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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무영탑>(1957)

2009/04/11 09:32 | Posted by <소문> 편집실

신상옥, <무영탑>(1957)

현진건의 1938~1939년 동아일보 연재소설 <무영탑>을 원작으로 한 영화. EBS 방영판으로 보았는데, 영화 방영 전에 김영진의 해설을 보여주었다. 그의 해설에 따르면, 이 영화는 “서구 영화에 물들지 않은 1950년대 한국영화의 고유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 1950년대의 한국영화는 물론 서구영화의 스타일도 모르는 나로선 딱히 어떤 부분이 ‘고유’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설명대로 템포가 좀 늦고 연기도 거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한 마디로 다소 지루하다는)

 

원작을 훑어본 결과 영화나 소설 모두 아사달-아사녀의 설화를 많은 부분 수정하여 새로운 인물들의 연애구도로 바꾼, 대중성을 의식한 텍스트들이라고 보인다. 설화는 그림자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 실망한 아사녀가 자살하는 이야기로, 무영탑(석가탑)에 얽힌, 즉 예술품으로 소급되는 서사이며, 아사달-아사녀의 사랑이야기만이 중심이다. 반면 소설과 영화에서는 그러한 그림자못의 전설이 허구임이 뚜쟁이의 입을 통해 미리 폭로되고, 오히려 자신의 힘겨운 삶과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아사달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아사달의 모습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고, 아사달을 사랑하는 두 여성의 애정문제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구슬아기와 아사녀라는 두 여성의 ‘수난사’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진 반면, 영화는 원작에 비해 구슬아기의 비중이 커졌다. 영화에서는 아사녀의 수난사는 매우 간략하고 뜬금없게 다루어져서, 심하게는 그녀가 겪는 시련들이 잘 이해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아사녀를 노리는 아사녀 아버지의 제자들의 이야기나 그녀가 남편을 찾아 서라벌로 오는 길에 겪는 위험들, 그리고 그녀를 데려다가 좋은 옷과 밥을 준 뒤 어떤 대감에게 팔아버리려 한 뚜쟁이의 이야기 등이 너무 간단히 다루어졌다. 영화의, 아사녀를 흠모하던 팽개의 모략과 남편 소식을 듣고 쓰러진 아사녀에게 갑자기 입을 맞추는 장면은 생뚱맞고, 아사녀의 뚜쟁이의 관계도 이상하다.(과잉 친절을 보이는 뚜쟁이와 그 앞에서 고마워도 안하고 멍하게 있는 아사녀.) 

 

반면에 구슬아기의, 아사달과 그녀를 흠모하는 ‘난봉꾼’ 금시중의 아들 한림학사, 그리고 그녀의 정혼자 경신이라는 세 남성 사이에서의 연애구도는 매우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말괄량이’ 같은 귀족 여성 구슬아기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으며, 경신의 젠틀함과 쿨함, 무용(武勇)의 뛰어남, 금시중 부자의 방탕하고 사악한 모습도 드러난다. 그에 비하면 구슬아기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사달의 매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그가 석가탑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지녔는지는, 기껏해야 중들이 모여 그의 밤낮 없는 작업의 열정을 얘기하는 도중에 잠깐 비칠 뿐이며, 그의 구슬아기와 아사녀에 대한 애정도 친절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수동적이고 ‘허수아비’같기까지 하다. 아사녀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나 물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사달에게 구슬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그저 멍한 모습으로 끝끝내 그의 능동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신상옥이 최은희라는 여배우의 매력에 너무 '풍덩' 빠져있었던 탓일까? 그러나 ‘얼큰이’ 최은희가 말괄량이에 귀여운 여성, 여러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구슬아기라는 역에 어울리는지도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갔다. 이 시대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기준이 지금과 달라서인지...최은희에게 너무 많은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허용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아사녀 한은진도 너무 심술 맞아 보이는 입매와 볼살이 순정파 아사녀 역을 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 영화에서 소설과 달라진 부분은 마지막 결말 부분. 소설에서는 구슬아기가 불에 뛰어들자, 이를 경신이 구해낸다. 소설 줄거리를 써놓은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구슬아기가 죽은 것이라는데, 죽은 것인지는 분명치는 않고, 거의 숨이 끊어질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경신에게 아사달을 찾는 헛소리를 하고, 이를 보며 경신은 그녀의 사랑에 대한 감탄과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아사달은 두 여자들의 비극을 겪은 뒤 탑에 그녀들의 모습을 새기는 내용이 소설에는 있으나 영화에선 그냥 물에 빠져 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 점에서 영화가 소설보다 더 아사달의 예술가로서의 면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보인다.

원작이 있는 영화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것은, 영화가 원작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는 느낌보다는, 원작을 참조해서 영화를 보라는 식의 불친절함이다. 영화에서는 잘 납득이 안가는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행동들이 종종 눈에 띄고, 그러한 것들은 원작을 읽어야만 이해가 된다. 이 영화도 그러한 축에 속했다. 물론 구슬아기의 이야기들에서는 그녀의 서사를 중심에 놓고자 하는 감독의 시선이 뚜렷이 드러나지만, 그 외의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원작을 참고하세요"라고 말하는 듯 충분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감독 역량의 한계인가, 아니면 원작 각색 영화의 운명인가?

 

여성의 수난사는 언제나 그대로다. 1930년대 후반의 이 소설에서도, 1950년대 후반의 이 영화에서도 여성들이 겪는 수난의 에피소드는 1900년대의 신소설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이 아사달-아사녀-구슬아기의 이야기에서 형식-영채-선형이라는 <무정>의 구도도 보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흥행에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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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현존 최고(最古)의 발성영화라는 <미몽>(1936)은
주인공 문예봉 하나때문에라도 무척이나 문제적인 작품이다.
문예봉이라는 여배우 자체의 가치도 의외일 뿐 아니라
문예봉이 연기한 '애순'이란 여성상도 참으로 예외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출할 때 입고 나갈 옷이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남편을 들볶고, 남편이 그녀에게 딸 정희 옷이나 사오란 말에
화를 버럭 낸다. 어린 애가 무슨 옷이 필요하냐며. 자기나 사달라며.
순간, 온갖 계모들의 구박 얘기들을 다루곤 하는 신소설과 드라마 애호가(?)는
"그녀가 계모인가?"란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하여 아이의 옷을 사러 가면서도 투덜거리던 애순은,
그래도 아이를 위해 개중 제일 비싸고 좋은 옷을 골라 산다.
이 부분 역시 겉으론 투덜대고 쌀쌀맞게 구는 듯 해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밀양>의 전도연처럼, 일종의 '허영'을 드러내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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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일은 애순을 의외의 상황으로 몰아가게 되는데
이처럼 돈 많은 유한부인으로 보이는 애순을 보고
그녀의 지갑을 슬쩍 훔친 뒤 돌려주는 고전적 수법으로
'작업'을 거는 한 남자와 애순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와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애순은 집을 나오고 그와의 호텔에서의 동거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집안의 주부,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순식간에 떨쳐버린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표정과 말투로 일관하던 애순이
정부(情夫) 앞에서 보인 유순하고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참으로 낯설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에 빠지자 남편의 살림 못한다는 타박에
"그럼 살림 잘하는 여자 데려다 사시구랴. 나갈테야요. 나가면 되잖아요!"하며
신경질적으로 거울을 홱 돌리며 집을 뛰쳐나가던 애순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시대(?)에 이런 여성 주인공이라니.


이런 여성이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한 적은 많지만,
주인공인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대중문화에서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여성은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 있고,
상식이라는 '대중의 감각'을 무시한 이야기는 대중들에게서 외면받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여성의 대조적 인물로 현모양처형 여성이 등장하면서 투톱 주인공인 경우는 좀 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이미 이런 여성이 영화 속에서 단독 여주인공인 것. 오, 놀라워라~
그리고 자신에게 이미지 손상을 가져올 지도 모를
이런 문제적인 역할을 당대의 최고 여배우가 맡은것. 오오, 놀라워라~


식민지시기 영화에 대한 맥락이 없는 나로선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시대적, 문화적 토대나 감독의 작가주의 등까지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대나 영화의 맥락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이 영화는 분명 '혁명적'인 출발과 설정이었다.

여성에게 있어서 '모성성'은
근대국가가 시작되기 전이든, 후이든 언제나 최상의 가치였다.
특히 근대 이후에 여성의 자녀생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 중요한 요소이고 근거였다.
나라가 부강해지고, 그리하여 세계열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등한 국민을 생산하고 양육해야 하고,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졌다.
이것을 위해 여성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건강해야 했다.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처음 주장한 것도
다 자녀의 올바른 교육, 양육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식의 '남성 중심적'인 여성교육의 취지와 달리
교육받은 여성들은 '도발'하기 시작했다.
우리 여성들도 교육을 받았으니,
이제 남성 지식인들과 동일한 사회진출,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누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하여 남성들에게 밉보이게 된 것이 '신여성'들이었을 것이다.
지적인 미모의 신여성들은 한편으로는 남성들에게 '정복'의 욕망을 자극하는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위협하고 남/녀, 공/사의 영역을 허물려 드는
배제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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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가장 쉽게 신여성들을 비난할 '빌미'가 된 것이
여성의 정조개념의 약화였다.
여성들이 '감히' '사랑'을 이유로 남자를 배신하고
일부종사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몽>의 애순과 같은 여성은
문란함+허영심+가정주부로서의 책임 방기+모성애 결핍 등을
모두 갖춘 제대로 된 '문제녀'였다.


그런데 이런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뒤
이 영화를 만든 이가 의도한 이 여성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 지점에서 혼란스럽다.

그 첫 지점은, 영화 속 삽입된 '새장 속의 새'를 통해 보여주는 메타포로서
애순을 당시 '유행'과도 같았던 <인형의 집>의 노라 신드롬.
즉, 여성이 자신을 새장속에 갇힌 새처럼 만드는
사회와 남성들에 저항하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의 해석이다.
이 부분에서는 애순의 '자유의지'는 긍정된다.
여성이 무조건 '한 집안의 주부'로서만 살아야 할 필요도 없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두번째 지점은, 정부가 사실은 빈털터리였고,
친구들과 협잡하여 사기, 절도를 일삼는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애순이 보인 반응.
여기서 애순은 또 한번 '강한' 여성의 면모를 보이는데,
그 남자를 경찰에 신고해버리고,
자신이 새롭게 사랑에 빠진 무용수를 따라가려 떠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역시 여성들이란 주어진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다.

사랑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것'이고,
아무리 사랑했어도 돈없고, 죄많은 남성에 대해
맹목적인 사랑을 지속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
애순은 그야말로 자기 행동의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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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지막 지점, 애순이 새로운 남자를 좇아가려 용산역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자신의 딸이 자기가 탄 택시에 치여 다친 뒤의 행동에서
이 영화는 '상식'으로 귀환하고 만다.

아이가 차에 치인 것은 분명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애순의 전적인 책임은 아니다.
택시기사에게 빨리 달릴 것을 종용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고를 내라고 한것도 아니고
스스로 운전을 한것도 아니니.

그런데, 집을 나온 이후
한번도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안함을 보이지 않던 애순이
병실에 누워있는 딸을 보더니 죄책감으로 자살을 하고 마는 것이다.

딸 아이가 아내의 차에 치여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의 애순을 향했던 권총때문에 갑자기 정신이 든 것인가?
더구나 아이는 죽은 것도 아니고 다치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애순은 죽어야 하는가?
이 지점때문에 이 영화는 애순이라는 문제적인 여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가 모호해지고 말았다.

그녀의 주체적이고 의지적인 면을 긍정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러한 여성의 태도가 결국에는 가족 내의 비극과
자기 자신의 파멸을 초래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함인지
이 영화 한편만 봐서는 쉽게 결론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마지막 지점때문에
아무래도 후자쪽의 생각이 좀더 강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여성의 자유로운 사랑,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과 선택들은
'애엄마'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랬다간 이렇게 큰 변이 일어난다는 것.
영화는 그런 것을 그리려 한듯해서
초반의 '신선함'과 기대에 비해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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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 혹은 <죽음의 자장가>라는 제목도 그런 점에서
다시 눈여겨 볼 만하다.
'미몽'은 '헛된 꿈'을 뜻한다.
즉 애순의 행동들은 결국 헛된 꿈, 미몽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이름인 '죽음의 자장가'는
아이가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던 대목과 이어져
마지막에 병석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의 자장가를 느끼지만, 그때 엄마는 독약을 먹고
죽어 있는 모습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즉,
"'자장가'는 엄마가 아이에게 불러주는, 불러줘야 하는 노래이다.
'헛된 꿈' 때문에
이러한 의무를 저버린 엄마는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혁명'을 의도한 적도 없을지도 모르고,
혹은 실패한 '혁명'에 그치고 말았다.
여성의, 모성의 '가출'은 곧 '파멸'이다.
영화는 이 '가출'을 진지하게, 나름의 설득력 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전복적이었지만
'파멸'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생뚱맞게 그렸다는 점에서 진부하다.

이미 나혜석이 아이를 자신을 빨아먹는 '악마'로 표현한 이래로
엄마와 아이의 관계, 모성성은 '필연', '본능'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나 조차 '애순'의 영화 초반부 모습을 보며
'계모인가?'라고 생각한 이 뿌리깊은 통념을 보라.
여성이 아이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본능을 넘어선 당위로 규정되어 왔다.

그런데 모성이 본능인가에 대한 논란은
최근과 같이 여성의 사회진출이 여성들의 요구사항의 차원을 넘어서서
생계,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되어버린 시대에 들어서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용잡직이든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점점 증가하고있다.
현재와 같은 사회, 경제 구조에서는
웬만한 가정은 여성들도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서는
미래의 불안과 경제적 궁핍을 떨쳐버리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아이를 아예 낳지 않기로 하는 부부가 늘어나거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갖 가족들 또는 막대한 보육비가 동원된다.

여성들이 '모성성'을 '본능'이라며 ('지키게 되는'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가정은
그야말로 상류층 뿐이다.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기만 해도 가계에 아무런 무리가 없는 정도 이상의
부르주아들만이 전업주부, 현모양처의 여성상을 유지할 수 있다.
즉, 현재의 '모성성'은 곧 그 가정의 경제수준으로 판가름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남의 부잣집 마나님들은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를 둔 아이는 자기 아이의 친구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돈 좀 있는 집 전업주부 엄마들은 직장생활 엄마들을 왕따시킨다는 것이다.
학원 다닐 때, 학교 행사에 쫓아다닐 때 엄마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함께 분담할 수 없는 엄마들과는 친해져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 부잣집 엄마들도 못마땅하지만,
더 못마땅한 것은 이 사회의 보육, 양육, 교육의 구조이다.
언제까지 엄마들에게 이런 짐이 주어져 있어야 할까?
언제까지 엄마들이 집에서 애들 기르는 일에 매진해야 하고
학교에 가서 애들 청소와 급식과 간식을 챙겨야 하고
방과후 학원 3~5개를 돌아야 하는 아이들의 운전기사가 되어야 하나?
왜 그러한 것들이 개인들, 특히 엄마들만의 책임이 되어야만 하는가?

하루종일 밖에 나가 일을 하는지, 사람들과 술마시며 노는지,
그러다 들어오는 아버지는
돈만 벌어오고, 집에 들어와 아이를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것만 해도 '부성성'을 의심받지 않는데,
왜 돈을 벌면서도 엄마들은 그 이상의 모성애까지 발휘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랑이 이유이건, 직업이 이유이건, 엄마들의 고통이 이유이건
여성들은 점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 낳을 수가 없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모성애는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왔다.
여성이 본능의 수준에서 모성성을 발휘하는 임계지점은
훨씬 축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축소로 남은 잉여분은 사회와 국가가 '본능'인듯 책임져주어야 한다.
그것이 '저출산대책' 운운하는 국가의 일차적인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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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2007/12/02 22:29

    미몽을 보면서 문예봉 캐릭터의 혁명성을 그다지 느낄 수가 없었는데요.
    우선은 결말에서 그녀에 대한 단죄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어서, '결국 이런 여성이 맡이해야하는 운명이란 비극적이어야 한다'는 주제가 선명했다는 것때문이고요.
    다른 하나는 그녀의 태도나 선택이 한번도 긍적적인 동화작용, 선망을 불러일키지 못하도록 그려져 있다는 것때문이었습니다.
    문예봉에 대한 아우라가 없는 세대로서 지금에야 뒤늦게 보았기 떄문일까요?
    그녀의 *아지 없어 보이는 말투와 야멸찬 태도 등등이 어찌나 반감만 불러일으키든지요.
    게다가 그녀는 사랑을 찾아 갔는지...도 확실치는 않지만,
    한번도 사랑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또 그녀의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긍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요.
    백화점에서 만난 정부는 돈때문에 그녀를 꼬셨던 것이고,
    무용수는 그녀를 마치 이상한 스토커 보듯이 엄청 무시하잖아요.
    물론 님의 지적처럼 그런 혁명적인 부분들은 감독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형성된 일종의 택스트의 틈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긴함다.

    하튼간...미몽부터 요즘 어머니들의 불쌍한 자화상까지 읽다보니 서글픈 마음이 듬다.
    아...얼마 전에 아는 쌤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오름다.
    "요즘 엄마들은 완전 애들 매니저야 매니저..."
    쓸쓸한 로드매니저의 길이 앞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가야할 길이 아니되기를 빌어봄다.

  2. BlogIcon coolya 2007/12/02 22:55

    님의 말씀에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그런데요, 그 백화점에서 만난 정부가 돈때문에 그녀를 꼬셨는지는 모르지만...제 기억으론 그 남자의 친구가 애순에 대해 물었을때 그녀를 사랑한다는 얘길 했던 것 같은데요...영화에 대한 기억력이 높지 않은 편이라 자신있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요. 뭔가 애순에 대한 감정은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 대목이 있었는데...

    하튼 저도 그 당시의 문예봉에 대한 맥락이나,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몰라서 토론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좀더 공부해보고 다시 얘기나누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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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단성사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최초의 영화를 묻는 자리에서, 심심치 않게 <<아리랑>>이라는 대답이 등장하곤 한다. 물론, 아니다. 처음 만든 영화가 그토록 잘 만들어졌고, 그토록 흥행했다면, 우리 영화 헐리우드 진출했다고 신이나 떠들고만 있을 지금같은 지경은 분명 아니었을 터.

호루라기 소리가 나며 무대 위에서 옥양목 스크린이 내려오고 거기에 활동사진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한 영화는 한국영화에 조금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신극좌 대표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1919)라는 것 쯤은 안다.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이 <<의리적 구토>>는 연쇄극, 즉 kino drama의 일어식 표현으로 연극 상연중 무대에서 구현하기 힘든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와 영사하는 식의 활동사진 형태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조풍연의 회고에 의하면,

무대에서 연극이 벌어지다가 등장 인물이 급히 퇴장한다. 함께 연극하던 배우가 뒤따라간다 이때 호루라기 소리가 나며 무대 위에서 옥양목 스크린이 내려오고 거기에 활동사진이 비춰진다. '아!' 놀랄 새도 없이 방금 무대에서 본 배우들이 활동사진에서 연기를 한다. 쫓기는 자가 대기시켰던 자동차에 올라타고 질주한다. 쫓는 자도 어디서 구했는지 자동차를 타고 쫓는다. 추적, 또 추적, 자동차가 5리쯤 밖에서 달려온다. 카메라는 고정돼 있고 그 자동차가 스크린 전면까지 와서 비켜질 때까지 한 5분. 다음 장면은 추적하는 자동차가 보이기 시작해 그것도 스크린에서 사라지기까지 5분쯤.
조풍연, <<서울 잡학 사전>>, 로즈가든, 1989, 30면.


대중의 눈을 사로잡은 최초의 연쇄극은 10분 남짓의 자동차 추격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관심, 그리고 시간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최초의 영화를 단지 <<의리적 구토>>만으로 한정할 수 없으며, 단성사에서 개봉 당시, 경성 시가지의 경치를 찍은 기록 영화 <<경성 전시의 경>>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 또한 기억할 것이다. 개봉 하루 전 매일신보 26일자 신문광고를 살펴보면,

근래 활동사진이 조선에 많이 나와 愛劇家의 환영을 비상히 받아 오나, 첫째, 오늘날까지 조선인 배우의 활동사진은 아주 없어서 유감 중에 그를 경영코자 하나 돈이 많이 드는 까닭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바 단성사주 박승필 씨가 오천 원의 거액을 내어 신파 신극좌 김도산 일행을 데리고 경성 내외의 경치 좋은 장소를 따라가며 다리와 물이며 기차, 전차, 자동차까지 이용하여 연극을 한 것을 서서히 박힌 것이 네 가지가 되는데 모두 좋은 활극으로만 박았으며, 그 외 경성 전시가의 경치를 박아 실사를 한다 하여...


조선에서 최초로 제작되고 대중에게 공개된 활동사진, 즉 영화는 연쇄극과 실사, 이렇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조선 최초 영화의 개봉일, 10월 27일은 지금 많은 영화제, 또 영화의 날 등이 10월에 열리고 있는 직접적인 원인인 것, 알아두어도 나쁠 일은 아니다.

영화의 연극 재매개화

초기에 제작된 영화 내용이라야, 사랑, 질투, 음모, 쌈박질 정도의 태그로 웬만큼은 커버된다. <<의리적 구토>>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절대 술먹고 의리있게 같이 구토하는 내용 아니다. 부유한 집 계모 슬하에서 자란 주인공 송산,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계모의 알력때문에 떠돌이로 살아가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의형제를 맺게 된다. 계모의 계략으로 송산의 신변이 위협당하자, 의형제 이에 맞서 싸우리라 다짐하나 송산 이를 말리고, 결국 위협 수준이 극에 달하자 눈물을 머금고 응징을 다짐한다는 이야기이다. 대놓고 권선징악이다. 사실 이 작품은 연쇄극으로 제작되기에 앞서 우미관에서 상연되었던 신파극이기도 하다. 필름 남아있지 않고, 초기 영화인들의 회고담으로만 전해들을 수 있어 실체가 어땠는지 알 길 없으나, 위의 자료들로 보아 재미있는 것은, 애활가(愛活家)의 전신이 애독가(愛讀家)가 아니라 애극가(愛劇家)였다는 점. 그리고 고정된 카메라 시점에 의한 촬영방식이 관객의 연극 관람 방식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연극으로 상연되었던 콘텐츠를 재활용하고 있다는 점. 영화와 소설의 관계를 짚기에 앞서, 영화의 연극 재매개화(remediacy)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하는 장면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어떻게~ 소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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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침체의 원형, 1930년대 말

 

유/무료 관람 인원을 합하면 昭和13년중엔 1,600萬人을 초과.
                                                     <<삼천리>> 13권 6호, 1941, 6.

1930년대 말 일제의 전시 통제 영향으로 조선영화계는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침체의 증거는 제작 편수의 급격한 저하라는 제작계 내부와 수입 영화 제한 조치에 따른 흥행계 수입 저하 등 다양한 지수로 나타난다. 침체기의 대부분 영화지수들이 이처럼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독, 관람자수만은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역시 침체기의 당당한 지수라는 것. 왜냐하면 관람자수의 증가세는 천편일률적인 영화제작 경향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천편일률적인 영화제작 경향이란 1938년 서광제가 <군용열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스크린을 도배하기 시작한 일제의 국책 선전영화를 말함이오, 관람자수의 증가는 이 스크린 앞에 동원된 비자발적 관객 대중의 존재를 뜻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군용열차>의 한 장면

조선영화령과 영화인들의 경험 변화


제작 편수의 감소, 흥행계 수입 격감, 국책 선전영화의 도배는 1930년대 말 조선영화계 침체의 눈에 보이는 증거이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스토리이다. 여기에 이들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1940년 일제의 조선영화령 시행이라는 것도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조선영화령은 이미 1936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일제의 조선영화 통제 정책의 집대성이자, 전시 통제의 일환으로 내지에서 바로 앞서 시행된 영화령의 조선판이다. 굳이 이 자리에서 조선영화령의 조목조목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고, 다만 조선영화령이 시행되면서 우리 조선영화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즉 어떤 변화들이 그들에게 생겨났고, 침체의 결과를 견인했는지 소심한 자료를 인용해가며 탐찰해 보기로 한다.


영화인 기능증명서

第11條 기능 심사는 左의 방법에 의하여 이를 행함.

1. 기능 증명서 발행 신청자, 연출의 업무에 종사하려는 자일 때.

第1次 考査 脚本 考査(제출한 각본에 대하여 이를 행함.)

第2次 考査 第1次 考査에 합격한 자에 대하여 左의 순서에 의하여 이를 행함.

(1) 性格考査(志操, 性格, 才幹, 判斷 등)

(2) 學科 及 常識 考査(國語, 國史, 國民常識 등에 대하여 口答 又는 筆記에 의함) (194항에 계속)
(3) 연출자로서 필요한 지식고사(각본, 코티뉴티-, 필림, 장치, 의상, 분장, 연기, 촬영, 조명, 녹음, 현상, 편집, 미술, 문학, 及 연극, 영화에 관한 법규 竝 영화사업 등에 대하여 口答 又는 필기에 의함)

(4) 콘티뉴티-고사(콘티뉴티-를 작성케 함)

2. 기능 증명서 발행 신청자, 연기의 업무에 종사하려는 者일 때.

(1) 性格 考査(志操, 性格, 才幹, 判斷 등)

(2) 學科 及 常識 考査(國語, 國史, 國民 常識, 영화 상식 등에 대하여 口答 又는 筆記에 의함)

(3) 연기자로서 필요한 素質 考査(發聲, 所作, 表情, 扮裝 등)

3. 기능 증명서 발행 신청자, 촬영의 업무에 종사하려는 者일 때.

(1) 性格 考査(志操 性格 才幹 判斷 등)

(2) 學科 及 常識 考査(國語, 國史, 國民 常識, 영화 상식 등에 대하여 口頭 又는 筆記에 의해서 이를 행함.)

(3) 촬영자로서 필요한 지식 고사(사진광학<194> 급 사진과학, 촬영기, 렌즈, 필림, 필타, 도릭크, 조명, 녹음, 현상, 편집 등에 대하여 口頭 又는 필기에 의하여 又는 촬영기를 조작케 하여 이를 행함. 더욱 특히 필요한 때는 試作品을 제출하여서 이를 행하는 일이 있음)


조선영화령이 시행되고 나서 조선 영화인들이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영화인 기능증명서의 발급이다. 영화인 ID카드인 셈이다. 이 증명서를 발급받은 자만이 소위 영화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인들을 통제하려는 심산인 것 충분히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절차이다. 증명서, 물론 아무나 딸 수 있는 것 아니다. 발급 기관에서 시행하는 소정의 심사를 거쳐 교부받을 수 있다. 위에 인용된 '영화인 기능증명서 규약' 11조에 보면 종사 부문에 따라 약간은 차이가 있으나 시험을 본다. 한번에 통과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격'고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때 성격이란 영화령 시행 후 결성된 '조선영화인협회'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강 짐작이 된다. 영화령 시행 첫 해라는 점을 감안, 그간의 영화 제작 경험을 존중해 감독 9인을 포함하여 58인이 기능증명서를 발급받아 1차 영화인으로 등록했다. 해방 이전까지 조선에서 제작된 영화는 모두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동조, 또는 침묵


이들의 면면에는 물론 차이가 있으나,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대체로,

조선의 영화는 ‘銃後의 민중의 일상생활을 지도하는 生活讀本’이 되는 한편, ‘국가의 大理想을 위한 聖戰에 있어서 무기’
안종화, <신체제와 영화인협회의 임무>, <<삼천리>> 13권 6호, 1941, 6.

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암묵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동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음은 분명하다. 기능인 증명서를 받는 순간 이들은 거추장스러운 딴따라에서 국가에 복무해야 하는 전사로 태어나게 되었고, 영화계 침체를 두려움없이 맞아들여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영화인 기능증명서는 아무래도 조선영화령 시행을 개인들이 체험한 가장 충격적인 세계의 변화가 아니었을까 소심하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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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자의 압박이... 2007/09/08 09:59

    좋은 자료...소심한 분석 그러나 뇌를 마비시키는 한자들 ㅋㅋㅋ
    DJ녀의 한마디였씀당.

<<무정>>, 교과서에서 배운 그 <<무정>>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1939년 4월 이광수의 소설 <<무정>>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영화 <<무정>>에 대한 관심은 지금과 당시의 그것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우리 근대 소설의 첫 장면이 영화로 옮겨졌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과 글을 읽거나 못 읽거나 한 집에 한 권씩, 대를 물려가며 읽혀왔던 소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 그 차이가 되겠다. 그리고 그 차이는 문학과 영화를 위계서열화하려는 문인엘리트와 대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고급과 저급을 논하는 낡은 구도가 현(現)현(顯)하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알게모르게 숨어있는 우리의 이와 같은 시각의 원형이자 우리를 뜨악케 해주는 자료가 있으니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소심한 광수씨의 반항질, 영화 <<무정>>의 밤

4월 15일 영화 <<무정>>의 개봉은 개봉전부터 주목되었던 관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으니, 개봉 이후 연일 '札止-후타도메,매진' 사례를 이어나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인 듯 삼천리사는 개봉 3일째인 18일 '영화 <<무정>>의 밤'을 개최했다. 개봉 즈음이면 영화 배우들이 단체로 이 방송 저 방송 예능프로그램으로 떼몰이다니는 지금이야 닳아빠진 일이겠으나, 당시로서는 단일 영화를 위해 잡지사가 특별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보기드문 일이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감독 박기채를 비롯해, 안석영, 이규환, 김정혁 등 '조영-조선영화주식회사'측 동료감독과 주연배우 한은진과 문예봉이 감독과 배우측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삼천리사 대표 김동환,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김동인, 이헌구, 이무영, 백철, 최정희 등 문인들이 영화비평가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뜨악한 장면들이 마구 연출되기 시작한다. 원작자인 이광수도 초대되었으나 신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은 것도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대신 보낸 그의 편지에 담겨있는 영화 <<무정>>에 대한 불만 가득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이 결석은 소심한 광수씨의 반항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밤의 행사는 채록되어 <<삼천리>> 11권 7호(1939년 6월 1일 발행)에 전문이 실리게 된다.


잊을 수 없는 기억, 영화 <<무정>>의 '밤'

오늘 저녁 바로 시내 황금좌에서 영화 「無情」이 상영되어 滿都 士女의 인기를 끄을고 있슴니다. 이 때에 우리들은 『無情의 밤』을 여러서 영원히 예술상 존귀한 이 작품에 대하야 이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삼고저 함니다.
김동환의 '예술상 존귀한', '이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과 같은 축사로 시작된 이 밤은 다른 이유에서 영화 <<무정>>의 '밤'으로 정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이 좌담회는 크게 '주연배우의 고심담', '문사, 영화비평가의 평', '연출자의 의도'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행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비평가의 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재미있는 구성이라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어느 새 문인들이 영화비평가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김동인-춘원의 無情이 아니고 박기채씨의 無情이더군요.(一同 笑)
이헌구-어제 저녁 시사회 석상에서도 춘원께서 다 보시고는 이것은 박기채씨가 창작한 無情이라고 하시더군요.
김동인-나도 바로 았가 오후에 달려가 보았는데 내에게 직감된 몃 가지 결점을 든다면 첬재 이 영화화된 無情은 스토리의 일관성을 일었어요. 만약 원작을 읽지 않코는 이 영화에 비처지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약이의 줄거리를 찻지 못하겠어요.
김동인, 이헌구의 맞장구로 시작한 영화 <<무정>>에 대한 비평은 영화 <<무정>>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되었다. '춘원의 무정이 아니고 박기채씨의 무정'이라는 김동인의 말 끝에 붙어 있는 '一同 笑'는 문인들의 조롱과 연출자의 당혹스러움에서 비롯된 웃음이다. 감독의 원작에 대한 오해, 배우들의 서툰 감정 연기 등, 결국 영화 <<무정>>에 대한 평은 원작 훼손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수집 절차로 진행되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첫 장면, 단오날 그네뛰고 돈치기 하는 축제 시퀀스가 도대체 원작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첫 장면부터 원작을 훼손하겠다는 각오가 천명된 것이 아니냐는 질타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원작 이상으로 살닌 좋은 점도 말슴하여 주서요... 엄써
기자-그렇게 결점만 말슴 마시고 이번에는 원작 이상으로 살닌 좋은 점도 말슴하여 주서요. 좋은 점이야 수두룩하지요. 첬재 맨 처음 맨 첬 장면이 소녀가 근네 띄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은 一幅의 名畵얘요. 조선의 로켈 칼라를 100파-센트 나타냈어요. 그 힌 치마폭이 수양버드나무 우로 번득이는 광경 참으로 인상적이야요.
白鐵-그 장면이 全篇에서 가장 깨긋하고 조왔는데 그러나 또한 필요 이상으로 멋없게도 길어젓서요.
金東仁-그리고 原作에는 亨植과 英采의 少年時代를 겨우 두 서너 줄로 설명하여 버렷는데 영화는 거지반 이 소년시대를 평면적으로 묘사하기에 尺數의 3분 2를 허비했어요. 역시 소년시대는 간결하게 생략함이 좋지 않었을가요.
영화에 대한 비판이 격해지자 김동환은 결점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원작을 뛰어 넘는 장면들에 대한 평도 함께 해달라며 진땀을 뺀다. 가령, 첫 장면이 조선의 로컬을 잘 살리지 않았냐고 운을 띄워 보지만 모두 냉담, 오히려 잘 걸려들었다는 듯, 원작과는 상관도 없는 이 장면, 그리고 형식과 영채의 어린 시절에 너무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핀잔만 늘어놓는다. 계속되는 영화비평가로 호명된 문인들의 질타에 감독과 그의 동료들은 '마땅한 지적이다, 그러나 로케이션 제한이나 필름값 인상 등 영화 제작 환경이 좋지 못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와 같은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이렇게 '영화 <<무정>>의 밤'은 검사와 피고 둘만 존재하는 법정 분위기를 연출하며 끝이 나는 듯 하다. 그나마 안석영이 문인들이 알아들었을지, 못 알아들었을지 모를 듯한 한 마디 변론을 던진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겠다.
소녀 영채가 고향을 도망해 나올 때 동구밧 돌부처의 그 유모어한 장면이라든지 신우선 박영채가 想愛하려는 그 때 저 멀니 背後로 결혼식 행렬이 지나가는 데라든지 그밧게도 조케 본 곳이 만해요.
이 부분은 영화 <<무정>>에 사용된 몽타주 기법에 대한 찬사이다. 이 한 마디의 찬사가 저 무지막지한 문인/영화비평가들의 질타로부터 영화 <<무정>>을 자유롭게 해줄, 그리고 '영화 <<무정>>의 밤'을 아름다운 밤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 법한 발판이 되지는 않을까 싶다. 소설의 미학이 있듯, 영화의 미학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원작이 있는 영화라고 해서 단지 원작에 대한 충실도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닫게 해줄 기회가 아쉽기만 하다.


판사는 그럼 어디에?

마음껏 칼날을 휘두르는 문인/영화비평가들이나, 본격/고급문학으로 분류된 소설이 영화로 제작/개봉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 우리들이나 문학과 영화, 고급과 저급예술로 이분하는 감각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모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 <<무정>>의 밤' 행사에 검사와 피고만 있다면, 판사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것인가?
김정혁-내가 지금 마구 극장에서 오는 길인데 아츰도 만원 두 번재의 오후도 만원 세 번째의 이번도 「札止」를 하고 수백의 관객이 도로 도라갔어요. 대성황이어요. 20여년 동안 「無情」의 聲譽가 컷느니 만치 누구나 한번 볼려하는 듯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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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olya 2007/07/21 13:14

    오오옷~~흥미로운 글이어요...^^"이 때에 우리들은 『無情의 밤』을 여러서 영원히 예술상 존귀한 이 작품에 대하야 이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삼고저 함니다"라는 김동환의 축사가 무색하게스리 보여주는 우리 문인들의 '꼰대'근성...ㅋㅋ

  2. BlogIcon 2007/07/21 20:34

    오옷~ 열라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
    ㅋ 삼천리 그 글이 이렇게 재미있어지다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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