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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천천히 읽기/시 천천히 짧게 읽기'에 해당되는 글 3

  1. 2008/06/03 경찰은 시청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2)
  2. 2007/10/09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다 -육교 위의 허공(나희덕)
  3. 2007/09/19 돼지머리들처럼 -나희덕 (1)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백무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노동은 인질로 잡혀갔다
납치범들은 총칼로 인질을 위협하며
흥정을 하는데 써먹었다
그러다가 납치범들은 더 큰 마피아
소굴의 나라에 통째 납치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두 번씩 빼앗겼다

노동법도 빼앗겼다
노동삼권도 빼앗겼다
깃발도 빼앗겼다
함성도 빼앗겼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종이 되었다
그래서 납치범들은 주인을 자처했다

거리마다 여전히 4월의 피는 흐르고
거리마다 여전히 5월의 흰 뼈들은 굴렀다
6월의 거리를 소나기로 퍼부으며
우리는 납치범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우리는 빼앗긴 것을 돌려받기 위해 싸웠다

경찰은 데모를 하였다
납치범들의 졸개인 경찰은 무장을 하고
주인 앞에 몰려와서 데모를 하였다
최루탄을 쏘고 군화발로 짓이기며
과격시위를 하였다
쇠몽둥이를 들고 곤봉을 휘두르며
극렬시위를 하였다
공장 앞에 몰려와
극렬하게 데모를 하였다

노동자들은 진압에 나섰다
저들의 살상 무기를 막자고
지게차가 나섰다 포크레인이 나섰다
깃발을 들고 함성으로 나섰다
주인인 노동자들은 피흘리며 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시청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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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주권은 선거일만 선심쓰덧 풀려났다.
납치범들은 경제를 들먹이며
표를 사는데만 급급했다.
그러다가 납치범들은 더 큰 광우병 마피아
소굴의 나라에 통째 납치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두 번씩 빼앗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주주의도 빼앗겼다
집회의 자유도 빼앗겼다
발언 기회도 빼앗겼다
촛불도 빼앗겼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종이 되었다
그래서 납치범들은 주인을 자처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리마다 여전히 4월의 피는 흐르고
거리마다 여전히 5월의 흰 뼈들은 굴렀다
6월의 거리를 소나기로 퍼부으며
우리는 납치범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우리는 빼앗긴 것을 돌려받기 위해 싸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은 데모를 하였다
납치범들의 졸개인 경찰은 무장을 하고
주인 앞에 몰려와서 데모를 하였다
물대포를 쏘고 군화발로 짓이기며
과격시위를 하였다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두르며
극렬시위를 하였다
시청 앞에 몰려와
극렬하게 데모를 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민들은 진압에 나섰다
소고기 수입을 막자고
촛불을 들었다 수만이 나섰다
깃발을 들고 함성으로 나섰다
주인인 시민들은 피흘리며 진압에 나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200년의 역사, 식민지 시기 역사, 근대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계몽이라는, 엘리트라는 것이 왜 궁극적으로는 폭력일 수 밖에 없는지
결국 우리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 의미는 정말 명확하고 쉬운 것.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

MB나 이번 정권이 좋아하는 '경제'적 용어로 말하자면,
장기적으로 주가총액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민주주의는 승리한다는 것,
그러나 그 와중에 부도나고 망하고 떨어지는 회사가 있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주인이 주인인 사회..
납치범과 데모하는 종들..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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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가~ 2008/06/03 08:45

    어머, 오랜만이네요, 긴님.^^잘 읽었습니다...우울하지만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2. asd 2008/06/04 11:13

    yes.. democracy is democracy when politics are by 'demos'..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본은 http://cyplaza.cyworld.com/story/bbs/bbs_view.asp?BBSCode=37&ItemNum=15010188에서)

도시의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혼자였고, 성인이 된 후에 '길을 잃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길을 재촉하고 있었고, 이리저리 발이 닿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네온사인, 기분 좋아보이는 취객들의 비틀거림, 젊은이들의 말소리, 한편에 공사중인 우중충한 철근 콘크리트, 낡은 공중전화박스. 도시의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그 도시의 밤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어지러웠다. 하늘에 걸린 달이 유독 커보였다. 비틀대며 걸었다. 도시의 낯선 면모들, 수많은 형형색색의 가면들. 황홀했다. 길을 다시 찾으려는,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도시에 취했다.

나희덕의 아래 시를 읽으며, 다시 밤도시의 낯선 풍경, 그 매혹에 취해본다.


육교 위의 허공    -나희덕

좁고 가파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빛나는 마천루가 있었지
육지와 육지를 잇는 다리 위로
밤길을 건너는 밤길,
허공을 건너는 허공,
신호등이나 건널목이 없이도
그 길을 따라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었지
지상에서는 잡을 수 없는 두 손이
때로 어두운 허공 위에서 놀란 듯 만났지
새로운 지평선이 펼쳐지고
6차선 도로가 오선지처럼 출렁거리고
두근거리는 도시의 동맥 속으로
차들은 피톨처럼 점점이 빛을 뿌리며 흘러갔지
그러나 경적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어
두 손에 든 허공을 놓아주고 싶지 않아서
다만 숨죽이고 있었으니까, 심해의 물고기처럼,
시냇가의 반딧불이처럼, 거기가
도심의 누추한 육교라는 것도 잊은 채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야 하는 것도 잊은 채
하염없이 공중그네를 타고 있었지
육지와 육지를 잇는 다리 위로
밤길을 건너는 밤길,
허공을 건너는 허공,
지상에서는 잡을 수 없는 두 손이
어두운 허공 위에 또하나의 길을 내고 있었지



서울에는 야경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값비싼 식당(아니 '레스토랑')이 몇군데 존재한다. 와인이나 샴페인을 기울이며, 높다란 '스카이라운지'에서 야경을 즐길수도 있겠다. 유리로 가로막혀 밤의 찬공기와는 무관하게 적정하게 관리된 온도와 습기에 둘러쌓여서, 풍경을 타자화하는 높이와 편안한 의자와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어두운 야경에 유리창은 밝은 레스토랑 안을 반쯤은 투과하고, 반쯤은 밖이 보일터이다.

철저히 격리되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적당한 거리로 인해 낭만적이지만, 때문에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어지럽고 환상적이지는 않다. 나희덕은 육교 위에서 바라본다. 높이, 소음, 추위... 모두 야경 속에 있으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과 단절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바라볼 수 있는 자리. 그 곳에서 시인은 취한다.

'신호등이나 건널목'없이도 '다른 세계'로 가게 하는 다리. '밤길을 건너는 밤길/허공을 건너는 허공'
그 곳에서의 '새로운 지평성', 그 아래로 지나는 '6차선 도로'는 '오선지'처럼 출렁이고, 나를 향해 다가오다가 멀어지는 차들은 '피톨처럼 빛을 뿌리고' '두근거리는 도시의 동맥'으로 사라진다.
시인은 심해의 물고기, 시냇가의 반딧불이 되어 '공중그네'를 타는 기분으로 육교 위에 서 있다. 도시에 취해, 시인도 빛을 내며.

밤이란 검다. 검기 때문에 작은 빛들이 환하다. 밤에 도시는 심해의 물고기떼, 시냇가의 반딧불 무리들로 살아난다. 차들은 빛을 내며 사라진다. 공중그네를 타는 것 같다. 어지럽다. 기분 좋은 나른한 어지러움. 취한다.

육교. 밤길을 건너는 밤길, 허공을 건너는 허공, 마주 잡은 두 손, 허공 위의 길, 여기서 밤에, 도시에, 밤 도시에, 낯선 밤 도시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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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머리들처럼    -나희덕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입 끝을 집어올린다.
자, 웃어야지, 살이 굳어버리기 전에.

새벽 자갈치시장, 돼지머리들을
찜통에서 꺼내 진열대 위에 앉힌 주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웃는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웃어야지, 김이 가시기 전에.

몸에서 잘린 줄도 모르고
목구멍으로 피가 하염없이 흘러간 줄도 모르고
아침 햇살에 활짝 웃던 돼지머리들.

그렇게 탐스럽게 웃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적당히 벌어진 입과 콧구멍 속에
만 원짜리 지폐를 쑤셔 넣지 않았으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진열대 위에 얹혀 있다는 생각,
자, 웃어, 웃어봐, 웃는 척이라도 해봐,
시들어가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긴다.

아--- 에--- 이--- 오--- 우---
그러나 얼굴을 괄약근처럼 쥐었다 폈다
숨죽여 불러보아도 흘러내린 피가 돌아오지 않는다.

출근길 백미러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머리 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질의 시들을 꾸준하게 쓰고 있는 나희덕. 2008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서.
참 좋은 시다라는 감탄보다는, 처연하게 지쳐가는 나희덕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녀의 시력도 이제 근20년이 되어간다. 그녀가 90년대 초중반 썼던 시들을 기억한다.
세상에 지친, 외로운, 쓸쓸한 이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다가도 따스하게 감싸던 시선.
어쩌면 그 시선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지침, 외로움, 쓸쓸함을 외부 존재에게 전가시키고 오히려 자신은 편한 마음을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기실, 그녀도 지치고, 외롭고, 쓸쓸하다. 예전 그녀는 지치고 외롭고 쓸쓸한 외적 존재로 인하여, 그들을 그리면서 그 지침, 외로움, 쓸쓸함을 견디고 이겨냈다고 한다면, 이제 그것도 포기한다. 실상 지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은 자신이었음을. 출근길 백미러 속에서 발견한, 40대 시인...

그녀의 93년 창비 여름에 실린 시를 다시 본다.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 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던 20대 후반의 시인, 자신의 마음을 사물과 함께 공감하는 40대 초반의 시인. 시인이 건너온 삶들과 함께, 흐르는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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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1 20:30

    아아... 사진 올려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

    그나저나, 사진의 그 즉물성에 압도되네요..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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