행진해야 한다. 거기서 대다수 인간을 위한 새로운 체제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혹여 우리는 이번에 쇠고기 문제 이외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 혹 집에 뿔뿔이 돌아가더라도, 마음속의 촛불집회를 이어가야 한다. 5년간 계속 촛불 거리에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군정종식도 혁명도 아닌, 거대한 기만이었던 87년의 6.29가 그래도 헌법과 노동을 바꾸게 됐듯이, 이 촛불이 거대한 변화의 초석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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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에서 펌, '그냥 오년동안' 놀이도 마찬가지.
네티즌들은 예민하게 '영어'문제에 반응하고 있는데, 벌써 '이명박탄핵' 사이트가 있더라는;
이명박디스토피아는 10년을 갈까, 아니면 1년을 갈까?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가올 총선에서 딴나라당은 대략 200-250석 예상.
박근혜 일당의 탈당을 저지해서 제2, 제3의 딴나라당이 생기는 걸 막아야 됨.

가장 재미난 댓글은

"그냥 오년동안 집에서 심시티나 하게 내 컴퓨터 빌려 줄께...ㅎㅎ
"그냥 오지헌이 대통령했으면 .."
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경숙 위원장, '영어사랑' 논란

제목 숙의 하루
조회 1094
공감 82 비공감 0
작성일시 2008.02.01. 00:18
아이디 daystoheaven


오늘은 기자들과 이러뷰가 있는 날이다.
요즘 날 갈구는 미개한 한글사용인이 많아서 이러뷰하기 너무 스케어슬리하다.
이러뷰장으로 갔더니 기자들이 포로라인에 좍 서있다.
가슴이 뛴다. 오늘은 또 어떤 스퓌치로 이들을 서프롸이즈 하게 할까.
아마 오늘은 나의 스큘인 쑥명유리버시리에 도움이 되기위해 테쏠을 권장할 생각인데
쉐크리터어리가 옆에서 다시 생각하라고 난리도 아니다.
왜? 테솔이야 말로 마이 라잎최고의 명작인데 이럴때 안쓰면 언제 쓴단 말이냐.
안돼겠다 오늘은 나의 인글리이쉬로 기자들에게 나의 실력을 보여주고 난 뒤에
그들의 마우쓸 클로우즈 시켜야 겠다. 아... 테쏠.... 너무 러블리해..... 오륀지 보다 더~

~~~~~~~~~~~~~~

그냥... 오년동안 놀아만 줬으면...
그냥 오년동안 테니스만 쳤으면....
그냥 오년동안 국밥만 드셨으면....
그냥 오년동안 개머리판에 얼굴 붙이기만 하셨으면....
그냥 오년동안 데쓰락만 하셨으면....
그냥 오년동안 자기집이나 삽질했으면
그냥 오년동안 집에서 심시티나 하게 내 컴퓨터 빌려 줄께...ㅎㅎ
그냥 오년동안 교회에 갇혔으면........
솔직히 영어발음은 변선생이 낫다!(........)
그냥 오년동안 혼자 삽들고 운하만 퐈줬으면...
그냥 오년동안 나는 나이 안먹고 2메가바이트만 나이 다섯 처드셨으면...
그냥 오년동안 청계천에서 물장구나 치셨으면
그냥 오년동안 틔레브링 더 워얼드 하면서 대한민국엔 안들어 왔으면...
그냥 탄핵 먹었으면......여기 서명 운동 ㅋㅋ http://www.sorrykorea.com/
탄핵도 가끔식.. 가끔식...
그냥 오지헌이 대통령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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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자들의 패거리 혹은 '소망정권'

2008/01/19 23:29 | Posted by 김장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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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런 따위 블로그를 쓰고자 한 게 아니었다.
작년 가을에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라는 콜로키움에서
도정일 선생님의 강연에 나타난 문화 개념이
내가 쓰고자 하는 문화 개념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밝고 맑은 마음으로, 이를 실은 프레시안 기사를 클리핑...하려 했다.

그러려 하다가 인터넷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눈이 잠시잠깐 엉뚱한 데에 머물고
손가락이 나도 모르게 거기를 클릭질하고는 이렇게 됐다.  
그런 기사를 읽으면 생식기나 성행위와 결부된-
다정한 나의 모국어 쌍말이 자동적으로 입술 위에 오른다.

기독교 '장로님'께서 다스리는 나라, 조폭적인 동문들이 다스리는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도 장로님이셨고, 전두환-노태우는 그 자체가
공인된 폭력조직의 두령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 2008년, 아직도 상당히 촌스럽고도 가진 건 더럽게 많은
그 암적 패거리들은
다시 희망에 찬 새 시대를 맞고 있는 듯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친노동자적이지도 않았고(오히려 그래서 결국 실패했고)
한국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전혀 바꿔놓지도 않았
(오히려 그래서 처절히 인민에게 복수를 당했고)으나,
'10년만에 다시 찾은 정권'의 상징은 그자들에게 상당히 크다.

'인수위'가 하는 짓을 보면 우려하던 디스토피아가 실제로 펼쳐지는 게 아닐까,
위태로운 마음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당분간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지속될 것이다.
특히 그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 계속될 것이다.

보수우파의 리더십과 대중이 결합하는 오래간만의 양상을
우리는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소수파 자유주의자였던 김대중-노무현의 것과 다른 리더십일 것이다.
벌써 인치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 있겠다.

이명박을 비판하는 일은 누구에게라도 당분간 꽤 어려운 일이 되리라.
대중의 냉정함이 예외 없이 작동할 그 시간을 일단 기다려야 되리라. 

*
새로 생긴 동네인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교회들이
단지 상가의 모든 주요 포인트를 점거했다.
일요일 오전이면 잘 차려입은, 너무 건전하고 정상적으로 뵈는 청장년 남녀들이
깨끗하게 세차된 승용차를 끌고 어디선가 모여든다.  
이명박 같은 장로님과 이경숙 같은 권사님을
만나러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에서 하나님의 헤게모니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다행히(?) 기독교 신자는 감소하고 있다지만
때로는 저 한심한 '대한불교조계종'이라도 좀 마케팅을 잘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끔찍스럽다.
 한기총이 노무현정권 시기에 한 짓은 김진호 목사 등이 쓴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에 잘 나와 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힘을 빌어 '좌파'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항간에는 이명박 정권의 별칭을 '소망정권'이라 해야된다는 농담도 떠돈다.
인수위위원장 이경숙총장과 이명박, 정몽준 등등은 모두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소망교회의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전 포철회장 박태준, 현 삼성의료원장, SK텔레콤사장도 그렇다 한다.
한국의 대형교회가 무슨 일을 하자는 덴지 이 부자 교회는 여실히 보여준다.

*
세상의 모든 동문회가 없어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면 단위 이하의 초등, 중학교 동문회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그 동네 출신들에게 작은 공동체이자 이익사회 자체이다.  
그러나 서울대와 고대 동문회는 지구상에서 꼭 없어졌으면 좋겠다.

몰려다니는 가진 자들, 그들이야말로 사회의 암이다.  

~~~~~~~~~~~~~~~~~~~~~~~~~~~~~~~~~  

한기총 기도회 “장로 대통령” 칭송 또 칭송

입력: 2008년 01월 09일 17:59:30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개최한 ‘국민대화합과 경제발전을 위한 특별기도회’에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서울 장충동 엠베서더 호텔에서 열린 ‘국민대화합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 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정근기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대선 승리 후 주일 예배를 포함, 3번째로 가진 ‘교회’와의 만남이었다. 한기총측은 당초 기도회 명칭을 ‘이당선인과 국가를 위한 특별기도회’로 하려고 했지만 비기독교인 등의 비판을 의식해 명칭을 바꿨다.

그러나 기도회에서는 ‘이명박 찬양 대회’를 방불케 할 수준의 발언들을 쏟아내며 ‘장로 대통령의 탄생’을 한목소리로 반겼다.

한기총 명예회장인 길자연 목사는 설교를 통해 “대통령 당선인을 배출한 것은 한국 기독교의 자랑”이라며 “예수 없는 삶이 예수 있는 삶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도 인사말에서 “하나님께서 통치권을 강화시켜주시고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주시어 열강이 깜짝 놀라는 신화적 존재가 돼주시기를 바란다”며 “이명박 장로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라며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린다”고 전했다. “나침반이 고장난듯 표류하던 이 시대의 준비된 지도자”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한기총 총무를 맡고 있는 최희범 목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저희는 기꺼이 협력할 것이고 도와드릴 것이고 기도해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특검법’ 등과 관련한 발언도 나왔다. 지덕 목사는 축사에서 “게으른 자는 5년이 50년 같다고 말하지만 부지런한 자는 5년이 5개월처럼 빨리 지나간다”면서 최근 “임기 5년이 긴 것 같다”고 말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했다. 이어 “다가오는 BBK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비큐밖에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당선인은 주최측으로부터 성경책과 꽃다발을 받은 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을 받은 게 아니라 섬기는 마음으로 오셨듯이 국민에게 매우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며 “(저의) 부족한 점을 여러분의 기도로 채워주시면 앞으로 5년을 조심성 있게 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또 “교회 장로로서 (잘못한다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독교 장로가 해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당선인의 이날 기도회 참석에 대해 참모들은 “피해야 할 행사가 있다”며 만류했지만 이당선인은 “현재 신분은 대통령 신분과 달리 자유로운 면이 있다. 다른 종교 행사에도 참석하면 된다”며 참석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당선인은 오는 16일 불교종단 신년교례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선근형·박홍두기자 ssun@kyunghyang.com

~~~

주목받는 소망교회 인맥 ‥ 정몽준 의원 등 정치.재계인사들 많아

2007년 12월 26일(수) 7:50 [한국경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선임을 계기로 이명박 당선자가 장로로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소망교회 인사들에게 관심이 쏠린다.

인수위 참여 인사 일부가 이 당선자와 함께 이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서다.

이 총장은 소망교회에서 권사를 맡으며 이 당선자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 모두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을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교회 일 등으로 비교적 잦은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747' 공약을 주도한 핵심 정책 브레인인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도 1981년 이 교회에서 이 당선자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교회 내 모임인 '소망 금융인 선교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이 당선자와 교류해온 강 전 차관은 2001년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을 시작으로 안국포럼에서 정책자문단을 이끌며 이 당선자를 보좌했다.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해 지지연설을 했던 정몽준 의원도 이 교회에 다닌다.

두 사람은 지난 10월2일 소망교회 30주년 기념 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후보 시절 이 당선자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면담을 추진했던 강영우 백악관 정책위원도 이 교회를 통해 만났다.

이 당선자의 친형?이상득 국회부의장도 이 교회의 신자다.

등록교인이 7만여명이나 되는 소망교회는 이 당선자의 인맥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박내창 장로는 "우리 교회에는 장.차관과 국회의원,기업인,외교관,법조인 등 저명한 인사들이 하도 많아서 신자들 간에는 별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태준 전 포철 회장,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장로),김광석 참존화장품 회장(장로),이효계 숭실대 총장,최규완 삼성의료원장,김신배 SK텔레콤 사장,정문술 벤처농업대 학장이 이 교회의 신도다.

이 당선자는 1995년 장로가 된 이후 2년 가까이 일요일 주차관리를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한편 소망교회 당회장인 김지철 목사(59)는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고교.대학 동기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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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고대 정신 울린 '해도 너무한' <고대교우회 100년 사>

[ 2008-01-08 09:07:00 ]

▲ 민족 고대 100년을 울린 <고대교우회 100년 사>

<고려대 100년사> 아닌 <고려대 교우회 100년사>이긴 하지만 해도 너무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 책은 “대통령 이명박” 이라는 제목을 달고 8 페이지에 걸쳐 이명박 당선인의 일대기를 기록해 좀 심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거기에다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곡학아세'라 할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이 당선인은 하늘이 내리는 시련을 겪었다. 국민도 그의 한천작우하는 대망에의 도전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어차피 대선이 성인을 가리는 경연장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은 그 어떤 모략이 난무할지라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기나긴 대선레이스 동안 시종일관 엠비MB를 지켜주었다.”
“승리의 새벽이다. 이명박과 함께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왔다. 새 날, 새 하늘의 대명 아래서 참과 거짓이 갈리는 확연의 시간을 타종하고 있다. 미명 너머 저 편으로 물러나는 낡은 광신자들의 사상의 질곡을 향하여, 집권 좌파의 역주행이 결과한 국정파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통렬한 빚 갚음이 그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6천부가 인쇄돼 이미 당선 축하회를 통해 1천6백부가 배포됐고 회원과 각급 도서관에 보내질 예정이다.

이명박 당선인을 낯 뜨거운 찬사로 추켜세운 것이야 집안 식구끼리니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 ‘낡은 광신자’, ‘집권좌파의 역주행’, ‘이명박과 함께 기다려온 인고의 시간, 승리의 새벽’ 이라고 표현한 것은 거의 우익단체의 투쟁 선전지 수준이다.

4.19 혁명의 불길을 지폈다는 4.18 민족고대 정신은 어디갔나. “고대교우회, 이제부터 당신을 우익단체로 인정합니다”

▲ 인수위는 점령군일까 해방군일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너무 앞서 나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통일부 없어진다, 그대로 둔다' '수능등급제 폐지한다, 기다려 봐라' '이동통신 요금 바로 내려버린다, 공적자금 동원해 신용불량자 구제한다' 등 인수위 방침에 대한 이런 저런 기사들과 인수위의 번복, 해명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혼선을 빚는 대표적인 것이 대학입시 제도와 관련된 내용.

7일 인수위원회 이동관 대변인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수능등급제와 관련해 10일 쯤이면 인수위원회 입장이 나온다'고 말한 것은 공청회 등 여론 수렴과 전문가 실무검토 계획 등 앞으로의 스케줄이 10일 쯤 나온다는 것이지 결론이 10일 쯤 내려진다는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교육부를 대신해 대입과정을 책임 질 대학교육협의회의 차기 회장인 손병두 총장이 “앞으로 대입 본고사는 대학에 맡긴다”고 본고사 부활을 허용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것 역시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 3단계 자율화 계획에 의해 추진되어 수능부터 폐지하고 궁극적으로 본고사를 안 보는 것이 공약”이라고 해명했다.

어쨌거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육당국이 "수능등급제를 실시한다, 내신관리 중요하다, 논술 출제기준을 제시해 관리 하겠다"고 했는데 다 뒤집어 지면 어쩌며, 뒤집어 졌다 또 다음 정부가 뒤집으면 어찌 되는 거냐며 극도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간사는 경제학자 출신인 이주호 의원, 자문위원으로도 자유주의 교육운동을 했다지만 역시 경제학자가 포진돼 있어 정치인과 경제 전공 교수가 주축이 되어 있는 셈. 여기에다 인수위워회 규모를 축소하느라 다양한 시각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충분히 논의하기에는 어려운 구조다.

이원희 교총회장이 “교육현장을 잘 모르는 채 너무 탁상공론식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 같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제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를 꾸려 갈 때는 “점령군이냐, 뭐냐”, “다 뒤집어 버리고 있다”, “해도 너무 한다”라고 아우성치던 언론들이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원회에 대해선 부르는 대로 받아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 정부의 정책을 이어가든 버리든 인수위원회의 검토와 새 방침에 문제가 있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현장 취재를 통해 바로 잡고 보완해 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자 역할일 것이다.

인수위원회의 규모가 작고 시간이 부족한 것을 메워 주려면 언론의 이런 역할이 더욱 절실한데 지금 언론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잘 보이는 데만 급급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어쩌면 보수 언론에게 있어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점령군은 커녕 해방군으로 환영받고 있으니 그게 당연한 지도 모를 일이다.

CBS보도국 변상욱 기자 snip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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