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무영탑>(1957)
현진건의 1938~1939년 동아일보 연재소설 <무영탑>을 원작으로 한 영화. EBS 방영판으로 보았는데, 영화 방영 전에 김영진의 해설을 보여주었다. 그의 해설에 따르면, 이 영화는 “서구 영화에 물들지 않은 1950년대 한국영화의 고유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 1950년대의 한국영화는 물론 서구영화의 스타일도 모르는 나로선 딱히 어떤 부분이 ‘고유’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설명대로 템포가 좀 늦고 연기도 거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한 마디로 다소 지루하다는)
원작을 훑어본 결과 영화나 소설 모두 아사달-아사녀의 설화를 많은 부분 수정하여 새로운 인물들의 연애구도로 바꾼, 대중성을 의식한 텍스트들이라고 보인다. 설화는 그림자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 실망한 아사녀가 자살하는 이야기로, 무영탑(석가탑)에 얽힌, 즉 예술품으로 소급되는 서사이며, 아사달-아사녀의 사랑이야기만이 중심이다. 반면 소설과 영화에서는 그러한 그림자못의 전설이 허구임이 뚜쟁이의 입을 통해 미리 폭로되고, 오히려 자신의 힘겨운 삶과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아사달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아사달의 모습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고, 아사달을 사랑하는 두 여성의 애정문제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구슬아기와 아사녀라는 두 여성의 ‘수난사’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진 반면, 영화는 원작에 비해 구슬아기의 비중이 커졌다. 영화에서는 아사녀의 수난사는 매우 간략하고 뜬금없게 다루어져서, 심하게는 그녀가 겪는 시련들이 잘 이해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아사녀를 노리는 아사녀 아버지의 제자들의 이야기나 그녀가 남편을 찾아 서라벌로 오는 길에 겪는 위험들, 그리고 그녀를 데려다가 좋은 옷과 밥을 준 뒤 어떤 대감에게 팔아버리려 한 뚜쟁이의 이야기 등이 너무 간단히 다루어졌다. 영화의, 아사녀를 흠모하던 팽개의 모략과 남편 소식을 듣고 쓰러진 아사녀에게 갑자기 입을 맞추는 장면은 생뚱맞고, 아사녀의 뚜쟁이의 관계도 이상하다.(과잉 친절을 보이는 뚜쟁이와 그 앞에서 고마워도 안하고 멍하게 있는 아사녀.)
반면에 구슬아기의, 아사달과 그녀를 흠모하는 ‘난봉꾼’ 금시중의 아들 한림학사, 그리고 그녀의 정혼자 경신이라는 세 남성 사이에서의 연애구도는 매우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말괄량이’ 같은 귀족 여성 구슬아기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으며, 경신의 젠틀함과 쿨함, 무용(武勇)의 뛰어남, 금시중 부자의 방탕하고 사악한 모습도 드러난다. 그에 비하면 구슬아기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사달의 매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그가 석가탑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지녔는지는, 기껏해야 중들이 모여 그의 밤낮 없는 작업의 열정을 얘기하는 도중에 잠깐 비칠 뿐이며, 그의 구슬아기와 아사녀에 대한 애정도 친절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수동적이고 ‘허수아비’같기까지 하다. 아사녀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나 물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사달에게 구슬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그저 멍한 모습으로 끝끝내 그의 능동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신상옥이 최은희라는 여배우의 매력에 너무 '풍덩' 빠져있었던 탓일까? 그러나 ‘얼큰이’ 최은희가 말괄량이에 귀여운 여성, 여러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구슬아기라는 역에 어울리는지도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갔다. 이 시대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기준이 지금과 달라서인지...최은희에게 너무 많은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허용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아사녀 한은진도 너무 심술 맞아 보이는 입매와 볼살이 순정파 아사녀 역을 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 영화에서 소설과 달라진 부분은 마지막 결말 부분. 소설에서는 구슬아기가 불에 뛰어들자, 이를 경신이 구해낸다. 소설 줄거리를 써놓은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구슬아기가 죽은 것이라는데, 죽은 것인지는 분명치는 않고, 거의 숨이 끊어질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경신에게 아사달을 찾는 헛소리를 하고, 이를 보며 경신은 그녀의 사랑에 대한 감탄과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아사달은 두 여자들의 비극을 겪은 뒤 탑에 그녀들의 모습을 새기는 내용이 소설에는 있으나 영화에선 그냥 물에 빠져 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 점에서 영화가 소설보다 더 아사달의 예술가로서의 면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보인다.
원작이 있는 영화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것은, 영화가 원작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는 느낌보다는, 원작을 참조해서 영화를 보라는 식의 불친절함이다. 영화에서는 잘 납득이 안가는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행동들이 종종 눈에 띄고, 그러한 것들은 원작을 읽어야만 이해가 된다. 이 영화도 그러한 축에 속했다. 물론 구슬아기의 이야기들에서는 그녀의 서사를 중심에 놓고자 하는 감독의 시선이 뚜렷이 드러나지만, 그 외의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원작을 참고하세요"라고 말하는 듯 충분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감독 역량의 한계인가, 아니면 원작 각색 영화의 운명인가?
여성의 수난사는 언제나 그대로다. 1930년대 후반의 이 소설에서도, 1950년대 후반의 이 영화에서도 여성들이 겪는 수난의 에피소드는 1900년대의 신소설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이 아사달-아사녀-구슬아기의 이야기에서 형식-영채-선형이라는 <무정>의 구도도 보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흥행에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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