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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씨의 자살(2)-'최진실법'

2008/10/07 16:28 | Posted by <소문> 편집실
최진실 씨의 자살과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에 대처하는 여당과 일부 보수 언론의 대응은 한마디로 졸렬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살률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않는) 정부ㆍ여당이 저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최진실 씨의 자살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즐기고 있다. 그 목적은 단 하나다. 인터넷을 통제하여 언로(言路)를 막고 우민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보수 언론은 최씨의 자살 원인을 ‘악플’이라 단정하고 있다. 안재환 씨와 결부된 최씨에 대한 소문이 만들어진 곳은 온라인이 아니라, 평소에도 온갖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만드는 증권가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몰고 가고 있다.

 

자살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의 하나는 자살(기도)자의 심리적 동기를 객관적인 사회적 언어로 재구성(프로파일링)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복합적인 인격을 가진 현대의 인간은 단 한 개의 명쾌한 동기나 원인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모호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복잡한 이유가 중첩되고 또 그 이유가 반복적으로 자아를 파괴시켜 온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어떤 경우 자살은 충동적으로 선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가진 상식에 비추어 어떤 행위의 동기를 사후적으로만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적으로는 급ㆍ만성 우울증과 조울증과 자살행동의 관계에 대한 생화학적ㆍ통계적 상관성이 밝혀져 있을 뿐이다.

 

사회(학)적으로는, 통계적 필요와 ‘예방’을 위한 활동 때문에 자살자의 동기를 분류하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타인의 자살(기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구체적이고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쉽게 그 원인과 동기를 단정하는 것은 자살(기도)이라는 실존적 행위에 대한 모욕이며, 자살(기도)자에 대한 예의 있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관련된 정황을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견지에서 그들은 최진실 씨의 죽음을 모독하고 있다.

 

 물론 타인에 의한 모욕과 자살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동서고금에서 자살은 견디기 어려운 모욕을 씻는 방법으로 널리 선택되어 왔다. 또한 모욕은 공격당하는 자아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자아존중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자아존중감의 약화는 자살의 근저적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신공격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전여옥이라는 국회의원이 최진실 씨가 죽고 난 뒤에 악성댓글이 죽음의 원인이라 단정하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며 "각박한 세상에 우리에게 꿈과 용기를 그리고 즐거움을 주었던 이들이 이렇게 바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만든 것은 말입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한다. 싸움닭처럼 남을 공격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이 국회의원 자신이 네티즌들한테 항상 심한 공격을 받아왔다. 밖에 보이는 것과 통상의 감각으로 그녀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듯’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쏟아지는 욕들 앞에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악플 받는 어려움을 진정 이해한다면, '우리 모두의'를 운운하지말고 이번 기회에 그녀가 그동안 자신이 타인들에게 해왔던 공격들을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최진실법>은 전혀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 법리적으로도 전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진심으로 악의를 가진 ‘안티팬’으로부터 연예인들을 보호하고, 스토커나 페니스 파시스트들에게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한나라당은 어떤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좌빨’ ‘친북’ ‘좌파’ ‘좀비’ ‘절라도’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문화도 함께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까?

 

한나라당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고, ‘조선’에 ㅅ받침을 첨가하여 부르는 식의 인터넷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테다. 그런 문화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인터넷 문화는 우리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한편, 그런 인터넷정치 문화와 연예인 누군가의 용모, 행동, 언행을 인신공격하는 사적인 ‘배설’이 같은 차원의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이런 것들을 구분할 능력과 의사가 없다고 보인다. 누가 악플러이며, 어떤 것이 악플인지? ‘모욕’의 상대성ㆍ주관성의 문제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 기초적인 법리조차 처음부터 토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덧)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10대에서 70대 노인까지 전세대에 걸쳐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소위 ‘민주정부’ 약 10년 간 달성된 것이라는 점. 이 사이에 한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IMF가 있었고,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은 늘어났다. 한마디로 개인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졌다. 한국에서 어린이건 노인이건, 누구나 살기 어렵다. 누구나 팍팍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 그리고 팍팍한 삶을 살기 때문에 여리고 약한 희생양을 찾아낸다. 만약 자살률이 해당 사회 성원의 행복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지난 10년 간의 소위 민주정부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자살률이 무려 2배로 높아졌다. 그들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복속된 개인들의 행복을 전혀 증진시켜 주지 못했다. 과연 이명박 정권은 어떨까? 입만 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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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씨의 자살(1)

2008/10/07 16:11 | Posted by <소문> 편집실

최진실 씨 자살사건은 또 하나의 ‘국가대표급’ 자살이다. 모든 세대와 계층이, 경력 20년의 ‘톱스타’인 그녀를, 또는 그녀의 인생을 알고 있다. 이는 안재환 씨 자살사건과 그 충격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이 자살은 그 파급효과에 있어서도 가장 넓고 강력하고 지속적일 것이다.


최진실 씨는 입지전적 인물의 하나다. 그녀는 ‘가난하고 못 배운’ 또순이이자 ‘소녀가장형’ 인물이었다. 몸뚱아리와 강한 의지(또는 욕망) 외에 가진 것이 없었던, 그리고 그것으로 세상과 상대해 온 인물이었다. 그녀의 인생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아니, 그것을 초과하는) 가장 통속적이고 드라마틱한 ‘여자의 일생’을 구현했다.

 

행복을 평범ㆍ소박하고 조용한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간주할 때, 생의 화려함과 불행(험난함)은 서로 배치(背馳)되는 것이다. 화려한 생은 불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생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자살할 확률도 높다. 미니멀한 삶이 훨씬 안전하다. ‘단순하게 살아라’... 모든 ‘뉴에이지’적인 것이 가르치는 바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ㆍ인기ㆍ권력 등으로 표상되는 생의 화려함(일상의 용어로는 ‘잘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는 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돈ㆍ인기ㆍ권력이 없는 생이야말로 불행한 것 아닌가. (우울증론자들은 그것을 필요한 만큼 추구하지 않는 것도 ‘우울’의 징후라 생각한다. <우울증에 반대한다>를 보라.)


모험을 걸어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자아의 작용, 즉 자아의 ‘기술’은 개인에게 닥치는 이 거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작동(해야) 한다. 안분(安分)의 논리는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계발되어 왔다. 그러나 안분은 패배와 자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초월과 다르다.

 

최 씨가 세상을 뜬 날, 한국에서 열리는 가장 화려한 행사의 하나인 PIFF 개막제가 열렸다. 레드카펫 위에 가장 비싼 옷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저 여자 ‘스타’들을 보라. 그리고 그 생과 자아를 상상해보자. 10대에 벌써 전국적인 인물이 된 저런 소녀의 삶은 무엇일까? 하지만 모든 여배우들이 최진실처럼 살지는 않는다. 그들 모두가 ‘연예’라는 현대 대중문화의 기제를 통해 소비되지만, 그녀의 생과 육체의 전체를 갈취당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최진실은 ‘근대적 연예인’, ‘여배우’이다. 생득적 계급ㆍ계층의 문제가 여기에도 관련된다.

 

소위 ‘공인’, 그중에서도 특히 ‘연예인’의 자아는 매우 위태로운 것임을 최씨의 자살이 보여준다. 그들은 ‘늘 노출된 상태’에서 지낸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감시(cf. 파파라치)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특히 연예인에 대한 세인의 평가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전국의 남녀노소가 언제나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육체의 세세한 모든 것과 연애ㆍ결혼경력과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소비’된다.


그러나 ‘소비’라는 말은 매우 무책임하고 둔탁하다. 평가하는 세인(수용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 ‘소비’는 그저 껌 한번 씹고 버리는 그런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특히 여성과 청소년에게 있어) 자아와 욕망의 투사이자, 표상행위이다. 이는 심각한 ‘수행’이다.

 

그런데 이 평가와 소비는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공간 덕분에 새롭게, 더욱 신경증적으로 제도화되어있다. 평가받는 쪽은 어떨까? 이건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타인의 평가, 세인의 평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바로 여기에서 자살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주목-받기(인정받기)’가 행복의 경계와 맺는 함수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그 상대적 작용을 거의 조정하지 못한다.

(계속)

 [출처] 최진실 씨의 경우 (1) |작성자 마포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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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아나운서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이들을 일컬어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아나테이너들은 '바른 말 쓰기'가 가능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지식인, 교양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거기에 남다른 끼나 쇼맨쉽까지 지니고 있다면
연예인들보다 더 광범위한 신뢰감과 대중적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거기에 연예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현실에서
방송국 사원으로서 받는 월급에 출연료 몇만원의 수당만으로도
연예인 급의 대중적 지지도를 내는 아나테이너들을 확보하는 것은
방송국으로선 제작비를 아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강수정이 <여걸식스>에 출연할 당시 출연료가 2만원이라는 얘기는
두고두고 개그소재로 활용될 만큼 놀라운 사실이었다.
비슷한 정도의 일을 하고도 연예인과 아나운서 사이의 인건비에는
엄청난 차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재벌가로 시집 가 버린 노현정이나
프리랜서 선언 후 연예기획사에 들어간 강수정, 김성주 등의
잘키운 아나운서들의 '배신'은 방송국으로선 입맛만 다실 일이다.
연예인들의 출연료가 몇백만원인 것에 비하면
아나테이너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그런 만큼 좀 크고 나면 이러한 착취구조를 벗어나
제대로 된 몸값을 받으며 일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아나테이너가 주는 '이득'때문에
방송국에서는 결국 '배신'할 줄 알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아나테이너들의 양성소 노릇을 자처할 것이다.


연예기획사들이 연예인 한 명을 키워 스타로 만들기가 힘든 만큼
스타급 아나운서를 만드는 일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빨리 스타로 키우고 싶긴 하고, 방법은 쉽지 않고...
그래서 요즘은 '아무나 걸려라'식의 아나테이너 '집단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여러 방송국에서 다 진행중이지만
그 대표적 프로그램 중 하나는 <지피지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피지기>에는 메인 MC로 박명수, 현영, 정형돈, 그리고 최근 합류한 조혜련이 있고
서브 MC로 네 명의 여성 아나운서들이 함께 참여한다.
여기에 한 두명의 스타를 초대해 아나운서들이 질문을 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질문을 채택하여 답변하도록 한다.
최근 들어 모두가 참여하는 게임 형식을 강화하는 등의 개선을 하고 있지만
기본 포맷은 여전히 이 서브 MC들로 기용된 여성아나운서들의 '경쟁'구조이다.


이러한 <지피지기>는 나름 MBC의 간판 오락프로그램들을 연구해
벤치마킹한 흔적도 보인다.
참신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인터뷰이의 평가를 구하는 방식은
<무릎팍도사>에서 '도사 배틀'의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네 명의 아나운서들에게 경쟁을 하도록 함으로써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해 차츰 친근한 이미지를 갖도록 하려는 의도는
<무한도전>의 여섯 남자들의 무한경쟁과 닮은 데가 있다.
또한 MBC는 아니지만, 예전의 <여걸식스>에서의 여성들의 경쟁구도에서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그 결과는 실패로 보인다.
좀 심하게 말하면, 도무지 <지피지기>에
그 허수아비같은 아나운서 네 명이 왜 필요한지를
전혀 이해하기 힘들다.


<무릎팍 도사>, <무한도전>, <여걸식스>의 형식을 차용했지만
그것들이 인기있는 이유, 본질은 전혀 끌어오지 못했다.

<무릎팍 도사>의 '도사배틀'이 재미있는 것은
정말 솔직하고 '독한' 토크를 주고받는 <무릎팍도사> 프로그램 전체가 주는
아우라의 덕분이며, 출연자의 이야기 듣기에 집중되어 있는
프로그램 포맷의 강렬함 덕분이다.
<지피지기>처럼 총 8명이나 되는 mc들 사이의 산만한 진행으로는 나올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도중에 있는 질문들이기에
<무릎팍도사>의 질문을 두고 벌이는 '도사배틀'도 흥미로운 것이다.


<무한도전>과 <여걸식스> 속 다수 mc의 경쟁포맷이 재미있는 것은
그들 사이의 끈끈한 인간적 애정이 시청자들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짜로 '지네끼리' 신나서 논다.
그 과정에서 경쟁이나 싸움, 격한 벌칙을 나누는 것은
'놀이'라는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마음 편히, 유쾌하게 그들의 경쟁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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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지피지기>의 아나운서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경쟁에만 목을 매고 있는 듯 보인다.
초반에는 매주, 지난주의 아나운서들에 대한 리뷰 앙케이트 결과를 공개하며
누가 제일 웃겼는지, 누가 제일 호감가는 지 등을 조사, 발표했다.
그 순위에 따라 묘하게 일그러지는 이들 아나운서의 표정을 보는 것도 불편했고,
"다음주엔 꼭 좋은 결과를...!"을 외치며
투지에 불타 서로 끊임없이 탐색전과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오락프로그램으로 즐기기 힘들게 부담스러웠다.

메인mc와의 융화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식한 이미지'를 주로 보여주는 박명수 등의 연예인mc와
지적이고 고상한 이미지를 잃고싶지 않은 아나운서 mc들 사이에는
서로 섞일 수도 없고, 섞이고 싶지도 않은 듯한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상상플러스>가 아나운서가 서브MC에 가까운 역할을 함에도
연예인 MC들(이휘재, 탁재훈 등)보다 한 단 높은 데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전체의 프로그램 진행의 중심을 잡도록 한 것이
왜 안정감을 주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묘한 기류의 원인을 이해하게 된다.
<지피지기>는 진행의 중심을 연예인이 잡고, 아나운서들이 재롱을 떠는
역의 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

게다가 그들은 도무지 웃/기/지/가/않/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토크쇼 중심으로 들어와 끼어들지도 못하고,
재미가 없으니 그들의 출연분은 대부분 편집된다.
그들이 없어도, 아니 없어야 재미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들을 계속 그런 '허수아비'처럼 세워둬야 하는가?
점점 아나운서들에 대한 '신뢰'의 이미지만 흐뜨러지고 있고
한 명이었으면 주목해 봤을 아나운서조차
네 명이 같이 나오면서 다같이 별볼일 없어 보인다.

<지피지기>가 계속해서 지금의 mc형태를 고집하려면
제일먼저 그 아나운서들끼리, 그리고 박명수, 현영, 정형돈, 조혜련과도
좀 많이 친해지는 일에 더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무의식중엔 서로 '언니', '오빠'라고 부를 만큼 사적인 친밀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 어색한 분위기는 탈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싼값'이더라도 아나운서를 네명이나 불러다가
아나테이너로 키우는 포맷은
그만두는 편이 <지피지기>로서는 더 좋을 것 같다.
초대손님이 좋아서 어쩌다 한번 보았던 나같은 시청자들의
뒷담화, 불평불만을 줄이고 지속적인 시청자로 남게 만들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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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무한도전>이 화제가 될 때에는 시큰둥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무한도전>에 맛을 들였다.

계기는 우연적인 것이었는데,
기분이 울적할 때 마침 TV에서 <무한도전>이 하고 있었고,
멍하고 우울한 기분에 TV를 끄거나 채널을 돌릴 힘도 없어서
그냥 넋놓고 쳐다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낄낄 웃어버린 경험 한번-그것이었다.
이 우연한 경험은 일종의 '강박장애'처럼,
우울한 기분일 때 <무한도전>을 보면 증세가 나아진다는 자기암시로 이어져
그동안 방영됐던 <무한도전>들을 어둠의 경로로 열심히 다운받아
하루에도 몇개씩 보는 상태에 이르게 했다.

<무한도전>을 통해 '재발견'한 최고의 인물은 단연 박명수.
박명수의 매력과 장점은 따로 한 편의 글을 써야 할만큼
독특하고 복잡하며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므로
여기서는 "<무한도전>이라는 시스템의 경계에 서서
나머지 캐릭터들의 '오버'를 균형잡아주는 존재"라는 정도로만 일갈.

물론 박명수의 '오버'가 없다는 것은 아니나
나머지 캐릭터들이 다른 근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착하고, 감성적이고, 방정맞고, 귀여운 캐릭터를 기본으로 하는 데 반해
박명수는 이들의 오버스런 '착함', 눈물, 체제순응성을
적당히 깨 주면서 일반인들의 '상식'에 약간의 '위악'을 곁들여
<무한도전>의 색채에 균형감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또한 그러한 박명수를 다시 균형잡아주는 유재석의 존재가 있기에
<무한도전>은 사람들에게 '호감', '따뜻함'을 주는 프로그램라는 인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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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찾아 본 <무한도전>은 몇 개의 부류로 다시 나눌 수 있다.

1. 초특급 스타 초대 특집-김태희, 패리스힐튼, 앙리 등 초대

2. 몸개그를 위해 3D의 혹독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 특집-무인도, 서울길찾기, 모내기 등

3. 몸이 고되지는 않으나 특이한 상황에 처하게 한뒤 6명에게 정착된 캐릭터에 따른 반응을 보는 특집-노홍철 집 방문, 신입사원 면접, 일본 팬미팅 등

4. '인간갱생'프로그램인양 (자칭)'평균이하'의 6명에게 무언가를 '학습'하게 하는 특집-스포츠댄스, 밴드 콘서트 등

이 그것이다.

그리고 각 경우에 맞춰 중간중간 <무한뉴스>라는 형태로
자신들의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여러가지 게임으로 편을 나눠 경쟁하게 한 뒤,
이들이 처절한 승부근성과 '무한이기주의'를 보이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본 포맷이다.


1번과 같은 초특급 스타를 초대하는 형태의 경우는
앙리, 효도르 정도의,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정도의
희소성있는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한 사실 큰 흥미를 끌기 어렵다.
<무한도전>의 장점은, <불후의 명곡>이나 <라디오스타>의 MC들과 대비되게
나온 게스트에 대한 '무한한' 경외, 찬양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희귀' 스타들의 경우엔 시청자들도 6명과 거의 동일화되면서 볼 수 있고
그들 6명이 만들어내는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 덕분에
어렵게 모신 '손님 대접'이 흐뭇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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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정쩡한('신비주의'로 몸값만 비쌀 뿐인)국내 스타들을 초대했을 경우에는
<무한도전> 초반에는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나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이 초특급 국내 스타들을 데려다
제대로 '까발기는' 일이 가능해 진 이후에는
6인의 '경외', '찬양'으로 점철된 초대손님 모시기 방식은
초대손님 없이 '평균이하'의 6인들끼리 벌이는 이전투구나 잡담보다도
지루할 때가 많다.

특히 최근에는 패리스힐튼이라는,
나름 '스타'라고 할 수는 있으나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경배'하기엔
많-이 부족한 인물을 초대한 뒤로, 다시는 그런 초대손님 특집은 안했으면 싶을 정도이다.
또 이런 특집은 자체적으로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듯 하고.

그러므로 나머지 세 가지가 이 프로그램의 주된 포맷이 되는데,
최근들어 이들의 '특집'에 대해
칭찬보다 비판을 보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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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용궁특집>이라고 해서, 6명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헬기를 타고 바다 한가운 데에 있는 가스전에 가는 것으로
다른 한 팀은 배를 타고 가서 가스전으로 올라가는 바스켓을 타는 것으로
과제를 주었던 특집이었다.


이 특집에서 주로 '겁쟁이' 캐릭터가 많은 6명은
헬기와 바스켓을 타는 것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고래고래 치는 모습으로
한 시간을 채우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원성을 샀다.
"이제 소재 고갈이냐?" "너무 안일하다" 등.
겨우 헬기 타는 것, 바스켓에 올라 고공 상승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평균나이가 30대 중반인 이 6명이
그렇게 엄살을 떨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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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인지, 어제 했던 <무한도전>에서는 <특전사특집>으로
간만에 제대로 혹독한 상황에 6명을 처하게 만들었다.
팬션으로 놀러간다고 꼬신 뒤,
그들을 특전사 부대의 훈련에 참가하게 하여
눈밭에서 구르고 얼차려를 시키고 눈밭에 묻어둔 라면 세개를 찾아
눈을 녹여 끓여먹게 하는 '강한' 3D노동을 굳이 시켰다.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는
'상식'적인 수준에 가장 근접한 박명수의 반응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박명수는 거의 말도 잘 안하며,
지치고 잔뜩 추위에 언 얼굴로 겨우겨우 이 혹독하고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좀더 가혹한 상황을 만들어주라고 비난을 했던 것일까?
정말 저렇게까지 힘들게 촬영을 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한도전>을 좋아해 줄 것인가?


<무한도전>은 스스로 말하듯 '리얼버라이어티쇼'이다.
6명의 리얼한 캐릭터들, 그것이 다양하고 각기 개성을 가짐으로써 만들어내는
묘한 재미때문에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캐릭터들에 애정이 생기지 않은 사람들은 참 참을수 없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왜 저러한 애들의 허접한 짓거리를 보고 있어야 하나...이러한 생각은
나도 앞에서 말한 우연한 기회 전까지는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특전사 특집과 같이 지나치게 혹독한 상황은
오히려 모든 캐릭터들을 동일화해버린다.
모두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같은 반응만을 보이기 때문이다.
유재석처럼 '프로'근성이 뛰어난 MC정도만
그 안에서도 가끔 웃음과 농담을 날릴 뿐
대부분은 힘들다, 이게 뭐냐, 미치겠다 등의 불평으로 입을 모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분명, 별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나치게 오버하며 겁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엄살'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나 이 때의 '별것도 아닌 상황'을 만드는 것은
상황의 혹독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의 목적성, 의도같은 것들이다.
그것이 꼭 '교훈', '계몽성' 같은 것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그 '도전'이 조금은 값진 어떤 것일때 빛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같은 3D노동방식의 2번부류였다 해도,
모내기 특집과 같은 경우엔 많은 칭찬을 받았었다.
오락프로그램이기에 그들이 모내기를 직접 체험해 보는 신은
'체험 삶의 현장' 수준의 지속적이고 깊이있는 것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저런 일을 체험함으로써
농촌 일에 대해 진심으로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역시 시청자들도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도전해야 할 것들의 방향을 잘 보여주었다.


4번부류 역시 그런 점때문에 사람들은 감동했었다.
스포츠댄스 대회에 실제로 참가하기 위해
한번 얼핏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석달에 걸친 연습을 진지하게 수행해 내는
'평균이하'이지만 참 '열심'인 6명의 모습을 보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정말 보잘것 없는 그들이지만, 자기가 맡은 조금은 어려운 과제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은 가짜가 아닌 '리얼'이기 때문이다.


<용궁특집>은 2번과 3번의 경계에 있던 기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도는 3번정도의, 약간 특이한 상황 투입이었으나
모든 출연진들이 2번의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과도한 반응을 보였고
그것을 촬영하는 제작진들조차 그들의 과도한 반응에 몰입해버렸던 듯하다.


그러나 <무한도전>이 좀더 장수하려면 이 2번과 3번 사이에서
자신들의 방향성을 잘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쪽이 됐든, '의미부여'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지향하는 것.
그러면서 신선한 소재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가능해야만 이 프로그램이 '한 물 간'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 수있다.


"네가 생각해내 봐라. 그게 말처럼 쉽냐?"라고 한다면
나도 하나쯤은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의 '상황'들이 몸이 아프고, 힘들고, 지치고, 무서운 것들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왔고,
6명이나 되는 인물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이 아직 도전해 보지 못한 영역들이 여성과 관련된 것에 많이 있다는 것은
별로 의식되지 못한 게 아닌가.


<김장체험>에서도 아줌마들의 우악스런 '세일상품 쟁탈전'의 투지를 보여주긴 했어도
김장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자기들 생각나는 대로 다 다듬고 정리된 재료들을 재미삼아 섞어서 양념 만드는 일로는
그들의 도전이 감동적이지 않다.


<아빠수업>도 아이가 너무 울자 곧 실패하고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보내주는 것으로
급하게 마무리된 것 역시 지나치게 도전이 피상적이고 진지하지 못했다.
정말 육아체험을 제대로 하려면,
돌아갈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사는 고아원에서 하루종일 아이들을 보살피는 정도는 해줘야
진정한 '무한' '도전'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한 두가지인가?
임신, 출산, 육아, 결혼생활, 명절지내기, 외모'불량'으로 받는 차별과 편견 등
그들 여섯 남자들은 죽어도 모르는 그런 세계의 고민들이 아직도 많고 많다.
그것들 속에서 도전의 과제를 찾는다면
그러한 도전들은 각 캐릭터들의 개성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무조건 힘들기만 한 일이 아닌(힘들어도 회피할 수 없는) 도전이며,
그들의 도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다른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또 새로운 체험과 의식각성을 도울 수 있는 일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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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인기 순위 1990-2007

2007/10/09 06:00 | Posted by 하이腦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시청률 베스트 순위입니다.


01위 : 첫사랑 (KBS2) ------------- 65.8% (1997년4월20일)(최수종,배용준)
02위 : 사랑이 뭐길래 (MBC) ------- 64.9% (1992년5월24일)(최민수,하희라)
03위 : 모래시계 (SBS) ------------ 64.5% (1995년2월6일)(고현정,최민수)
04위 : 허준 (MBC) ---------------- 63.7% (2000년6월27일)(전광렬,황수정)
05위 : 젊은이의 양지 (KBS2) ------ 62.7% (1995년11월12일)(이종원,배용준)
06위 : 그대 그리고 나 (MBC) ------ 62.4% (1998년4월12일)(박상원,최진실)
07위 : 아들과 딸 (MBC) ----------- 61.1% (1993년3월21일)(최수종,김희애)
08위 : 태조왕건 (KBS1) ----------- 60.2% (2001년5월20일)(최수종,김영철)
09위 : 여명의 눈동자 (MBC) ------- 58.4% (1992년2월6일)(채시라,최재성)
10위 : 대장금(MBC) --------------- 57.8% (2004년3월23일)(이영애,지진희)

11위 : 파리의 연인(SBS) ---------- 57.6% (2004년8월15일)(박신양,김정은)
12위 : 보고 또 보고 (MBC) -------- 57.3% (1998년10월12일)(김지수,정보석)
13위 : 진실 (MBC) ---------------- 56.5% (2000년2월24일)(박선영,최지우)
14위 : 질투 (MBC) ---------------- 56.1% (1992년7월21일)(최수종,최진실)
15위 : 바람은 불어도 (KBS1) ------ 55.8% (1996년2월26일)(최수종,유호정)
16위 : 목욕탕집 남자들 (KBS2) ---- 53.4% (1996년8월25일)(이순재,강부자)
17위 : 국희 (MBC) ---------------- 53.1% (1999년11월16일)(김혜수,정선경)
18위 : 청춘의 덫 (SBS) ----------- 53.1% (1999년4월15일)(심은하,유호정)
19위 : 토마토 (SBS) -------------- 52.7% (1999년6월3일)(김석훈,김희선)
20위 : M (MBC) ------------------- 52.2% (1994년8월30일)(심은하)

21위 : 폭풍의 계절 (MBC) --------- 52.1% (1993년12월22일)
22위 : 야인시대 (SBS) ------------ 51.8% (2002년12월9일)(안재모,김영철)
23위 : 엄마의 바다 (MBC) --------- 51.6% (1993년12월26일)(최민수,고현정)
24위 : 야망의 전설 (KBS2) -------- 50.2% (1998년10월25일)(최수종,유동근)
25위 : 여인천하 (SBS) ------------ 49.9% (2001년11월13일)(강수연,도지원)
26위 : 아들의 여자 (MBC) --------- 49.7% (1994년2월22일)
27위 : 용의 눈물 (KBS1) ---------- 49.6% (1998년5월30일)(유동근,김무생)
28위 : 별은 내가슴에 (MBC) ------- 49.3% (1997년4월29일)(안재욱,최진실)
29위 : 야망 (MBC) ---------------- 49.0% (1994년2월23일)
30위 : 서울의 달 (MBC) ----------- 48.7% (1994년3월27일)(한석규,최민식)

31위 : 정때문에 (KBS1) ----------- 48.7% (1997년12월11일)(이재룡,하희라)
32위 : 마지막 승부 (MBC) --------- 48.6% (1994년2월22일)(손지창,장동건)
33위 : 이브의 모든 것 (MBC) ------ 48.3% (2000년7월6일)(장동건,채림)
34위 :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SBS) 48.2% (1993년5월25일)
35위 : 신데렐라 (MBC) ------------ 48.0% (1997년7월13일)(황신혜,이승연)
36위 : 인어아가씨 (MBC) ---------- 47.9% (2003년2월5일)(장서희,김성택)
37위 : 올인 (SBS) ---------------- 47.7% (2003년4월3일)(이병헌,송혜교)
38위 : 사랑할때까지 (KBS1) ------- 47.1% (1997년2월27일)(류시원,전도연)
39위 : 파일럿 (MBC) -------------- 46.2% (1993년11월2일)(최수종,이재룡)
40위 : 딸부잣집 (KBS2) ----------- 45.9% (1995년1월22일)(하유미,변소정)

41위 : 마지막전쟁 (MBC) ---------- 45.5% (1999년9월7일)(강남길,심혜진)
42위 : 미스터Q (SBS) ------------- 45.3% (1998년7월16일)(김민종,김희선)
43위 : 사랑을 그대품안에 (MBC) --- 45.1% (1994년7월12일)(차인표,신애라)
44위 : 왕과 비 (KBS1) ------------ 44.3% (2000년3월11일)(안재모,채시라)
45위 : 장미와 콩나물 (MBC) ------- 44.1% (1999년9월5일)(손창민,최진실)
46위 : 신고합니다 (KBS2) --------- 43.4% (1996년8월20일)(이휘재,구본승)
47위 : 이 여자가 사는 법 (SBS) --- 43.1% (1995년3월6일)
48위 : 장희빈 (SBS) -------------- 42.9% (1995년9월26일)(정선경)
49위 : 코리아게이트(SBS) --------- 42.5% (1995년10월22일)
50위 : 천국의 계단 (SBS) --------- 42.4% (2004년2월5일)(권상우,최지우)

51위 : 가을동화 (KBS2) ----------- 42.3% (2000년11월7일)(송승헌,송혜교)
52위 : 예감 (MBC) ---------------- 42.3% (1997년10월21일)

* 분석해 봅시다.

1. 방송사별 : MBC(26), KBS(13), SBS(13)

2. 배우별 : 최수종(7), 최진실(4), 최민수(3), 김영철/김희선/배용준/송혜교/심은하/안재모/유동근/유호정/이재룡/장동건(2)

3. 연도별 : 92(3), 93(5), 94(6), 95(6), 96(3), 97(6), 98(5), 99(5), 00(5), 01(2), 02(1), 03(2), 04(3)
                (94년 ~ 00년까지가 절정이고, Mass 드라마의 시대는 끝나고 있는듯)

4. 시청률 : 60%(8), 50%(16), 40%(28)

========
저는 이 중에서 스물여덟개 편을 봤네요;;; 세고 보니 많군효.
그런데 <첫사랑>을 안 본 게 참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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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첸씨 2007/10/09 08:23

    정말 분석의 욕망을 자극하는 자료입니다... 제게 저중에 가장 기억나는 단 한편을 꼽으라면 "Boys be ambitious"라는 한석규의 대사로 끝나는 <서울의 달>입니다. 코믹과 멜로에 비극적 '현실'이 하모니를 이뤘지요.

  2. BlogIcon coolya 2007/10/09 10:10

    음,,저는 제대로 본 건 35편정도군요. 나머진 보다 말았던 것들이고...좋은 자료입니당~제가 앞으로 써볼까 하는 <매혹의 법칙>이란 글에도 유용할것 같아요~하이뇌님 감샤~~^^

  3. BlogIcon coolya 2007/10/09 10:29

    00년 이후 매스드라마의 시대가 끝난건 아무래도 케이블티비의 확산으로 다채널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겠지요...그래서 지금은 30퍼센트만 넘어도 완전 흥행드라마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50%를 넘는 00년이후 드라마들은 약간은 대중들의 '오기'와 '기록갱신'욕망도 작용하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파리의 연인>같은 작품이 평균시청률은 30% 중후반이었을텐데요, 마지막회로 치달을때 어찌나 언론들이 40%넘길까?-넘겼다!, 50%넘길까?-넘겼다! 식으로 대중들을 자극했던지...<태극기..>, <실미도>, <왕의남자>같은 영화를 천만관객을 넘기도록 만드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승의 길

2007/10/08 12:33 | Posted by coolya

2007/09/04 - [문화it수다] - 슬램덩크와 안 선생
'선생님'이란 소리를 '학생'들로부터 듣기 시작한 지
어언  6년.
처음엔 '선생님'이란 말도, 가끔 헷갈려 부르는 '강사님', '교수님'이란 말도
어찌나 낯뜨겁던지..나를 위한 호칭같지 않았던 시간을 지나고 지나
이젠 남을 부르는 '교수님' 소리에도 '뻔뻔'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부르는 건가 쳐다보기까지 하게 됐다.



그럼에도...여전히 선생의 길은, 더구나 '스승'의 소임은
나로부터 머나먼 것처럼만 여겨진다.
불완전한 지식, 불안정한 신념, 불분명한 비전.
언제쯤 나는 온전한 '스승'이 될 수 있을까.
지난번 하이뇌님의 <슬램덩크>글을 읽다가
문득 그 '스승'이라는 것의 대중문화 속 이미지가 '꽂히'면서
이런 생각에 미치게 됐다.

<슬램덩크>를 비롯하야...최근 내가 본 일본 대중문화 속 '스승'들은
<훌라걸스>의 알콜중독 여선생, <노다메칸타빌레>의 호색한 슈트레제만처럼
대체로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선생이야?"로 보이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주인공들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지만,
처음엔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가 없다.
가르칠 의지도 자격도 없어보인다.
그래서 주인공들 역시 처음엔 그들을 선생대접도 하지 않고 무시하며,
그런 선생의 제자라는 것을 한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어떤 특정 순간에
자신들의 '천재성'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를 갖게 된다.
허허실실거리거나 인생포기자처럼 굴던 그들이
갑자기 이글eye가 되어 눈빛을 반짝이거나 온몸으로 오-라를 내뿜으면서.
그 순간의 '카리스마'에 제자인 주인공들은 이제
항복의 깃발을 흔들며 "스승님, 우리 스승님"을 외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천재성이 곧 주인공의 성장으로 일대일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능력은 자신의 것일 뿐이고,
주인공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들의 그 분야에서의 본질적, 기술적 재능이 아니라
아주 작은 Tip들이며, 그것들은 정신적 가치에 더 가까운 것들이다.
이를테면, "교향악은 혼자선 못하는 것이지유~", "프로는 어떤 순간에도 웃어야 하는거야!"와 같은
'천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정신자세의 문제들.

그 분야의 skill에 관한 것은 '진정한' 천재(로 곧 등극하게 될) 주인공이 이미 가지고 있거나,
스스로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은 그런 스킬의 문제가 아닌, 정신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주인공에게 결핍된 이 정신적 가치를 채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토리.
여기에 대중들의 '매혹'의 한 법칙이 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 최고의 농구선수, 최고의 지휘자, 최고의 댄서...
이런것들이 되는 길이 피아노를 얼마나 잘치는가, 키가 얼마나 크고 빠른 드리블과 정확한 슈팅을 하는가,
악보를 해석하고 이해하며 모든 악기의 소리를 얼마나 잘 판독해내는가, 유연하고 빠른 몸놀림을 가졌는가
등에 있다면 대중들은 금세 시큰둥해 질 것이다.
그런 것을 획득하고, 그리하여 천재가 되는 일은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이다.
우리같은 '범인(凡人)'들은 평생 가도 쫓아갈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신적 가치의 문제는 모든 삶과 일상으로 '유추'가 될 수 있다.
내가 지휘자가 아니어도 음악이랑은 무관해도,
삶에서 역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으며,
프로 댄서가 아니어도 어떤 분야의 '프로'든 자신의 개인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정신적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 문화콘텐츠의 경계를 넘어서고
보편적인 매혹의 지점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들이 일깨워 주는 가치들이, 우리가 막연히는 알면서도 쉽게 잊고 있게 되는 것일 때,
그래서, 그동안 이것이 결핍되어 있던 주인공들을 보면서
우리같은 범인들은 그것을 간파해 내지 못했을 때,
그리하여 식상하고 진부하지 않은 철학을 담고 있을 때 얻게 되는 감동은 작지 않다.

이때문에 우리는 스승 인물들의 "넌 아직 멀었다."는 말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멀었다'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건지
주인공도 이 이야기를 보고 있는 대중들도 쉽게 알 수 없는 것.
그 답을 '돌팔이'로 보이는 그 '스승'들만이 알고 있는 것.
거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대중문화들이 지향하는 '스승'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스승이란, 모든 면에서 올바르고 도덕적이며 표준적인 포맷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FM들이야말로, 숨겨진 정신적 가치를 찾아낼 혜안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조금은 삐딱하게, 조금은 되는대로 살아도,
제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정확히 무언지를 간파해내고
그것을 적절한 때에 제대로 지적해 줄 수 있으면 족하다는 게 이러한 이야기들이 말하는
진짜 '스승의 길'인 듯 하다.


우리 나라에서 '떴던' 드라마의 스승은
천재 제자의 결핍을 찾아 지적해내는 것은 비슷하지만
일본에 비해 그 스승의 기본적 품격을 잘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허준>의 유의태, <대장금>의 한상궁처럼
그들은 대체로 '올곧은', '올바른' 성품을 지니고 엄격하다.
오히려 이 '엄격함'이 스승의 중요한 덕목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의 '스승'에 대한 보수적 기대가치가 더 높은게 아닌가 한다.

어쩌다가 '돌팔이'(처럼 보이는) 선생님을 그리기라도 하면
당장에 교사들이 들고 일어서거나, 유해한 드라마로 찍히는 사회 분위기가
우리나라 드라마들을 '억압'하고 있다.

또한 '참신'한 정신적 가치, 새로운 철학을 마련해내지 못하는 것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의 한국드라마의 부족함의 원인일 수 있다.
알콜중독자, 호색한 선생님의 '자격미달'을 '캄프라치'해줄 만한
독특하지만 정말 중요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불량선생'을 그리는 데에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바르고 엄격한 스승, 현실에서는 무척 절실한 존재들이지만
픽션에서라면 좀 자유로울 순 없을까?
나는 이런 것을 좀더 고민하는 한국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서의 감독 백일섭처럼,
(코치)"감독님, 너무하신거 아닙니까? 저놈 별명이 왜미친개인데요. 저놈 감독 코치 다 물어버릴 놈이예요."
(감독)"자네, 일류하고 이류 차이가 뭔줄 알아? 말 듣고 안듣고 차이야. 어떤 쪽이 일류인것 같애?"
(코치)"그야 당연히 말 듣.."
(감독)"안듣는 쪽이야. 최소한 자기 생각이란 게 있는 거거든."
같은 말을 하는 스승 캐릭터가 다양하고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데..나는, 그럼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할까...?
혹은 어떤 스승이 될 수 있을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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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ine 2007/10/08 20:53

    므흐흐 일본만화의 선생님들은 정말 다양한 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슈트레제만은 정말 좋은 선생이라 하기도 뭣하지만, 가끔 노다메에게 몇 마디 흘려주는 게 대단하죠. 노다메-치아키의 관계에도 여러 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고..ㅎㅎ 저는 그래도 안 선생님의 열렬한 팬!!!

    아 그러고보니 옛날옛적에 무슨 호랑이 선생님인가 하던 어린이용 드라마 있지 않았던 가횻?

  2. 첸씨 2007/10/08 22:45

    호랑이 청자 담배 피던 시절에 호랑이 선생님 있었죠... 왜 <여왕의 교실>인가, 그런 엄청난 '스승'이 등장하는 일드도 있잖슴꺄?

  3. BlogIcon coolya 2007/10/09 10:23

    저도 호랑이선생님 열심히 봤었드랬는데...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네용...<여왕의 교실>은 못봤는데, 어떤 엄청난 스승이 등장하는지 궁금하네요-지난번에 일본에서 대학강의를 하고 있는 한 후배랑 얘기를 했었는데 일본은 선생님의 위치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열악하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되바라져서리..애들은 함부로굴어도 선생님은 꼬박꼬박 존대해야하고...처우도 별로 안좋다고...

  4. 2007/10/09 12:47

    헐; 요즘 중고딩 선생님들도 많이 힘들다고 하던데..
    고어군이 잘 알겠지요.
    제 친구 여친은 공고에서 영어선생님 하다다가, 이제 외고로 옮겼는데, 둘 다 괴롭고 힘든 것은 (다른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
    공고 친구들은 너무 말안듣고 공부 안해서, 외고는 애들이 은근히 선생님 무시하고 학부모는 대놓고 갈궈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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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노다메 칸타빌레. 미마시따... 망가니 미루코또가 아루노데,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물론 망가도 좋았지만, 좋은 원작을 망쳐버린 번안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그러나 드라마 정말 좋았습니다. :) 역시 망가로는 들려줄 수 없는 음악!

소래데... 세미나 발제도 펑크내고 다 보아버리고 말았습니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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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노다메 칸타빌레의 첫화. 치아키가 베토벤 월광 소나타 제3악장을 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치던 곡!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무슨 이놈이 손가락이 뿌서진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사업의 실패로 더 이상 음대를 지원할 수 없게 되어, 이제 베토벤과도 안녕이야 하면서 슬피 우는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혹은 토벤 형님처럼 귀가 점점 안 들리게 되어 피아노에 귀를 대고 공명음을 들으며 희미하게 미소짓는 음울한 천재가 기억날지도 모르겠으나...

영어, 일어 공부때문에 하루에 2~3시간 치던 피아노를 시간 부족으로 그만 치는 -_-; 결심을 하던 때 마지막 치던 곡이 바로 월광 3악장이었음에(것도 1달도 안되었지라우), 나름 지 멋대로 아무 이야기나 만들어서 심취하고 있었던 바. 아흐, 천재에게는 시련이! 라고 나름 생각했지라우.

여하튼 잡소리는 그만두고(라기보다는 이어가보면..) 월광 3악장. 피아노를 치다보면, 역시 제멋대로 베토벤 소나타는 그 힘, 손놀림의 자연스러움과 스피드에 맛을 들이게 되고, 쇼팽 녹턴은 그 낭만성과 애절함, 뭔가 유혹하는 듯한 나긋함, 에뛰드의 미칠것같은 손꼬임, 멘델스존의 느긋함이랄까 등등 이미지를 잡아서 곡 해석도 지멋대로 악상이 없는 곳에서는 맘대로 포르테 포르테 피아니시모! 크레센도 오케! 하며 치는 맛이지라우.

노다메처럼 맘 대로. 돌세, 돌세, 칸따빌레 :)

아후! 그리고 슈만. 노다메가 피아노 콩쿨 본선 첫번째 곡이지라우. 슈만하면 또 제 아픈 과거가 있지라우. 제가 코스타리카에서 러시아 선생님께 레슨을 받을때, 마지막 귀국 전에 치던 곡이 또 슈만이었지라우. 한국에서는 별로 슈만을 안 친다던데, 나는 요상하게도 베토벤보다는 슈만을 쳤던 기억이지라우.

어찌 코스타리카에 러시아 피아노 선생님이 계셨는가. 이것도 또 인생 드라마지라우. 코스타리카 남자와 결혼해서 코스타리카에서 왔는데, 이혼당하고 홀로 피아노 레슨을 하며 근근히 살고 있는 옛 소련 제국의 피아니스트. 추운 나라 러시아에서 코스타리카 밀림에! 캬. 슬프지라우. 하지만 이 분에게 배우는 아해들은 더 슬펐지라우. 스페인어로 이야기하시다가 화나면 러시아어로 소리지르시는 이 분께, 스페인어는 한자도 모르고 러시아어는 아마 러시아어일 것이라고 짐작만 했던 꼬마는, 코스타리카라는 어리둥절 밀림 베이베에서 피아노를 배웠지라우. 우리는 바디 토킹으로 체르니를 넘고, 눈빛으로 멘델스존과 드보르작을 만나고, 몇 번의 고함과 한숨과 정적 끝에 슈만까지 다달었지라우. 그치만, 그렇게 슈만에서 이별했지라우. 가끔 아직도 그 센세이가 떠오른다우. 잘 지내고 계실지. 코스타리카에 다시 가면 혹여나 볼 수나 있을지. 지금도 의사소통은 안 되겠지만, 그냥 :)

노다메가 슈만을 치는데, 문득 그렇더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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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KBS 교향악단은 큰 사진을 찾을 수 없어서 ^^;)

글구, 역시 베토벤 교향곡.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얼마전에, 아는 피아니스트 분이 KBS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셔서 갔지라우. 아는 분이, 그것도 피아니스트이면 공연 볼 때 잘 집중이 안되고, 그 분이 혹여 틀릴까봐 긴장하게 되지라우. 그래서 오히려 협연때보다는 협연 전 드보르작이니 멘델스존이니 교향곡 때, 오케스트라의 음에 감동했지라우.

그렇게 가까이서 오케스트라를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지라우. 그들의 표정, 활의 움직임이 다 들어왔지라우. 원래 그 전에는 피아노나 첼로 독주나 실내악을 더 좋아했지라우. 뭐랄까, 오케스트라는 너무 음이 많고 전개가 복잡하다랄까.

그치만, 이번 오케스트라를 보고는 참 떨리는 경험을 했지라우. 전체적으로 활이 움직이는 모습. 그 한 명 한 명이, 이런 수준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좌절과 짜증과 희열들이 모이고 모인 것일까. 어린 꼬마시절부터 악기를 손에 쥐었을 그들. 특히 백발의 콘서트 마스터의 바이올린... 삶의 조각조각들이 모여서, 시간들이 압축되고 쌓여서 이렇게 현현하는 느낌. 이런 공연, 공연을 위해 사는 사람들. 물리적으로 자신 삶을 목숨을, 시간을, 여기에 쏟아넣어서 부어서 만들어내어 음으로 화하고, 그 음은 그 반향은 나를 울리고 사라지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 울리고 사라지는 게, 음이지라우.. 결국 진동이란 음파의 진폭이란 그 간극이지라우.

연주자의 삶은 고독한 것이라고, 홀로 연습, 연습, 또 연습. 삶이 음악 속에 녹아들고, 반복 또 반복 또 반복. 고독이라고..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그런 고독 후에, 이렇게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느낌. 함께 울리며 증폭되며 함께 옅어지다가 사라지는 느낌.

치아키와 오케스트라를 보니 그 때 감동이 떠올랐지라우. 치아키와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지.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는데, 함께 음에 녹아들며 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아. 와따시모 칸타르따이네...
데모... 언제 다시 시작할지.....


ps. 나중에 알아보니 그 백발의 콘서트 마스터 생각보다 별로 나이 많지 않아서 약간 실망. ^^; 현 KBS 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악장. 김복수.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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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007/09/09 22:19

    그건 그렇고.. 설대 음대 피아노 전공 수시 곡목을 찾아서 듣고 있는 나는 뭐냐 -_-;;; 참고로 이번 수시 피아노 곡목. 베토벤 소나타 Op. 111(별로 귀에 익은 곡은 아님), 슈만 Carnaval Op. 9 그리고 자유곡.
    휴우~ 함 도전해보삼 ㅎㅎ :)

  2. BlogIcon 하이腦 2007/09/09 22:49

    새로운 문체를 실험중인가보오. 망가보다 훨씬 나았던 드라마. 곧 프랑스편도 나올 걸 생각하니 가슴이 떨린다..므흐흐. 정녕 세미나 펑크의 원인이 <노다메> 때문이었던 거야.ㅋㅋ 난 두 시까지 발제문 쓰다 눈이 벌개졌쥠.

  3. 2007/09/09 22:52

    헉; 프... 프랑스편도 나온다고요.. 키요욧!!! ㅋㅋㅋ
    앗; 발제문은 쏘리 ㅜㅠ 힝~ 누나 기분 풀릴 때까지, 저 대신 노다메 때려요~ ㅋ

  4. 아... 2007/09/10 00:00

    제 수업 듣는 어떤 남자애가 7일에 학교 스누포 정기연주회를 한다면서
    티켓을 주고 갔는데...그걸 받는 순간 치아키끄운이 생각나믄서
    괜히 그 아그가 멋져보이더랑께요~
    하필 연주곡도 브람스라 하더구만요..가진 않았지만서도.

  5. BlogIcon Gore 2007/09/10 00:16

    난 4시까지 발제문 쓰다 눈이 벌개졌쥠 -_-;
    (물론 나가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도 나였지; )

  6. 2007/09/10 09:21

    우리 소문, 실내악 같은거 해볼까요? ㅋ :)
    이런게 삶인데. 맨날 인용되는 맑스 할아버지의 말씀을 쪼깨 변형하면,
    낮에는 연주하고 오후에는 글쓰고, 저녁에는 세미나하는 삶.
    헐... ㅜㅠ

  7. BlogIcon 2007/09/10 09:25

    모두 죄송 ㅜㅠ
    고어님~ 저 사진은 근데 왜 저렇게 깨지는 거죠? ㅜㅠ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사진과 글 사이에 스페이스를 많이 줘도 저렇게 되네요~ 흑. 어제는 안 그랬는데, 오늘은 또 이런것은 무슨 원리인지... 쩝;

  8. BlogIcon Gore 2007/09/10 16:12

    요로코롬 해 달라는 얘기였겠지요 긴군?
    사진을 넣으실 때에 복사&붙여넣기로 넣으면 복잡해집니다.
    가급적 모든 사진을 바탕화면 등등에 미리 다운받아 저장하신 후
    편집 툴 자체의 '이미지' 삽입 기능을 사용해서 사진을 넣어주시면
    자동적으로 리사이즈도 되고 편리하니 참고합세요~

  9. 2007/09/10 16:50

    오옷 ㅜㅠ 감사! 그렇군요 ㅎㅎ 오케바리~~

학력위조 세태와 연예인

2007/09/07 00:01 | Posted by cool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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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학력 검증 중이다.
신정아로 시작된 학력 위조 파문은 끝간 데를 모르고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굵직굵직한 유명인사들의 학력에 대한 뒤늦은 '커밍아웃'과
학술진흥재단에 올려놨던 자신의 학력 취소자가 수두룩 하다는 등의 기사와 더불어,
가장 '학력위조' 파문의 중심에 있는 존재들은
재미있게도 '연예계'이다.

요즘과 같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대학들이
오히려 연예인 애들을 자기 대학 학생으로 '유치'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는 이 시대엔
사실 연예인들이 대학을 가는 일은 어려울 게 없다.
입시 전형 방법도 여러가지라 수능시험, 내신 따위와 아무관계 없이
수도권 내의 대학 방송, 연예 관련 학과에는 척척 붙는다.
그러니 그렇게 '쉽게' 대학생이 된 연예인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학벌에 대해선 아무런 느낌이 없어졌다.

사실 원래부터 학력은 연예계(를 비롯한 사회 많은 영역에서)와는
무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말이다..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최근의 어린 연예인들에게는 대체로 위 원칙이 적용되겠지만,
그 이전 세대와, 또 어떤 점에서는 지금도, 연예계에는 '학벌주의'가 있다.


내가 하는 우스꽝스런 연예인 '뒷조사'습관이 있었다.
그건 내가 볼 때 도통 '지적인 이미지'라거나 '뜰 만한', '대단한' 연기자가 아닌데도
지적인 주인공, 비중있는 역할, 모두의 관심을 받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
꼭 그 연기자의 학력 프로필을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그런 나의 '버릇'을 비난했다.
연예인의 학벌까지 확인하는 '꼴통 학벌주의자'라고.
뭐...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내 안에 있는 그런 학벌 위주의 사고방식을 부정하기엔,
나 역시 그런 학력 중심의 세계에 너무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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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내가 그런 버릇을 가진 데에는
내가 세운 '가설'이 생각보다 '승률'이 높았기 때문에
그걸 확인해 보려는 의도였다.
그 '가설'이란,
'학벌 좀 좋은 애들은 연예계에서조차 무턱대고 우대받는다는 것'이다.
서울대 출신 연예인들이라든가,
연예관련 학과가 아닌 서울시내 이름 좀 있는 대학을 나온 연예인들..
그들에게는 아주 쉽게 '지적인 이미지'의 꼬리표가 붙으며
연예인으로서 필요한 자기 능력(외모까지 포함하여) 이상의
좋은 대접과 주목을 받는다.
내가 '의아한' 느낌을 받은 연예인들의 학력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정말 꽤 그 가설이 자주 맞아떨어졌다.
그게 우스워서 확인해봤던 것이다.


왜 학벌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연예인들이 학력을 속이는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학력 위조 파문으로 울고불고 한 연예인들도
바로 이러한 연예계의 묘한 풍토 속에서
자신의 거짓 학벌을 포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화, 심형래, 장미희, 최수종, 오미희, 최화정, 주영훈...
그 외에도 꽤많은 걸로 밝혀지고 있지만
이 목록의 연예인들의 특징은
그들에게는 그동안 '지성미'가 한켠에 덧씌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지적인 이미지는 그들을 연기자나 가수 등의 연예인으로서 뿐 아니라
그들이 하는 모든 말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들은 그저 '골 빈' 연예인이 아니라는 느낌.
그것은 광고, 라디오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그들을 적극 활용하도록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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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분명 유죄이다. 억울해 해선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거짓 학력으로 분명 자기 잇속을 쏠쏠히 챙긴 인물들이다.
그들은 지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연기력이나 지적 능력, 스스로의 행동과 말을 통해 얻는 노력 대신
거짓된 학력을 통해 너무 손쉽게 얻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는 "연예인이 학력 좀 속였으면 어때?"라는 면죄부를
쉽게 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이라고 다 같은 연예인이 아닌 것이다.

반면에, 학력 별볼일 없는데도
충분히 지적인 이미지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내는 연예인,
자기의 성실한 행동과 발언으로
자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만드는 연예인도 얼마나 많은가?

내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서태지가 그 대표적인 뮤지션이었고,
그런 점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류승범과 엄정화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대학 안나왔어도, 학교공부랑은 별 상관 없이 살았어도
무슨 역할을 맡겨도 척척 잘어울린다.
그래서 그들은 '양아치'나 '백치미의 푼수 여자'역할부터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의사, 예술가, 커리어우먼 등도 똑부러지게 소화해낸다.
그만큼 그들의 연기 '스펙트럼'은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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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예인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학력이라는 '손쉬운 것'에 기대어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자기 안의 영역을 넓혀가는 그런 연예인들.

그리고 연예인들에 대한 그 이상의 학력 검증은 그저 검증으로 그쳐야 한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과도하다.
누가 어느 대학을 '졸업'한 걸로 되어있으나 사실은 '중퇴'였다는 등의 검증이
연예인들 사이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대졸 사원을 뽑았던 것도 아니고, 무슨 대학 출신만 모집한것도 아니고.
이런 식의 '뒷조사'와 그 뒤의 맹렬한 '비난'에 기자들과 네티즌들이 혈안이 되는 것은 이제 그만 둬도 좋을 것 같다.
연예인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정아처럼 학력이 일차적인 진입 조건이 되는 '판'에 속한 자의 거짓말은
어떤 식으로도 용납될 수 없지만
연예인들에 대해서나 학계가 아닌 영역에서는
그 두 차원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는 아니어도 그 두 차원을 구분하여
비난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이번 사태는 좋은 기회다.
사실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낮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역에서 능력 발휘하고 살고 있다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그리하여 너도나도 좋은 대학 나와야 성공한다는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다들 이 기회를 통해 그냥 좀더 용감해지고 솔직해지면 된다.
학력 위조자를 비난하는 것은 지금의 홍수같은 '커밍아웃' 시절을 거쳐
세상이 좀더 투명해지고 난 다음부터 시작해도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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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1004ant 2007/09/08 18:09

    학력위조가 일어난 원인이 학벌문제에서 오는 거 같아요. 그들만의 리그가 빅리그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2. BlogIcon 장동만 2007/09/10 03:43

    <요즘 각계 각층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허위 학력 문제가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CCTV는 “한국 공인의 80%는 학력 위조를 했다’고 보도할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의 학력/학벌, 그 것이 지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돨까 싶어, 2005년 1월 5일자 중앙일보 (뉴욕판)에 발표했던 글을 여기에 다시 싣는다.>


    ‘초졸의원’과 학벌사회

    그 (이 상락)는 너무나 가난했다. 그래서 학교엘 못 다녔다. 겨우 초등 학교를 마친 후, 곧장 생활 전선에 나서야 했다. 노점상, 목수, 포장마차, 밑바닥 인생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했다.
    그러다가 빈민 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 때 얻은 별명이 ‘거지 대왕’, 그 ‘거지 대왕’은 똘마니들에게 한컷 폼을 잡느냐고 악의없는‘거짓말’을 했다. “나는 이래뵈도 고등학교를 나왔다구~”

    그 ‘거지 대왕’이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금배지를 달았다. 시대의 바뀜을 보여주는 한 상징이었다. 당당히 39.2%의 득표를 했다. 시의원, 도의원 세 번을 거쳐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력하는 사람”, “의정 활동에 너무나 성실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인물평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허위 학력 /고교 졸업장 위조 혐의로 금배지를 떼이고 감옥엘 갔다. “피고인이 학력을 속인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교 졸업 증명서를 TV 토론에서 제시하는 등 죄질이 불량해 엄정한 처벌이 요구된다”, 판결문의 요지다.

    자, 우리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이제 공인은 눈꼽만치의 거짓 말도 용납치 못한다”는 사법부 판결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거짓 말을 떡 먹듯하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 경우, 그의 악의없는 이 거짓말이 그 누구에게 얼마만한 피해를 주었을까? 상대 후보에게? 아니면 유권자에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가 얻은 표는 결코 그의 학력을 보고 던진 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작 “고교를 졸업했다”는 거짓말이, 진정 “죄질 불량…엄정 처벌” 대상이고, “금 배지 박탈…1년 징역”감이 될 것인가?

    고개가 갸웃둥 해진다. 물론 그는 실정법을 위반했다. 그런데 그 위반 사항이 겨우 ‘고교 졸업’ 행세다. 국/내외 석/박사 고학력이 넘쳐나는 사회, 그들이 보기엔 참으로 웃으꽝스런 학력 과시다.

    여기서 필자는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가치 척도의 다름을 새삼 확인한다. 배운 자에겐 별 것도 아닌 일이, 못 배운 사람들에겐 생애를 몽땅 앗아가는 이 가치의 다름, 그러면 한국같이 학벌이 일종의 패권주의가 되어있는 사회에서 못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선 안된다 (must not)”고 처벌을 일삼는 법만으로써는 이 세상은 너무나 살벌해 진다. 그리해서 미/일등 여러 나라엔 법을 뛰어 넘어 사람들에게 도덕/윤리적인 의무를 강요하는 ‘착한 사마리안인 법 (the Good Samaritan Law)’이란 것이 있다.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법을 넘어선 인정이고, 동정심이고, 약자에 대한 배려다. 그리고 배워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아는 힘 (knowledge’s power)’을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만치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어 삶의 터전에서 숱한 불이익 (disadvantage)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느 만치 바쳐ㅇ/ㅑ/ 한다. 그것은 마치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사회 정의를 위해 그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당위와 맥을 같이 한다. ‘참 지식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다.

    이에 비추어, ‘고졸 행세-금배지 박탈-1년 징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한국 의 법체계가 대륙법/ 실정법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법관들이 진정 ‘참 지식인’ 었다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죄질 불량…엄벌 대상이나…피고가 지금까지 살아 온 생애의 정상을 참작…국회 의원 재임 기간 중에 반드시 고등 학교 과정을 이수토록 하라”.

    이런 멋진 판결이 나왔다면, 군사 독재 시절 시국 사범에 대해 외부에서 날아 오는 ‘형량 쪽지’를 보고, 거기에 적힌대로 “징역 1년, 2년, 3년…” 꼭두각시 판결을 했던 사법부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으리라.
    (추기: 국회의원 웹사이트 명단에 그의 학력은 “독학”으로 되어있다.)

    <장동만: e-랜서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뉴욕판) 01/05/05 일자>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아, 멋진 새 한국”(e-book)

  3. 오~ 2007/09/10 08:49

    장동만의 이 글은 누가 퍼와주신 것인가요? 잘 읽었습니다~

  4. BlogIcon 2007/09/10 09:29

    네~ 중앙일보 (뉴욕판)이란 것도 처음 알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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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은 처음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를 다 봤어요. 예전까지 다 본 '드라마'는 '거침없이 하이킥!'과 'Friends'뿐. 아... 예진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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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하나님 ㅜㅠ

눈물이 납니다. 진짜! 이렇게 아리따우신 분들과 제가 같은 종이라니욧!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서 묘사된 카이사르를 읽다보면 카이사르와 내가 같은 '인류'라는 종이라는 것에 새삼 뿌듯해지기까지 했는데.
이 아리따운 분들...

혹자는 제가 티비를 너무 뜸하게 봐서 이런 현상이 있다고, 티비를 자주 보다보면 적응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날은 신림역에서 나오다가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 기분이 우울해지기 까지 했습니다. 왜 '일반인'은 이렇게 생겼을까요.. 티비를 보면 모두 어느정도는 생겼는데.. ㅜㅠ

언젠가 말했지만, 제가 준비(?)만 하고 있는 글 중 하나는, 티비에서 잘 생긴 남성/예쁜 여성만 재현됨에 따른 외모-계급적 불평등 현상의 고착화입니다. 사실 이는 소설로 쓰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어느날 사람들이 분개해서, 왜 티비에는 예쁘고 잘 생긴 사람만 나오느냐 항의하고 대규모 집회를 열고 정부를 압박하는거죠. 어느 아이돌 그룹 중의 한 명이 '못 생긴 놈들은 왜 사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실수로 라디오 방송 중에 전파를 타게 되고, 마침 그 아이돌 그룹 멤버가 성형전, 일반인 시절 사귀던 여고생의 시체가 다음날 구구절절한 유서와 뱃속 아이와 함께 인천 앞바다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대북 관계와 탈레반 때문에 안 그래도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하고, 미국에게 비밀리에 소 20만 마리를 전격 수입하기로 결정한 후, 때마침 대통령이 어렸을때 동네 잘생긴 킹카에게 애인을 빼앗겼던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국내외 정치적 위기를 이런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서 헌법을 고치고... 연예인들과 연예인급 외모를 지닌 이들은 소수자로 탄압되고, 유태인처럼 게토에서 따로 관리되고, 국가의 대규모 성형수술로 '일반인'화 하려는 계획이 비밀리에 실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국가에 맞서는 지하 언더그라운드 팬클럽(동방신기와 슈쥬 팬클럽을 중심으로 대동단결)들과 국가전복을 위한 적기 아나키스트 집단 붉은 이빨단의 대활약 등으로 마침내 연예인 탄압 하에 숨겨진 가공할만한 지배 계급의 음모가 발견되는데..... 자칭 연예인급 외모지만 국가가 잡아가지 않아 홧김에 붉은 이빨 아나키스트 집단에 가입하여, 연예인 게토에 우격다짐으로 잠입한 우리의 주인공 긴의 대활약도 기대.. 게토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 긴과 권보아, 손예진, 아이비, 김태희, 전지현, 신민아와의 로맨스, 그리고 한가인과의 슬픈 불륜도 곁다리로 기대하시랍~~(사실 알고 보니 연정훈은 정부측의 첩자!!! 이런 반전이~~) -_-;

ㅋ 저는 블랙 코미디 써보고 싶어요. ^^; 환타스틱 같은데에 한번 응모해볼까나 ㅋㅋ

여튼 연애시대 보다보면, 손예진/이하나 같이 생긴 분들만 연애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쩝.

왜 이렇게 예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요. 왜 이런게 인류 본성일까요. 사회진화론적으로 생각해본다고 해도, 이렇게 생긴 여성들이 더 '생산력'이 있는 것은 아닐것도 같은데.. 역시 문화가 매개되는 것이겠죠. 왜 어떤 사람은 원빈으로 손예진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정종철, 오지헌으로 태어날까요. 참. 삶은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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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평등의 격차에 가슴이 저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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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튼 연애시대. 덕분에 몇달간 행복했답니다. 아흐...
다시금 외모-계급 격차에 대해서 우울한 가슴 감출 수 없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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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연애시대 (Alone In Love, 2006)

    2007/09/08 05:41 | TRACKED FROM 1004ant의 한일영화 이야기

    # 1 - 이 커플이 아니였다면 .... # 2 - 명장면들... 한번에 몰아서 보는 나의 특성 앞에 한참 인기많았던 가을동화, 파리의 연인, 불새, 다모 등등이 힘없이 쓰러져나갔지만, 연애시대는 오랫만에 매주매주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본 건 정말 우연이였다. 거의 마지막 5부 정도만을 우연스레 본 서동요 .... 마지막부를 보고 아쉬워하는 순간... 연애시대 예고편이 나왔다.. 한편의 영화같은 드라마란 컨셉을 잡은..

Comment

  1. ㅋㅋㅋㅋ 2007/09/05 16:50

    긴님, 너무웃겨요~이렇게 재미난 분일 줄이야....!!! 정말 재미난 소설이 될 것 가타요...꼭 써서 어데 응모한번 해주삼~응모 안받아주면 여기 <소문>에 연재물로 실어주삼삼삼~~~!!

  2. 2007/09/05 20:54

    ㅋㅋㅋㅋ님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저 원래 웃겨요. 비밀이지만요 ㅋㅋ;;
    ㅋㅋㅋ 실명으로 쓰고 공개해서 테러당해볼래요~ ㅎㅎ
    슈퍼주니어 중 X..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소수자 특별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아, 슈쥬 팬들, '우리 오빠가 어때서 안 잡아가냐, 연예인 소수자 특별법의 처벌 외모 기준의 불공평성과 미적 기준의 시대 낙후성에 분개한다, 분개한다! 정부는 각성하라! 외.모.기.준.낙.후.투.쟁! 외.모.기.준.낙.후.투.쟁!' 등의 씬을 상상해보고는 있습니다만.. ㅋ

  3. BlogIcon Gore 2007/09/06 19:09

    아아, 역시 기타치는 여자는 다 이뻐 ㅠ.ㅠ

슬램덩크와 안 선생

2007/09/04 00:46 | Posted by 하이腦

개강을 앞두고 <슬램덩크>에 몰입해서 결국 사흘만에 서른 한 권을 다봤다. 주로 남발하는 대사들이 "나는 천재니까" "절대 질 수 없어!" "반드시 해낸다!"류지만, 스포츠 만화니까 당연한 거겠고, 그 대사가 유치하게 들리지 않을 만큼 치열한 경기들이 이어져서 거의 18년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여전히 생생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만화다. <노다메>에도 감동했지만, 스포츠를 다룬 만화/영화 등이 갖고 있는 특유의 승부 드라마는 참 감동적이다. 난 늘 그들의 승부근성이나 연대감에 마구마구 동감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고 보면 <미스터 초밥왕>도 승부가 있는 휴먼 드라마구나. 쇼타가 별로 안 잘 생겼다는 게 흠. ㅋㅋ) <슬램덩크>엔 귀엽고 깝죽대는, 그러나 사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강백호와 자기중심적 천재 플레이어 서태웅, 고릴라 채치수,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정대만, 그리고 송태섭 등이 주축이 대는 것 같지만 (여성인물들은 너무 부수적이다. 그저 예쁜 얼굴로 남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그네들...뭐 부럽단 얘기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렇게 예쁠 수 있었음 얼마나 좋았겠수.. 스포츠팀 매니저는 아무나 하나요? 한나씨도 소연이도 다 너무 예쁜 걸. 사실 소연이는 내가 중학교 때 가장 되고싶은 이상향이었는데.) 안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스포츠 만화에 불과했을 것 같다. 별로 말도 없고, 안경 유리면만 그려서 눈동자도 잘 보이지 않는 켄터키 할아버지 같은 감독님이지만, 사실 그가 선수들에게 조언을 하고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내가 꿈꾸는 멘토의 이상이시다.

썰은 길었는데, 사실 안 선생님의 이런 저런 이미지들을 꼭 정리해보고 싶었다.

▽ 미국으로 건너간 제자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 안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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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웅의 미국 유학 바람을 막고, 더 성장할 것을 독려한 안 선생님.
나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있음 좋겠어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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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만화다운 커멘트지만 감동적 울림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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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빙긋-웃어준다. 아 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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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권을 끝낸 후 <에필로그>에서 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이 만화를 집필하던 당시 농구만화는 전무했다고 하는데, 내가 이 만화를 보던 90년대 중반 한국은 정말 농구의 전성시대였다. 만화가게에 가서 <슬램덩크>를 빌려보고, 티비를 켜면 <마지막 승부>와 연대와 고대의 대학전, 그리고 농구대잔치를 볼 수 있던 그런 시대였다. 우지원, 이상민, 서장훈, 현주엽을 필두로 하는 대학팀과 다 늙은 허재와 한기범 등의 기아군단 등이 함께 버무러져서 뛰던 던 시대였다. 삼성과 연대의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열렬히 연대를 응원하던 때가 떠오른다. 실업팀과 대학팀이 분리되면서 농구에 대한 내 관심도 점차 식었는데, 이 만화를 보면서 다시 그런 90년대 감수성의 농구가 부활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미국식 농구인 쿼터제가 들어온 게 아직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슬램덩크>를 보면서 딱 한 번만이라도 전후반제 경기를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안 선생님 얘기로 시작해서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새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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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첸씨 2007/09/04 05:03

    재밌게 읽었네요. <슬램덩크>와 <노다메>의 유사성... 그 주인공들이 소년-소녀들이라서인지 일본인이어서인지...

  2. BlogIcon Gore 2007/09/04 23:40

    왼손은 거들 뿐.

  3. heine 2007/09/05 19:27

    맞아요. "왼손은 거들 뿐"도 참 멋진 대사 중 하나.

  4. BlogIcon 2007/09/05 21:00

    입술은 뽀뽀 뿐이라는 대사도 멋졌죠 :)
    이건... 슬램덩크가 아니었나? ㅋㅋ

  5. BlogIcon 2007/09/05 21:02

    당신은 방구 뿡
    이라는 대사도 괜찮은 듯 ㅋ
    나도 방구 뿡
    너는 밥 먹었냐?
    나는 밥 먹었다
    왜 사냐건 웃지요

    등.. 헐.. 강백호의 진지한 표정을 생각하면서 대사를 치니, 대충 다 웃기군요. ㅋ

  6. BlogIcon 2007/09/05 21:07

    캬 근데 다시 슬램덩크 찾아보니, 앙숙이던 서태웅과 강백호가, 서태웅의 패스를 받은 강백호가 점프 슛을 한 후 서로 손을 타치하는 장면은 진짜 감동이네요.
    서태웅의 예전 지혼자 잘난척 슛과, 강백호의 피나는 연습 등을 생각하면..
    캬.. 진짜 감동만화였는데. 헐헐..

    당신은 방구 뿡!

  7. 그러고 보니 2007/09/08 09:52

    스포츠 중계를 지뢰밭처럼 피해가는 제가 농구중계를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 글을 읽다가 번개처럼 떠올랐어요.
    코트 안과 밖에서 잘난 척하는 서태웅이 어찌나 멋지던지...
    오랫만에 회상에 젖어보는 흐뭇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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