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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 단상

2009/08/04 09:37 | Posted by <소문> 편집실

0>

부산에 갈 때마다 해운대에 간다. 그전에는 꼭 그러지는 않았었다.

작년 여름이었던가? 해운대에서 아침을 맞고, 하루 종일 해운대시장, 53사단 본부 입구, 장산공원, 미포 등지를 돌아다니고 새삼 '해운대의 힘'을 깨달았다. 

(92년 가을부터 94년 봄까지 매일 해운대에 '출근' 했었다. 그때는 바다 색깔이 매일, 왜, 달라지는지를 배웠었다. 그럼에도 여름엔 해운대를 피했다. 복잡하니까.)

 

11일만에 400만을 돌파했다 한다. 관객들 중에 50-60대가 많아서 흥행성 높은 영화라는 점을 실감하면서 영화를 봤다. ‘부산성’이라는 지역성을 전면에 내세운 <친구>나, ‘자연’과 한국의 '문화-정치'의 모순을 다룬 <괴물> 같은 흥행작과 비교해볼 요소가 많다고 생각된다.
통상의 ‘재난 영화’라 볼 수 없고, 뭔가 한국적인 ‘재난 영화’ 문법을 구축한 것인데, 곱게 봐주기 어려운 점도 많았다.


* 정밀하지 못한 상상력 :
진짜 쓰나미가 부산에 닥친다면? ‘재난 영화’는 어때야 되는 건가? 뭔가 과학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빈 데가 너무 많지 않은가?

* 수준 이하의 드라마 :
감독의 인간관이 의심스럽다. 1시간 가량 진행되는 서론을 보다가 지친다. 그 서론은 대부분 허접하다.  


* 썰렁한 코미디 :
악다구니와 슬랩스틱을 포함한 수준 이하의 코미디, 그러나 웃어주는 50ㆍ60대 관객


* 발전한 D-CG : 물에 잠긴 미포. 감전사하는 사람들. 재밌다.
바닷물에 깨지는 고층빌딩들. 공중 부감신으로 빅스케일의 해안을 잡아준다.

 

* 해운대 :
미포에서 수영만까지. 그리고 고층 빌딩들. 해운대의 폭이 나름 잘 포착된 듯하다.
해운대는 그 물리적 공간 외에도 경관적 의미가 2000년대에 들어 엄청나게 확장됐다.
노무현 정권과 부산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이 유서 깊은 장소를 이전과 다른 '명소'로 주조해냈던 것이다.

신시가지가 생겼고, APEC이 열렸으며, PIFF가 자리를 잡았으며, 광안대교와 고층빌딩이 늘어섰다. 더 많은 사람이 여기를 찾는다. 그 장소는 문화정치에 관한 사유와 영화화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값어치 있다. (cf. 그런데 고래불해수욕장 사장도 해운대만큼 크다.)

* <괴물>, 그리고 그 한강과 비교하면? :
아마 <괴물>의 발상법(...에 ...가 산다면? ...에 ...가 벌어진다면?)이 이런 영화를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운대>는 스케일이 더 크다. <괴물> 못지 않은 좋은 상품이라 흥행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식과 ‘이야기’에서 <괴물>과 비교될 수 없다. 드라마가 약해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감독은 뭘 말해보고 싶었을까? 119 대원을 존경하자? 쓰나미 같은 재난에 미리 대비하자? 해운대만 가지말고 경포대나 고래불도 가자? 머리가 빈 것 같다. 

 

* 진짜 그런 규모의 쓰나미가 온다면 :
영도는 어떻게 되나? 신선대와 남항 부두는 어떻게 될까?


* 광안대교 : 오우... 감독은 왜 이 대교를 끊어버리고 싶었을까? 이제 이 다리는 부산의 ‘좋은’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그것은 분명 흉물이었다.

* 콘테이너 선박 : 이에 대한 묘사도 굿. 콘테이너 선박과 운반 트럭은 분명 부산의 또다른 상징이다. 감독은 부산에 대해 안다.

* 하지원 아비의 사망일 : 동남아 쓰나미 때 죽은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제삿날은 여름인가? 내가 잘못 본 건가?

 

2>

* 이민기 : 완벽한 부산어, 좋은 표정. 이 영화 최대의 수혜자가 아닐까?

* 하지원 : 참 예쁘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 그런데, 원래 목소리 이랬나? 덜 듣기 싫은 여성용 부산 사투리를 구사한다.

* 이화여대생, 아니 삼수생 : 목소리 정말 듣기 싫네. 감독 탓이다.  

* 설경구 : 욕봤다. 주인공인데 특별한 매력이 없다.

* 엄정화ㆍ박중훈 : 왜 이들이어야 했나? 그들의 안 어울리는 역할이 안쓰럽고, 좋은 배우들인데... 내가 괜히 미안해지더라.


* 김인권 : 좋은 연기자다.

* 그외 조연들 : 부산 사투리를 쓸 수 있는 배우들을 대거 동원했다. 송강호나 조재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 특별히 이대호 : 굿!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야구장 풍경 묘사는 안 그랬지만) 이대호가 부진할 때 부산 사람들이 어떻게 욕하는지도 나름 리얼했다. 감독은 사직고 출신이다. <해운대>는 <친구> <사생결단>처럼 부산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3>

* 부산 사람에 대한 묘사 : 도무지 ‘애정이 있나?’ 싶었는데... 감독의 이력을 보니... 좋은 시나리오도 가끔 쓰고 했는데... 쯔쯔. 영화의 부산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두 ‘직정’ ‘직입’ 그 자체다. 실제로도 그러할까?

 

* 부산에 대한 사유 :
우리는 이를 어디까지, 어떻게 밀고 나가야 되는가? 나갈 수 있는가? 최근에 "부산 독립선언"이라는 책도 나왔다. 복잡하다. 곽경택의 드라마 <친구>를 보니 더 그렇다. <똥개>까지는 좋았는데, 곽씨의 고착은 너무 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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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2009/05/13 16:46 | Posted by <소문> 편집실

<비상> 100 분 | 개봉 2006.12.14

감독 임유철 

우연히 <비상(飛霜)>과 <레알(Real)>이라는 축구 영화를 잇달아 보았다.

뒤늦게 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은 최고의 축구 영화이자 스포츠영화였다.

(반면 <레알>은 최악이었다. 언급을 회피하고 싶다. <비상>을 보면 돈으로 선수를 박박 채집하여 긁어모으는 레알마드리드 같은 구단이야말로 ‘지구방위대’는커녕 지구를 망치는 것 중 하나라는 사실을 좀더 선명하게 알게 된다. <비상>의 주인공인 인천Utd.는 흥미롭게도 ‘시민’ 구단이다.)

 

이 다큐 영화는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스포츠영화의 서사구조를 따른다.

무명과 소외로부터 마음과 몸을 다 다쳐 이제는 별로 물러설 데가 없는,

‘찌질한’ 선수들(영화에 직접 나오는 표현으로는 ‘쓰레기’)로 이뤄진 팀이

신념에 찬 멋진 감독을 만나 기적 같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는.

 

그런데 이는 인천Utd.라는 신생 팀이 05년 K리그에서 해낸 ‘실제’ 사건이다.

 

영화의 마지막 씬.

05년의 챔피언결정전에서 결국 최강팀 울산에게 6-3(홈엔어웨이 합계)으로 패배했을 때,

덩치 큰 ‘선수’들은 마구 눈물을 쏟는다. 서포터스도 눈물을 흘린다.

영화 관객들 중에도 함께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전형적인 스토리지만, 절대적인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다큐는 축구라는 남성 문화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

이를테면 거기에 걸려 있는 존재들의 내면과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축구 영화로서도 상당히 귀하다.(<천리마축구단> 같은 영화도 기념비적인 축구영화지만, 찾아보면 보석 같은 축구영화들이 더 있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에서 승리와 패배의 의미, 수없이 많은 무명 선수들의 운명, 라커룸에서 일어나는 일, ‘이주노동자’로서의 용병과의 관계 등 현대 프로스포츠에서의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통찰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인천은 파란을 일으켰던 06년 이후 그렇게 뛰어난 성적을 얻지는 못했다. ‘기적’은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겠다. 장외룡 감독은 현재 일본 오미야 아르디쟈의 감독이다. 몬테네그로 국적의 용병 라돈치치는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성남 일화로 이적했고, 임중용은 여전히 주장으로서 인천에서 뛰고 있다. 그는 이제 34세의 할아버지급 선수이다.

 

참고)

http://blog.naver.com/bisangsoccer 비상 공식 블로그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C%B2%9C_%EC%9C%A0%EB%82%98%EC%9D%B4%ED%8B%B0%EB%93%9C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0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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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할배(사람) : 워낭소리

2009/05/07 01:49 | Posted by <소문> 편집실

할배와 소의 모습과 그 (일치된) 삶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소재를 굳이 찾아냈다는 것도 훌륭한 ‘기획’임에 틀림없었다.

(감독은 사전에 각지의 농협을 돌며 '죽어가는 소'를 수소문했단다.)

그러나, 어떤 소녀ㆍ청년이 영화의 결말부에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전혀 내 경우는 아니었다.

물론 죽은 소가 포크레인이 판 구덩이에서 포크레인이 뿌리는 흙으로,

그의 몸과 똑같은 색깔의 흙과 하나가 되는 장면은 훌륭했다.


또한 이 다큐에는 '노화'와 죽음에 관한 하나의 진지한 관찰과 묘사가 있다.

그것은 특별하게도 소의 죽음이다. 소는 대상이며 동물이며 주체이다.

그러나 소라서 돼지나 개, 쥐와 조금 다르다.

소는 확연히 ‘얼굴’을 가진 동물이다. (돼지, 개, 쥐들도 '때로' 얼굴을 갖고 있다.)
주로 눈 때문에 그렇다.

소의 죽음을 길게 묘사했다. 소는 천천히 죽는다.

이 천천히-죽음에 관한 기록을 우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죽는 소의 얼굴도 ‘임종’하는 인간의 얼굴과 비슷한 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소는 왠지 이름이 없다. 할배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 또는 영화가 빠뜨린 것?)

 

그러나 만약 영화가 '할배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되거나 ‘히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이유들 때문에, 감동은 방해받았고, 중간에 약간 졸았다.

 

0) 인간의 소-됨은 존경스러운 것이었으나,

소의 소-됨은 눈으로 보기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이는 나의 위선일 수 있겠으나,  소의 소-됨에 대해서

할배는 과연 인간다운 '잔인함'과 '컴패션'을 동시에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배는 자신의 '소-됨'은 온전히 인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1) 갈등구조가 단순하다. 할매의 푸념과 비판은 그런 점에서 양가적이다.

할매는 ‘현실’을 일깨우며 문제의 모든 측면을 잘 제시한다.

할배의 삶에 대한 동일시를 차단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갈등을 단순화시킨다.

(할매의 마음 전체가 '농민의 마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삼자의 관계를 ‘삼각관계’라 표현했다.)


2) 영화는 예정된 결론으로 서사를 몰아가고 있었다.

감동과 해석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삽입된 컷들은 좀 '아름다워서' 수가 ‘얕은’ 것들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소들에게 바친다'는 마지막 자막은 가장 어색한 것이 아닐까?

'소는 인간이 아니다'(소는 죽어서야 업에서 벗어난다... 등)는 복잡한 진실을 이 자막은 왜곡한다.


3) 뒤늦게, 스토리를 알고 봤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러닝타임은 짧다.


4) 몇몇 평들이 영화를 보는 과정에 떠올랐다.

특히 관객이 무엇을 영화를 통해 보았을까, 하는 문제와 관련된.

강기갑의 말(‘영화가 농민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 진짜루?)도 떠오른다... zzz. 

도시민들이 저 영화를 통해 무엇을 소비했는가, 하는 논평이 상기되고 

농업과 흙이란 과연 우리에게 오늘날 무엇인가...... 하는 잘 모르는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졸았다. zzz...

5) 자꾸 경북 봉화 사투리(맞나?)의 어미가 귀에 들리고, 자막이 보인다.

할매는 그 동네에서만 쓰는 ‘-니껴’를 완연히 많이 쓰고

할배는 표준말의 어미와 동일한 ‘-요’도 많이 쓴다.

헌데 이 영화의 자막은 발음대로 인물의 대사를 옮기지 않은,

이상한 직역인 경우가 많았다.
서울사람들을 위해서? (만약 '실제'라면, 저 경상도 할배의 말을 그들은 몇%나 직해할까?)

자막이 없었다면 나도 대사를 많이 놓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번역 자막에는 '폭력'적인 경우도 있었다.

 

6) 이O박이도 봤단다.

왜 쥐는 사람의 양식을 쏠아대는 자기의 일에 몰두하지 않고

소와 사람에 관한 스토리에 관심을 갖나? 그것은 토론거리임에 분명하다.

쥐가 '그 할배는 어떻게 됐나?' 따위를 묻지 않고

'관객이 얼마나 들었나?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나?'

를 물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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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컨피덴셜

2008/07/28 09:04 | Posted by 짐씨네
 

존 레논 컨피덴셜

존 레논, 우리는 지금 당신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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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대세 선수가 독도발언으로 일본인들의 미움을 톡톡히 받았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샤론 스톤 역시 중국에 대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현대 사회에서 인기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은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 더 막강한 사회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치적 발언을 하는 데 극도로 소극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적 발언은 그대로 경제적 손실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토크쇼에 나온 배우 문소리는 자신이 CF를 찍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집회현장에 있는 모습이 많이 매스컴에 포착되어 그런 식으로 이미지 메이킹 되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최고의 인기스타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으며 집회의 선봉에 서고 온갖 퍼포먼스를 통해 정부와 사회의 폭력성에 비판을 가한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지금 신비주의로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스타들 중 누군가가 올바른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캠페인을 벌인다면, 무대만 바라보던 팬들이 사회로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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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컨피덴셜>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가수 존 레논을 다시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비틀즈의 멤버였던 그는 ‘영국의 십대에게 자신들의 영향력이 예수님보다 더 크다’라는 말로 엄청난 구설수를 일으키며 불매운동까지 당한다. 정치적 발언을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그는 자신과 같은 세계관을 가진 행위 예술가 요코 오노를 만난 이후 자신의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는 수퍼스타가 배우자와 침대 위에 있는 모습에 환장할 매스컴의 속성을 간파하여 1969년 4월부터 12월까지 요코와의 신혼여행 대신해 ‘베드 인(Bed - in)’ 시위를 펼치며 강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고, ‘전쟁은 끝난다.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War is over, if you want it)’라는 음반을 발매하면서 거대한 광고판을 세계 곳곳에 내걸고 평화에 대한 강한 염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반전운동은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더 가속화되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강한 비판을 가하며 반정부 인사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고 집회에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평화의 기회를 갖자 (Give Peace a Chance)’와 같은 노래들을 통해 민중들의 마음을 한 데 모았다. 그러니 당연히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었고, 닉슨 정부는 FBI까지 동원하여 그를 미국 땅에서 몰아낼 작전을 기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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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문 다큐를 만들어 온 데이비드 리프와 존 쉐인펠드는 그의 뮤즈이자 실천의 동지였던 요코 오노를 비롯해 노엄 촘스키, 반정부단체 블랙팬더 당의 리더 바비 씰, 전직 FBI 요원들과 닉슨의 대통령의 수뇌부들 그리고 닉슨의 라이벌이었던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에 이르기까지 존 레논을 둘러싼 이들과 당시 그를 추방하려했던 미국의 음모를 알고 있던 수많은 인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가 존 레논이 아닌 평화운동가 존 레논의 초상을 재구해낸다. 이 영화에 담긴 평화와 완전한 소통을 부르짖는 존 레논의 목소리는 벌써 3~40년 전 것이지만 특히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더 절실하게 들리며, 닉슨 정부와 현재 우리정부가 기이하리만치 닮아서 깜짝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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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낫데어

2008/03/16 23:18 | Posted by 짐씨네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여섯 개의 얼굴, 하나의 삶, 자아와 분리되고 타자와 하나 되는 밥 딜런의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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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실존 인물들의 삶이 카메라를 통해 포착되고 스크린 위의 빛으로 영사되었지만 <아임 낫 데어>에서 토드 헤인즈가 살려낸 밥 딜런의 생애만큼 신선하고 독특한 화법을 보여준 영화는 드물 것이다. 그는 밥 딜런의 생을 여섯 얼굴을 통해 포착하는데 그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거나 감춰진 진실들을 들춰내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데이빗 보위를 모델로 삼아 글램록 시대를 재구성해냈던 <벨벳 골드마인>이 걸었던, 실제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틱하고 패셔너블한 허구와도 조금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감독은 여섯 개의 페르소나를 통해 밥 딜런이 스쳐지나간 인생의 여섯 국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두 밥 딜런들이며 밥 딜런에게 덧씌워진 가면들이기도 하고 밥 딜런이 아닌 다른 누군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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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에게 저항음악으로서 포크음악을 가능하게 해준 뿌리와 같은 인물인 우디 거스리를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흑인 소년(마커스 칼 프랭클린)은 우디 거스리에게 매료되어 미네소타에서 뉴욕으로 터전을 옮긴 밥 딜런의 여정을 대신 걷는다. 밥 딜런이 존경했던 시인 아르튀르 랭보(벤 위쇼)는  그 대신 심문대에 앉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던 그의 내면을 읊조린다. 포크 가수에서 목사가 된 잭 롤린스(크리스천 베일)는 70년대 후반 급작스럽게 기독교 원리주의에 심취해 종교인이 되어버린 밥 딜런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잭 롤린스를 연기하는 배우로 등장하는 로비 클락(히스 레저)은 주로 밥 딜런의 사생활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결혼 그리고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재연한다. 다른 성별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을 시청각적으로 가장 흡사하게 재연했다면 온갖 상찬을 받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주드는 1965년 여름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을 기점으로 포크에서 락으로 전향한 시기의 딜런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리(리차드 기어)는 밥 딜런이 흠모했던 인물이자 샘 페킨파가 감독하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 Billy the Kid)>(1973) 속 주인공 -밥 딜런은 빌리 더 키드의 부하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이자 73년 교통사고 이후 은둔생활을 했던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이 밥 딜런이 존재하지 않는 ‘그곳’을 채우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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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밥 딜런에 대한 애정을 겸비하고 적절한 정보를 숙지하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느슨한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여섯 주인공의 이야기를 인과성이나 시간성에 근거하지 않은, 심리적인 리듬에 따라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여섯 페르소나의 편린들을 맞춰나가는 것이 관객에게는 다소 힘든 작업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밥 딜런의 팬이라면 130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을 충만하게 채우는 밥 딜런의 오리지널 곡과 새로운 목소리를 통해 재탄생한 그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해질 것이다. 물론 딜런에 대한 애정과 상관없이 토드 헤인즈가 택한 천재적인 전기기술법을 감상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하나의 인간은 다양한 개체로 분열될 수 있고 동시에 각각의 개체들은 어떤 점에서는 연결된 유기적인 존재가 된다. 이 영화는 무수한 당신들의 존재로 채워지는 나와 여기로 채워지는 그곳, 그리고 존재하지 않음을 통해 존재하게 되는 새로운 존재방식을 사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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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2007, Across The Universe)

마리화나는 청각에, LSD는 시각에 각각 지배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엔 시간이 확장되는 느낌을, 후자는 공간이 확장되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데, 비틀즈는 마리화나와 LSD까지를 두루 섭렵(?)했다. 영화 Across The Universe는 아마도 비틀즈가 마리화나와 LSD의 힘으로 보고 들었을 '시공간'에 대한 오마쥬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Once와 같은 영화들은 영화와 노래가 함께 만들어 지거나 노래가 영화보다 뒤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영상은 음악에, 그리고 음악은 영상에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반면 1960년대의 음악들을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여기에서 다시 '재조합' 한다는 건, 그리고 그게 다름아닌 비틀즈라는 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과연 그러한 '재조합'이 네러티브를 이룰 수 있는가. 단연코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엉성하다. 그 '시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는가. 그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걸 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네러티브에 음악이 짜맞춰진 순간들은 어쩐지 엉성하고 어색하다. 반면 이미지에 음악이 결합한 순간들은 흥겹고 환상적이다. 물론 그 중 몇몇은 '오버'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Dr. Robbert가 부르는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나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결합된 영상은 강렬하고, 무엇보다도 Happiness is a warm gun과 결합된 영상 내지는 '환상'은 '딱 이거'라는 느낌이 들 만큼 절묘하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비틀즈의 음악은 누구도 비틀즈처럼 연주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에 삽입된 곡들도 단연코 '원곡만 못하다.' 그래도 그게 '비틀즈'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마도 제니스 조플린이 모델이었을 Sadie와 지미 헨드릭스를 옮겨놓았을 Jo-jo, 그리고 Jude, Lucy, Maxwell, Prudence가 환생 또는 탄생해서 움직이고, Jude의 고향은 리버풀이며, '그녀'는 Bathroom window로 들어온다. 군데군데 숨어있는 이런 작은 농담들을 하나씩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영화 제법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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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Gore 2008/02/28 08:10

    비틀즈의 곡이 모두 33곡 나옵니다. 비틀즈가 발표한 곡들이 전부 300곡 남짓이고 러닝타임만 얼추 13시간이 넘는데 불과 두 시간 남짓한 이 영화에 전 곡의 1/10 이상이 들어간 셈이군요 : )

The Jane Austen Book Club

2008/01/24 11:06 | Posted by 하이腦


The Jane Austen Book Club
★★★★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의외로 적다. 여섯권이 그녀가 남긴 전부다. 그 여섯권의 작품이 숱하게 영화로 텔레비전 시리즈물로 각색되어 유통되었으니,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 작가나 영화 제작자들은 우회로를 택해 '제인 오스틴 열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BBC의 나름 권위있는 각색과 헐리웃판 영화를 울궈먹기란 더이상 불가능해보였을 테니 말이다. (Pride and Prejudcie의 변주인 Bride and Prejudice도 언급할 만하겠으나, 이 작품은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제대로 된 변주라고 보기 어렵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의도 찾기 힘들다.)

<<비커밍 제인>>(Becoming Jane)가 작가 제인 오스틴의 개인사에 치중해서 그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 제인 오스틴을 보여주려 했다면, <제인 오스틴 북클럽>(The Jane Austen Book Club)은 제인 오스틴의 책 여섯권을 나누는 책모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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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출판된 Karen Joy Folwer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논문 쓰다 뻥뚫린 내 가슴을 위로해주던 책이었지), 상당히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인지 책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특히나 각색하면서 소설의 군더더기 살을 잘 빼서 책보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오스틴 소설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책읽기 모임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다섯명의 여자들과 훈남 그릭이 자아내는 이야기가 오스틴의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웠다. 2005년에 책을 읽으면서도 충분히 매료되었지만, 이번에 새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책보다 산뜻하고 아기자기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 

왜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릭을 이렇게 매력있게 그려내지 못했을까 안타까울 정도로 영화속 그릭은 귀엽고 아기자기 사랑스러운 오스틴 소설 속 남자 인물이었다. 다시(Darcy)의 21세기형 현현이라고나 할까? 

프루디는 발음상 prudish란 형용사를 대변하듯, 얼마나 깍쟁이처럼 잘 나왔는지! (Emily Blunt란 배우에 대한 관심까지 생겼다.) 또, 프루디는 여기 모인 여섯명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영문학과 수업방식대로' 북클럽을 진행하는 인물이다. 알레그라가 "에마는 속물이라 싫어!"라고 하자, 프루디는 "책을 토론하는 자리가 고등학교 인기투표 자리가 아니"라고 일침을 놔버리는 순간도 참 재밌다. 이들 책모임을 들여다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을 때 던지고 싶은 질문들을 대신 듣게 되어 속이 후련해진다는 점도 영화의 강점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오스틴은 왜 결혼 후는 쓰지 않는가? 그녀는 작가로서 어떤 자의식을 갖고 어디까지 쓰려고 하는가? 매리앤의 엄마는 어느 정도 이성과 감성을 갖춘 인물이었을까? 류의 질문들 말이다.  그런 질문들을 쏟아내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저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졌으면서도 질적으로도 꽤 알찬 독서클럽 하나 가져보고 싶단 소망을 하게 된다.  (맥락 외의 이야기지만, 시트콤 Joy에서 Joy가 맘에 드는 여자를 꼬시려고 북클럽에 가입하는 대목, 그리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설득>>(Persuasion)으로 끝을 내면서 작품속 인물들의 화해를 그린 것은 인위적이랄 수도 있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마무리였다. 문학작품의 치유효과에 대해서 부담갖지 않고 담담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과 영화의 매력은 제인 오스틴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 한들 (혹은 들었다 한들), 다시 그녀의 책을 손에 쥐고 천천히 제인 오스틴의 문체를 음미하고 싶어지게 한다는 데 있다. (나같은 경우 Pride and Prejudice는 지겨워서 더 못읽겠지만, Emma와 Persuasion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디 이런 흥미진진 북클럽 없을까나?
'이론'에 대한 강박없이, 마구 떠들어댈 수 있는 북크럽. 살면서 겪는 마음의 고민과 상처를 해독시켜줄 북클럽이 해보고 싶어졌다. 그릭같은 남자 한 명 있다면 금상첨화! 므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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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느 하루> North Korea, A Day in the Life

2006년 EIDF에 출품됐던 48분짜리 다큐멘터리.
네덜란드 사람인 피터 플루리(Pieter Fleury)가 2004년에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와 감독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듯하다. 세계 전체에서 가장 시민적ㆍ사적 자유를 많이 누리는 국가 출신의 감독은, 북한을 필름으로 담으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영화는 지극히 건조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북한 노동자 가족의 하루를 담음으로써 상당한 설득력을 획득했다고 보인다.

서구인들이 북한 체제를 실제로 보고 느끼는 전율은, 아무리 북한을 잘 이해해주려는 자세를 취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북한에 많은 동정심을 가진 듯한 다니엘 고든의 <어떤 나라>조차 그러했다. 이 영화에서 분명히 정상이고 평범한 사춘기 소녀인 듯하면서도 '김정일 동지'에 대해 광신도와 비슷한 두 소녀를 통해 뵈는 북한은 정말 기괴한 체제이다. (물론 나에게도 다소 그렇다.)

<북한, 어느 하루>는 주관적 개입과 논평을 줄여서 이러한 시선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던 듯하다. 이는 나레이션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고, 한 가족의 하루를 시간 순대로 담아내는 방법으로 달성된다. 가족을 이루고 있는 이 평범한(?) 평양 주민들은 함께 아침을 먹고 각자의 일상을 시작한다. 남편은 학생인지(직업이 없는지) 영어 공부를 하러가고 젊은 아내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직물공장으로 출근한다. 영화는 이 꼬마와 아내의 공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한사회의 한 하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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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 밥을 차린 젊은 엄마이며 노동자인 평양 여성이 출근하기 위해 단장하는 장면이다.)  

 너댓 살짜리 코흘리개들에게 수행되는, 유치원과 가정(!)에서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원수님”에 대한 우상화 교육, 공장과 가정의 어려운 전기 사정 등과 같이 비교적 잘 알려진 거시적인 사실 외에도, 영화는 북한 체제의 이면을 움직이는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는 작업과 공장 경영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총화’하는 노동자와 경영단위의 회의 풍경, 함께 영어 교육을 받는 서로 세대가 다른 시민들, 젊은 유치원 교사의 우상화 수업에 대한 선배 유치원 교사들의 평가회와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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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영어회화 수업. 그들의 영어도 상당히 '콩글리시'스럽다.(상)
생산 과정에 생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여성 노동자들.(중)
상당히 세련돼 보이는 이 여성들은 후배 유치원 교사에 대한 평가회에 참석한 다른 유치원 교사들이다.(하))

단편적이나마 구체적인 노동과정과 교육과정(이것이 곧 체제의 재생산메커니즘이다.)에 사회주의 문화가 어떻게 상호연관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군사주의와 우상화가 상투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미시적 사회주의 ‘질서’와 체제의 ‘허리’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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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되는 장면에서 주인공 여성이 다니는 공장은 전기가 들락날락한다.)

‘종북주의’ 논쟁으로 시끄러운 오늘의 시점에서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흥미롭고도 매우 씁쓸하다. ... 단지 현재의 북한 체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북한 체제와도 전혀 다른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진보’의 목표여야 한다는 것. 북한 체제가 내포하는 가치 전체와 단절해야 한다는 것... 북한 체제를 사회ㆍ정치적으로 규정하고 처해 있는 빈곤과 군사주의, 그 체제를 문화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개인우상화와 가부장제, 민족주의와는 절대 화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미국과 제국 체제에 둘러싸인 섬일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아무리 감안해줘도 그렇다. 한데 이런 생각조차 사실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중에게 이미 북한은 가장 오래되고 낡은 체제의 표상이다...)

그런데 종북주의 문제가 심각히 제기되는 현하의 논의는(이는 결국 민노당의 분화로 귀결될 것인바) 이런 아이디어는 북한 인권 문제와 체제 문제가 오늘의 시점에서 진보파들에게 새로운 과제로 급격히 제시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의 종북주의 논쟁에 대한 주시는 진보파가 처할 아포리를 상징적으로 예시한다. 새로운 이중의 전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승수의 <조선일보> 인터뷰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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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를 지켜나가는 중간층들.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ㆍ생산 조건을 정확히 보장하는 게 저를 비롯한 관리자들의 임무”이며 “항상 뿌리고 관리하고 이런 사업을 뿌리고 관리하는 게 두 손으로 움켜쥐고 나아가는 것 그게 기본이라”고 공장 관리자는 반장급쯤 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설명한다.(상)
훈장을 주렁주렁 단 할아버지는 며느리와 손녀 앞에서 미군의 폭격 때문에 어떻게 아버지와 형님이 죽고 고향마을이 파괴되었는가, 그래서 어떻게 미제에 대한 "복수 감정 외에 다른 게 없는지”를 설명한다. 이 설명을 듣고 며느리는 “우리는 전쟁을 겪지 못했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는 지구상에서 미국놈들을 소멸시켜야겠다는 것”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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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었을 듯 2008/01/07 18:23

    못 봐서 아쉽네요.
    <푸른 눈의 평양시민>도 정말 기괴한 북한이 담겨 있던데...
    이 영화는 또 어땠을지 직접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자상한 사진 설명과 함께 보니 그것도 괜찮군요.

  2. 박혜연 2010/02/15 00:03

    북한노동자의 하루를 보면 저기 화면에 나온 북한노동자가족은 생활수준은 그래도 중류층정도입니다! 음식도 쌀밥에 국, 반찬은 계란후라이에 김치정도지만... 강냉이밥도 못얻어먹는거에 비하면 나은거죠!

 

경계 (2006, Hyazgar / Desert Dream)

*경계가 보이지 않는 몽골의 자연 속에서 숨 쉬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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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나무를 심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작된다. 모두들 점점 사막화되어가는 초원을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헝가이(바트을지)의 노력이 무모하다고 여기고 더 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고 여겨 그곳을 떠나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여긴다. 마른 모래땅에 묘목을 심는 그의 행위는 자연에 대한 정복이나 개발과는 거리가 먼, 불가능한 믿음처럼 보인다. 이 고지식한 사내는 문제가 생긴 딸의 청력을 고치기 위해 울란바토르로 떠나자는 아내의 간청마저 뿌리치고 혼자 남는다. 이웃과 가족이 다 떠나버린 후 탈북자 모자 최순희(서정)과 창호(신동호)가 하룻밤 묵을 곳을 청하며 그의 움집 문을 두드린다. 귀가 들리지 않았던 딸의 자리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소년이, 그의 나무심기를 비난하던 아내의 자리에 묵묵히 일손을 돕는 여자가 들어선다. 그들이 청한 하룻밤은 소년이 떠나기를 거부하면서 하루 이틀 연장되고 사내와 모자는 천천히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그들이 같이 있는 모습은 하나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간다.


안과 밖이 분명하고, 오늘과 어제가 분명히 다른 도시의 삶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들의 동거가 자연스럽게 그려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몽고의 거대한 평원이라는 자연적 배경과 이방인을 쉽게 가족 안으로 들여놓는 그들의 습속 때문이기도 하다. 장률감독은 전작 <망종>에서 조선족 모자 최순희와 창호를 몽골 초원 위로 다시 한 번 소환한다. 중국의 소도시에서 철저하게 타자였던 조선족 최순희의 비참한 삶을 어떤 동정이나 위안의 제스처도 덧붙이지 않은, 너무나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내었던 감독의 태도는 <경계>에서도 유사하게 이어진다. 두만강을 건너며 가부장을 잃은 모자가 이년동안 걸었던 여정은 표정 잃은 여인과 소년의 얼굴 위로,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과 타인의 집이라도 안주하고자 하는 소년의 목소리를 통해 함축적으로 전달된다. 최순희와 창호에게 인적 없는 광활한 초원은 외롭고 쓸쓸한 곳이 아니라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이며, 말이 통하지 않는 헝가이야말로 가장 튼튼한 보호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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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극도로 제한된 이 영화에서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대신하는 것은 섹스이다. 몽골의 기후만큼이나 건조하게 그려지는 몇 번의 섹스는 극중 인물들의 심리적인 거리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헝가이가 아내의 육체를 어루만지는 첫 번째 섹스에서 아내는 남편의 손길을 받으면서 딸의 병을 걱정한다. 오래된 습관처럼 치러지는 그들의 섹스는 서로가 아닌 정면을 향해 평행하고 있는 그들의 시선처럼 그들의 관심이 얼마나 다른 곳을 향해있는지를 보여준다. 헝가이가 최순희를 품으려던 시도는 그녀의 육체적인 거부로 좌절된다. 그러나 헝가이의 염소를 죽이는 최순희의 극단적인 저항은 오히려 그녀가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표면에 드러낸 적이 없었다는 사실과 대조되면서 그녀 내면에 숨겨져 있었던 강렬한 욕망의 분출처럼 느껴진다. 도망과 불안으로 점철된 탈주가 아닌 정주된 인간의 삶을 영위하고 했던 그녀는 헝가이라는 보호막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어느 날 바람처럼 찾아온 한 여인과 헝가이가 사막에서 자유 그 자체처럼 느껴지는 섹스를 향유하던 날 순희는 자신의 내밀한 욕망이 연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감지한다. 그런 그녀의 잠재된 욕망은 엉뚱하게도 헝가이가 아내와 딸이 있는 울란바토르로 떠난 뒤, 군인 청년의 육체 위에서 분출된다. 엇갈린 욕망의 시점과 상대가 뒤바뀐 섹스는 결국 최순희 모자로 하여금 또 다시 길을 떠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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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의 카메라는 인물을 열심히 좇지도, 그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일러주지 않는다. 풍경과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카메라의 시선을 인물들은 지나쳐 가버리기도 하고, 이미 저 만치 가버린 인물을 카메라가 뒤늦게 따라가 응시하기도 한다. 장률 감독은 그것이 몽골에서의 시간감각이며 인간간의 거리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과 자연의 호흡, 그것이 이 영화의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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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이번엔 중국에서 찍은 줄 알았네 - 경계 (2006)

    2007/11/30 22:00 | TRACKED FROM 1004ant의 한일영화 이야기

    [18금] 투야의 결혼을 보곤 몽골 영화라 생각했다가...이번엔 몽골 영화를 보곤 중국내의 내몽골에서 찍은 중국과 한국 합작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몽골에서 찍은 독립영화... 화면도 지직거리는 점들이 계속 보이고, 대중영화에서는 얼굴을 내밀지 않는 서정이란 여배우도 나오고.. 독립영화들은 바쁜 생활에 찌들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미안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려웠다. 덧붙여, 서정이란 배우.. 출연 개런티로는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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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1004ant 2007/11/30 22:06

    글 읽고 갑니다...


* 우연찮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볼룸영화 두 편, 쓸쓸한 가을 춤바람으로 마음을 달래 보시죠.
활력이 필요하신 분, 눈요기감을 원하시는 분께는 <테이크 더 리드>를 공허함을 달랠 동지를 원하시는 분께는 <차밍스쿨&볼룸댄스>를 권해드립니다만, 너무 많이 기대하진 마시길~~!!



테이크 더 리드 (2006, Take 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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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한 마디로 볼룸댄스 버전의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1995)>다. 교사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학원물은 일정한 공식을 따르는데, 일단은 문제가 많은 학생들이 있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사무적으로 대하려는 선생들이 있다. 이때 좀 더 진보적이며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새로운 선생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학생들의 반발과 비웃음을 사지만 결국은 교과과정 이외의 창의적인 ‘무엇’을 통해 소로 소통하게 되며 그 선생을 진정한 스승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 ‘무엇’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의 열정과 재능을 최대한 발산하며 영화는 끝난다. <테이크 더 리드>는 이 공식을 아주 충실히 따르는 영화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 영화에서 바로 그 ‘무엇’이 다소 시대적인 감각과 맞지 않아 보이는 볼룸댄스라는 것과 다소 느끼하지만 고전적인 매력이 넘치는 피에르 듈레인(안토니오 반데라스)이라는 볼룸댄스 교사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정도다.


너무나 익숙한 공식에 춤이라는 화려한 볼거리를 덧붙였기 때문에 무난하고 재미있지만 매력적이지는 않다. 문제 학생들은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혹은 기대)을 충족시켜줄 만큼 타고난 춤꾼들이고, 듈레인은 왜 하필이면 볼룸댄스를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듈레인의 교습을 통해 무엇을 얻고, 그 이전과 어떻게 다르게 성장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감독은 힙합과 볼룸댄스라는 소재를 시청각적으로는 탁월하게 조화시켰지만, 그 안에 뿌리박혀 있는 계층적, 사회적, 인종적 문제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길을 택했다.


차밍 스쿨 & 볼룸 댄스 (2005, Marilyn Hotchkiss' Ballroom Dancing And Charm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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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서사가 얽혀 있는데 하나는 부인의 자살로 인해 끝없는 공허감에 시달리는 제빵사 프랭크(로버트 칼라일)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목격한 차량 사고의 운전자 스티브(존 굿맨)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원제인 ‘마릴린 호치키스의 볼룸댄싱 앤 참 스쿨’은 스티브가 소년이었을 때 그가 매너 있는 남자로 자라기를 원했던 엄마가 보냈던 볼룸 댄스 학원의 이름이다. 프랭크는 스티브의 부탁을 받고 그의 첫사랑인 금발 소녀 리사와의 약속을 대신 지켜주기 위해 그곳에 들렀다가 춤을 배우며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메레디스(마리사 토메이)라는 여인을 만나 무기력증에 빠졌던 자신의 삶에 활력을 되찾게 된다.

이 작품은 분명 춤에 관한 영화이긴 하지만 보통의 댄스 영화들처럼 화려한 무대나 배우의 멋진 댄스 실력을 감상할 기회를 선사하는 대신 상처받은 인간들, 특히 죄책감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자포자기나 폭력으로 전환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랭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아내의 자살로 인해, 메레디스의 의붓오빠 랜들(도니 월버그)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린 동생을 보호해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때문에 고통받지만 이들이 춤을 통해 자긍심을 되찾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야기는 다소 산만하고 지루하게 전개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힘이 있고 주제의식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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