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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for Drama/해외 드라마'에 해당되는 글 3

  1. 2009/05/17 의사는 그동안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미드<하우스>
  2. 2007/09/14 미국 의학 드라마의 계보도 (5)
  3. 2007/09/04 Gilmore Girls (4)

담석증때문에 보름 전쯤 담낭적출술을 받았다. 나름 전신마취도 하고 하는 '진짜' 수술이었지만 요즘의 의학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3박4일이면 퇴원할 수 있는 병이었는데, 나는 좀 특이한 상황때문에 9일만에 퇴원을 하게됐다. 이 특이한 상황이란  처음의 나를 담당한 진료과목이 '내과'였다가, '외과'로 트랜스퍼되었던 것. 처음엔 췌담관 내시경 조영술을 하면서 담도나 담낭에 있을 지 모르는 돌들을 찾아내고, 돌이 발견되면 그것을 제거하는 간단한 내과적 '시술'로 끝날 줄 알고 학기중에 겁없이 입원을 했었다. 그런데 내시경을 넣어 막상 몸 안을 보니, 담낭(쓸개)쪽에 돌이 너무 많아서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그래서 그 수술까지 받느라 입원이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담석증이라는 같은 증상에 대한 내과와 외과의 접근방식의 차이 같은 것을 그야말로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내과의들은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열심히 묻는 편이고, 매우 자주 나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한다. 검사도 진짜 여러번 한다. 간단한 피검사부터 엑스레이며 CT며...반면에 외과의는 교수뿐 아니라 레지던트, 인턴 조차도 정말 바람처럼 휙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며, 수술을 받은 후엔 내 상처나 몸을 쳐다봐 주지도 않아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 상처부위의 드레싱 한번도 안해주고 퇴원시키더라. 퇴원 후 하루 이틀 뒤쯤 동네 일반외과에 가서 하면 된다면서. 물론 기초적인 내 바이탈 사인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시술' 수준인 내시경 한번을 받으려고 시술 전날에 수차례 검사를 하고, 시술 다음날에 다시 그 검사를 거의 재탕으로 다 하는 내과와 비교하면 너무 낯설었다. 나는 수술한 다음 날 '근데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무슨 검사같은 건 안 해요?'라고 담당의에게 물었다가 '네? 무슨 검사를 또 하라구요?'라는 대답을 듣고 한참 무안해지고 말았다.  

 

나는 왜 외과의들이 저런 태도를 취할까를 생각했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런 유추가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우리같은 '글쟁이'들은 논문 한편, 아니 이런 블로그에 낙서 한 바닥만 해도, 제가 쓴 글을 보고 또 보며 고칠 데 없나 확인한다. 더이상 고칠 수 없는 마감 때까지 어딘가에는 실수나 오탈자가 있을 것 같아 쉽게 자기 글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근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몸에 구멍을 내서, 웬만한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 장기 하나를 떼어 버렸는데, 그 과정에 뭔가 실수나 이상이 있지 않을까를 저렇게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 대목에서 떠오른 것이 그동안 내가 봐왔던 수많은 의학드라마들이다. 대부분의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은 외과의이다. 흉부외과이건 신경외과이건 소화기외과이건 간에, '메스! 썩션!'따위를 외치며 피를 보여주고 꿈틀대는 장기들을 만져대는 외과의들의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수술과정이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상정하는 의학의 '본령'(?)이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보며 의학의 힘을 경외시하곤 해왔다. 반면에 내과의는 보통 여성 인물들이 맡으며, 그들의 역할은 외과의에 비해 부수적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보살핌'의 '포즈'는 경외시할 대상까지는 되지 못한다.

그런데 미국드라마 <하우스>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그려져 왔던 내과와 외과 사이의 이러한 '계급'을 완전히 전도시켰다. <하우스>에서 외과는 내과의인 하우스와 그의 팀원들이 밝혀 낸 환자의 병을 수술로 고쳐주기만 하면(?) 되는 '따까리' 신세가 된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로부터 병인을 진단해 내는 것은 모조리 내과의, 하우스의 몫이다.

 이처럼 <하우스>는  의학, 하면 외과를 떠올리게 하던 기존의 의학드라마들의 공식을 보란듯이 깨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 왜 그동안의 의학드라마들은 굳이 외과만을 다루어왔을까? 실제로는 3D과로 취급되어 외과 전공의의 숫자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그 이유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비주얼'일 것이다. 수술을 해야 드라마에 장면이 살아난다. 그렇다고 성기 등을 노출해야 하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수술을 다루긴 어렵겠고, '메스-썩션'의 메아리가 리듬감있게 울려퍼지며 꿈틀대는 심장, 시뻘건 장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줘'가며 뭔가 제대로 인간의 몸을 고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로는 외과만한 진료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외과 드라마들이 어려운 의학용어를 쏼라쏼라해도 보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드라마들이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 말인지 못알아 들어도 수술 장면을 보면서 그 긴박한 상황과 수술의 극적 성공이나 실패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의학드라마들은 아마도 외과 쪽의 이야기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하얀거탑>처럼 간담췌의 권위자라거나 <카인과 아벨>처럼 뇌신경외과 전문의라거나...좀더 외과 내부의 세부전공을 다루긴 하더라도 외과를 벗어나는 것은 시각매체인 드라마나 영화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나를 수술한 외과의들이 보였던 '자신감'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내 몸을 직접 보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문제가 있는 장기를 말끔히 떼어냈으니, 더 이상 궁금할 게 없는 것. 내과의들처럼 직접 보지 않고 여러 검사결과를 가지고 추정을 해야하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직접 보여 줄 것이 별로 없는 내과를 중심에 두고 다루었으니, <하우스>는 나름 의학드라마로서는 새로울 뿐 아니라 위험한 시도를 감행한 셈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하우스>는 '마니아' 층을 만들 수는 있어도 대중적 인기를 끌기는 어려운 드라마이다. 너무 말이 많고, 그들의 끊임없는 의학적 토론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반 이상은 이해도 안된다. 그럼에도 미드팬들이나 미국의 시청자들이 <하우스>를 즐겨보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사생활의 엿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우스>의 중심 이야기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한 사람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병원에 실려온다. 환자는 일부러이건, 혹은 혼수 상태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어서건 간에 자신이 이러한 병에 걸리게 된 원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환자의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하우스 박사의 팀은 새롭게 드러나는 증상들에 따라 그때 그때 새로운 처치방법을 택하지만, 처음엔 쉽게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몇몇의 증세를 단서로 해서, 그리고 그 환자의 사생활(가족, 거주환경, 생활패턴, 성격, 과거의 병력, 가족력 등)을 파악하게 되면서 환자의 병명과 병인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에 따라 처치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병을 회복한 환자는 목숨을 구제받은 대가로 자신의 감춰뒀던 사생활, 비밀을 고해성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부분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알아듣지도 못할 의학용어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가며 <하우스>를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9살짜리 비만의 꼬마 여자아이가 병원에 심장마비로 실려 들어오자 그 아이가 어린아이가  엄마 몰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거나, 어떤 대통령 후보가 어렸을 적 간질을 앓았고 그때문에 간질 치료제를 먹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게 만든다거나, 젊은 청년이 부모님 몰래 제3세계국가에 여행을 갔다가 성병에 걸려온다거나...하는,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그들의 몸과 증세를 통해 파헤쳐 까발기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뭔 수치가 무슨 호르몬의 이상으로 높아졌는지, 거기에 뭐뭐 약을 쓰면 증세가 호전되는데 대신에 무슨 부작용이 있는지 따위의 말은 한 마디도 못알아 들어도 상관이 없다.

 외과가 중심이 되는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는, 병에 걸린 환자가 '왜?' 그 병에 걸렸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아니, 외과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병자가 어떠한 생활, 식습관, 복용력 등을 가졌는지는 관심이 없다.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 그의 어떤 생활습관때문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주인공이 위암에 걸렸다고, 그가 짜게 먹어서,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뭐뭐뭐 약을 장기 복용해서 위암에 걸렸다...식의 말을 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병에 걸리게 된 그 사람의 '과거'는 보통 드라마에서 하나도 안 중요하다. 그냥 병에 걸린 것, 그래서 그 이후 병마와 싸워야 하는 것 자체만이 중요하다. 외과의들은 그런 병을 수술로서 치료해주는 것이고.

 그런데 <하우스>의 의사들은 '어떻게 병을 치료할 것인가?'의 답을 보통의 의학드라마들이 하는 방식의, 'A증상에는 A~의 치료법을'과 같은 병-치료(수술)법의 대응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A증세는 a라는 원인때문이다'라는 병의 원인-병의 대응표를 갖고 있다. 그들은 병의 치료법은 증세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통해 판단해야 정확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원인을 찾기 위해 병자의 '뒷조사'를 열심히 해댄다. 시청자들은 이 뒷조사가 재미있어서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이다.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을 오갈때 나를 보던 사람들의 '젊은 처자가 어쩌다, 뭔 병에 걸려서?'하는 동정과 동시의 호기심 어린 눈빛들처럼.

 어쨌든, 병, 증상의 원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으며, 몸의 모든 부위는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하우스>는 독특하고 또 의미있는 의학드라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우스>의 서사는 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죄의식이나 공포를 심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못마땅하다. 원인을 열심히 캐고, 그 원인들이 대부분 환자 본인의 사생활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이 뭔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이런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과의와 외과의 앞에서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 것도 바로 이 <하우스> 때문이었다. 외과의 앞에서의 나는 거의 아무 것도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과의 앞에서 나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쓸데없이) 솔직했다. 나의 생활습관이나 약물복용의 경험 등에 대해서 너무 열심히 털어놨다. 그러지 않으면 <하우스>에 등장하던 수많은 환자들처럼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른단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겪은 병원과 의사, 의학이란 <하우스>같은 정도의 내 뒷조사를 요구하진 않았다. 내가 40대 이상의 비만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담석증에 걸린 이유를 알기 위해 실컷 내 사생활(?)을 얘기했지만 원인 규명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나의 담당 내과의는 '원인은 정확하게 모릅니다. 뭐 그게 약간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죠' 식의 애매한 답변 뿐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담당의가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그게 실제 현재의 의학의 수준이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하우스>처럼 병의 원인을 명쾌하게 밝히고 단정적으로 그 병에 대해 진단해 내는 일은 현실에선 아직 쉽지 않은(어쩌면 위험한기도 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몸을 통해 한 인간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병에 걸린 환자에게 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시청자들을 매혹하기 위한 과도한 설정일 뿐. 인체는 여전히 신비롭고 너무나 복잡하며, 현실 속의 의사들은 대체로 이 인간의 몸 앞에 겸손하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고 살아서 그런 병에 걸린 거라며 비난(?)하는 일은, '독설가 닥터 하우스'가 드라마 속에서나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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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해 남짓 살아오면서 생물, 화학엔 전혀 관심도 재능도 보이지 못했다. 노란 싹수와도 같은 관심이 잠시 부끄럽게 고개를 내민 적도 있었으나 그 관심은 관심에 합당한 점수로 보상/응답되지 못했다. (호르몬의 체계는 아름다웠지만, 어느 호르몬의 부작용이 무엇인지는 외우는 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이거나, 번지수 잘못 찾은 사랑이 바로 순수과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니 이 알량한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 대학에 올라와서 과학탐구영역 한뭉치에 해당하는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건 해방이었다. 과정이 가상해도 답이 틀리면 틀리고마는 과목과 거리가 먼, 썰을 풀 수 있는 과목을 전공으로 삼을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절대 정답이 있을 학문에 대한 목마름이 참 커졌다. 스도쿠를 하다가 수학을 잘 할 것이란 착각과도 같은 그런 심리일 것. 그럴 때 찾아온 것이 미국판 의학 드라마였다. 미국판 의학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병리학의 기초는 이해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무식한 인문대생에게 심어주는 놀라운 교육 효과를 갖고 있다. 특히 House는 하우스 선생님과 함께하는 CSI의 병원판이 아닐까 싶다. 척척박사 하우스 박사님과 함께하는 병리학 시간. 짜잔 오늘은 우리의 하우스 박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하우스 박사님께 바로 직행하기 전에 내가 사랑해왔던 미국 의학드라마의 맥을 따라가보자. (사실 열심히 본 게 ER, Grey's Anatomy, House이므로 요 세 가지 드라마만 이야기 할 것이다. General Hospital을 못 본 게 심히 안타까운.)

 
ER
(199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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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병아리 미드 팬에게 처음 찾아온 것은 ER이었다. ER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공중파를 탔던 것 같은데, 어렴풋이 보다 말다 했고, 굳이 TV에서 사람 죽는 응급실을 봐야겠냐는 아버지의 역정에 지레 겁먹고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후 다시 다른 경로로 ER을 시즌 4까지 보면서, 병리학은 몰라도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하는 검사 용어인Chem 7, 삽관intubation이란 말을 알아듣는 나름 기특한 경지에 올라섰다. (호르몬 종류와 담당 기관도 못 외우는 주제에) 사실 ER은 13년이란 방영 햇수만큼이나 끈질긴 권위를 가진 의학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긴박한 스피드 (항상 ER의 상황은 응급실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포착한다! 응급실이 늘상 그렇게 일분 일초를 다투는 게 아닐 진대.)와 이글이글한 동료애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연애 작대기로 가득 찬 공간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펼쳐보인 게 이 드라마가 아닐까. (사실 이 드라마와 함께 General Hospital의 장구한 역사와 수용자층, 그리고 결말도 이야기해봐야 겠는데, 워낙에 이 드라마엔 문외한인지라 잠시 스킵) ER의 배경이 되는 병원은 늘 부족한 재정과 의료진에 시달리고, 그곳에 근무하는 의사도 카터 말고는 부요한 사람이 없는 참으로 보기 드문 병원이다. 누군가는 숨기고 싶은 못난이 가족이나 밝히고 싶지 않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고, 또 누군가는 갚아야 할 학비 융자금이 산적해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곧 무너질 것 같은 결혼생활을 간신히 지탱해 간다. 의사는 부자/곧 부자(would-be-rich)라는 90년대 한국의 일반상식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는 드라마였다. 아~의사도 저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안겨준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의 팍팍한 삶은 닥터 그린이 늘상 통근할 때 이용하는 시카고의 을씨년스러운 지하철역 이미지로 잘 드러난다.  의사 선생님이 아우디도 아니고, 비엠더블유도 아니고 지하철을 타셨다. 그리고 공격적인 시카고의 겨울 날씨가 이들의 삶의 비극성을 한층 고조시킬 때도 있다. (폭설에 사고가 나서 안 그래도 손 달리는 병원이 급물자부족, 급의사부족을 경험하곤 하니까.) 그리고 이 병원에 찾아드는 환자층은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 부모에게 학대 받는 아이, 가난해서 문제 많은 미국 의료보험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어느 시즌에선가 루시 리우가 무명시절 영어를 잘 못하는 이민자로 나와서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신인 시절엔 다 어려운 게다) 어쨌든 이 징글징글하게 가난한 병원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기 시작했는지, 2005년부터 방영된 Grey's Anatomy는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워진다.

Grey's Anatomy
(2005-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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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타이틀롤을 맡은 닥터 그레이가 인턴으로 일하게 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은 ER이 위치한 팍팍한 시카고의 느낌과는 대비되는 좀더 부드러운 시애틀에 위치한다. 잠못 이루는 도시라지 않던가. 병원은 예산이 아주 넉넉해보이는 사립병원이다. 이곳에서 치프들은 과장 자리를 놓고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외교적으로 경쟁을 벌이고, 그걸 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과장은 다른 병원에서 다크 호스를 데려다 앉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주 관심은 과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정치게임도, 치유의 과정에도 있지 않다.

ER에 비하면 아주 호사스런 병원에서 어떻게 우리 젊은 인턴들이 연애를 하시는지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다. 아주 경쟁적이고, 아주 똑똑한 20대 중후반의 인턴들은 그들의 의학적 지식을 시청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그들이 똑똑한 건 알고 들어간다. (All that matters in this drama seems to me is who f****ed whom.)  내 개인 취향으로 볼 때, 닥터 오말리를 제외하면 모두 선남선녀 핫걸/핫보이가 드글드글 모인 인턴집합소이다. 누구는 병원에 들어와 완전 똑똑한 상사 레지와 자고 보니 임신이되고, 또 누구는 원나잇 스탠드 상대였는데 알고보니 담당 레지였고, 더 알고보니 그는 이혼도 안 한 유부남이었다는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또 처절하게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힘들게 의사가 되어 들어온 금발머리 의사는 환자와 사랑에 빠지나 그 환자가 죽어버려 실의에 빠진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마음껏 빠진 뒤, 뒷감당을 못해서 마구 괴로워하는 20대의 피곤함을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남자의사 앞에 Mac-이란 접두사를 붙여 별명을 짓는 새로운 작명법을 선보이기도 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MacDreamy, MacSteamy 등이 있겠다.) 시즌3은 샌드라 오의 결혼 참사(marriage-fiasco)로 막을 내려서, 성질 급한 팬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으나 무심하게도 아직 시즌4는 방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이상 많은 연애전선과 Grey가 매 에피소드 말미에 붙여주는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연애에 대한 어줍잖지만 귀여운, 때론 감동을 주는 조언들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다. 이제 하우스 박사님의 세계로)

House MD
(2006-Present)

잘은 모르지만 House는 이런 의학드라마의 지난한 역사과 각축장에서 어떻게 '새로운'면모를 보여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드라마다. (고백: 아직 시즌1 15화까지밖에 못 보았음.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려구횻)

프린스턴의 Teaching hospital이란 점에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의 연속선상(병원은 깔끔하고 예싼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 있지만, 연애구도를 최소화 하려고 애썼다. 하우스가 이끄는 진단의학과 팀을 보면 하우스를 포함한 남자의사 셋, 여자의사 하나로 짜여있다. 닥터 캐머론(제니퍼 모리슨 역)이 유일한 여의사지만, 10화까지는 어떤 연애의 싹도 보이지 않았다. Grey's Anatomy였다면 10화에 이를 동안 여러 경우의 수를 보여줬을 텐데 말이다. 물론 13화인가에서 닥터 캐머론이 단도직입적으로 하우스 박사님께 자신의 마음을 어렵사리 고백하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는" 이 괴짜 박사님은 어린 부하 의사에게 난 안 좋아해! 하고 말을 자른다. (눈빛은 거짓말을 한다만. 향후 에피소드 전개에 따라 이 이야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둘째, 앞서 의학드라마의 CSI 판이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 에피소드에 새로운 의학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House는 굳이 매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지 않아도 크게 방해받지 않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한 회 한회가 완결성을 가진 독립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의사 양반들이 흰 가운을 벗어놓고 환자의 병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환자의 집으로, 집 주변으로 마구 찾아 다닌다. 무단 잠입도 불사하며 병인을 찾는 그들의 노고는 CSI 수사팀에 맞먹는다. 셋째, 팀단위로 움직이긴 하지만, 타이틀 롤인 하우스 박사님의 순발력과 집중력이 치료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다리의 고통을 잊으려고 먹는 진통제에 중독 된 하우스 박사님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자신의 치료 이유를 설명하는 것엔 인색하지만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남겨둘 뛰어난 의사로 그려진다. (지팡이와 약물 중독이란 점은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혼자 추측해 봄) 게다가 이 의사 선생님은 뛰어난 인문/예술 소양을 갖춰서 단테의 싯구를 예사로 읊고, 피아노 연주에 능하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수염은 덥수룩하고, 일견 왜소해보이는 하우스 박사님이 그 파란 눈동자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젊은 닥터 캐머론이 반할 만도 하지.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이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병인을 분석하고 해결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본 의학 드라마들이 그저 장소만 병원을 빌어 권력을 향한 정치, 경쟁, 혹은 동료애나 사랑,인생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병원'드라마에 그쳤다면 House는 의사가 병원에서 업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근사하고 세련되게 보여주는 진정한 '의학' 드라마이다. 증상을 보고, 여러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물론 이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딘까 질척거리고 어리버리한 의사들이 벌이는 연애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2007년 시청자에게 새로운 맛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House의 미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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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왕 이렇게 된 것 한국 병원드라마의 계보도도 그려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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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4 10:45

    오옷 잼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의학드라마 보다보면 의대를 갈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더라고요. 진짜 최근에 진지하게 의대친구에게 물어봤는데, 절대 하지말라고, 나는 니 삶이 제일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남들 삶이 부러워뵈는 건지. 의대애들은 인문학하면 고상하게 사는 줄 알아요 참.. 뭐, ER보다는 '고상'하려나... 고상이라... ㅡ.ㅡ;

  2. 서구의학 2007/09/14 19:23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그레이 아나토미> 밖에는 없지만 덕분에 다른 미국의 의학드라마에 대해서도 좀 알게됐네요..궁금해지기도 하고..시간날때 봐야겠어요.^^

    그런데요, 서구의학이라는 것...근대과학이라는 것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회의'가 많이 들어서요...'증상을 보고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물론 저도 병원에서 '연애질'만 하는 드라마들, 싫어합니다-그게 모두 '의학'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근대의 인간, 또는 서구의학의 '오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도 인간이라 실수 많이 하고요, 증상의 원인이라는 게 굉장히 복합적이어서 의학적 접근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요..(그게 묘하게 미국인들의 '오만'과 겹쳐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위에 말했듯, 연애질로 점점 흘러가는 것에는 저 역시 불만이 많았습니다만, <그레이 아나토미>에도 미덕은 있지 않았나 생각했지요. 그곳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요. 주인공들은 절대 안죽지만...삶이란, 인간이란, 인생이란...꼭 의학지식,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매 주제별로 병원내의 환자/의학관련 에피소드와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의 접합부분들을 통해 보여준 것. 그런 점은 꽤 흥미로웠거든요.

  3. BlogIcon 하이腦 2007/09/18 15:19

    /기인/ 난 가고싶어도 의대 쪽 재능은 전혀 없기 때문에 못 가. ㅎㅎ 근데 내가 주변 사람을 보건데 의사들만큼 자기 연민이 강한 직업인도 없는 것 같음. 꽤 괜찮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면서도 스스로를 측은히 여기는...ㅋㅋ 차라리 하우스 박사님처럼 오만한 게 더 좋음. 대놓고 똑똑한 사람.

    /서구의학님/ 말씀하신 것처럼 대놓고 '오만한' 것이 하우스의 강점이예요. :) 깔끔하게 오만한, 냉철한 하우스식 진단법/치료법. 참, 저도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아주 좋아해요!! ^^ 연애질에 질릴 만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중독성이 있어서요. 각 드라마마다 따로 글을 쓰고싶을 정도로 저 세 병원드라마 각각의 매력이 있죠. <그레이즈 아나토미>는 따뜻하지요..서로에게 연민을 갖는.

  4. 2007/09/18 20:20

    응~ 근데 진짜 의사들도 불쌍하기는 하죠. 그레이즈 아나토미 보기 시작했는데, 제가 심리검사에서 '여성적' '심리적'이라고 나온 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프리즌 브레이크나 24시 같은거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서사만 있고..
    저는 심리묘사가 좋은 거 같아요 :)

    근데 실제 의학도들 자신도 서구의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신체란 사회 구조와 같이 중층결정이 되 있어서, 하나의 병도 실제 그 원인을 알아서 치료한다기보다는 대증요법식이 많죠.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증상이 날때 이런 치료를 하니까 먹혔더라 정도. 개연성 정도.. 백인-남성중심성도 문제가 있고..
    등등이 이게 서구의학의 현단계적 인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의학드라마는 이런 경향보다는 누나말대로 '탐정식-근대과학적 인식'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ㅎㅎ

    ㅎ 아나토미 끝나면 하우스도 볼께용 :) 이런 드라마 소개 좋아요. ㅋㅋ
    누나 땜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한두개가 아니네요 룰루~ ^^*

  5. BlogIcon heine 2007/09/21 11:48

    hehe I'm so flattered, 긴. 근데 시즌1까지 보고 나니까 몇 가지 수정해야 할 이야기도 있어. 역시 love line 없인 드라마의 감동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시즌1 마지막 두 회에선 하우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져.

Gilmore Girls

2007/09/04 00:19 | Posted by 하이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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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어씨네 여자들과 나이 먹어가기
<길모어 걸즈/Gilmore Girls>가 시즌 7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드라마의 한 시즌은 얼추 한 해가 되니, 일곱 해가 지난 셈이다. 여러 해 간격을 두고 연작이 이어지는 영화 시리즈를 봐도, 영화를 본 시기를 기준으로 듬성듬성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연속으로 몇 해를 두고 이어지는 드라마는 등장인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특권을 제공한다. <길모어 걸즈>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갔던 시기에 처음 만났던 드라마였던 만큼, 이 드라마의 마지막을 보는 느낌은 마치 정든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주인공 로리 길모어가 열 여섯에서 스물 둘이 되는 사이에, 나 역시 여섯 살을 더 먹었고.  시즌 7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레인과 로리가 현관 의자에 앉아 흘러간 옛시절을 돌아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목요일 밤 <길모어 걸즈>를 보기 위해 결국 기숙사에서 티비를 대여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2001년부터 2007년 사이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어찌 됐건 새로운 매체의 발달로 한국에서 시즌 1부터 7까지 꼼꼼하게 챙겨볼 수 있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온스타일이 길모어 걸즈를 해주다가 시즌 4인가 부터 불규칙하게 방영 편성을 짜서 그걸 찾아 보느라 무지 애먹었던 기억이 나는고나. (2007년 9월 현재 온스타일에서 <시즌7>을 방영중이다.) 대학원 숙제를 쌓아놓고도, 길모어걸즈 하는 시간에 티비 앞에 앉아있었으니. 크흣.


길모어 걸즈의 매력: 미혼모에 대한 새로운 정의
흔히 가족물로 구분될 수 있는 이 드
라마의 미덕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암울하게 그려내는 미혼모 이야기를 유별나게 밝게 그려냈다는 점일 수 있다. 시즌 1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상당히 우울할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게 썼구나!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타즈 할로우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 열 여섯 살 차이나는 모녀간의 아기자기한 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정말 귀여운 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놀라운 입담 (정말 위트있는 대사가 압권! 대사의 여왕!) 똑똑한 세상 비평, 그리고 은근히 재밌는 프렙스쿨, 예일 대학교 이야기 (이건 현실감이 떨어지지만,그래도 재밌는 드라마 요소) 등 이야기는 특별히 큰 사건없이 흘러가지만, 그래서 더 옆집 사람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재밌다. (of course I have to admit that season 6 was the major pitfall--which was the most tedious episode ever in Gilmore Girls!)

Socally Liberal, Fically Conservative
열여섯 살에 미혼모가 되어 사립학교(prep school)을 중퇴해야 했던 로렐라이는 보험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아버지의 집을 나와서, 스타즈 할로우에 정착한다. 아이의 아빠가 되는 사람도 자신과 같은 사립학교의 학생이고, 양가 부모 모두 "차라리 결혼을 해!"하고 주선을 하지만 "독립적"인 로렐라이는 혼자 힘으로 스타즈 할로우의 헛간 한 칸을 빌려 아이를 낳고, 서빙과 같은 일을 통해 결국 자기만의 inn의 사장님이 되신다. 여기까진 어떻게 미국 상류계를 거부하고 탈출한 자칭 타칭 민주당 지지자의 자수성가기였다면, 그녀가 열여섯 살에 낳은 딸 로리가 열여섯살이 되어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프렙 스쿨을 다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즌1의 시작점이 여기다. 로렐라이의 과거는 일곱 시즌에 걸쳐 천천히 회상되고, 회고되고, 반복되어 설명된다.) 여인숙(inn)의 주인으로서 (사실 굉장히 예쁜 모텔인데, 한국말 번역어가 마땅히 안 떠오른다.) 잘 살던 로렐라이 입장에서 딸의 비싼 학비를 댈 수 없던 게 문제였다. 그간 연을 끊고 살던자신의 부모에게 결국 돈을 빌리기로 하고, 그들과 연락을 시작한다. 학비 지원에 대한 거래로 매주 금요일 formal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앞서 말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로리와 로렐라이의 유머와 적당한 조롱에는 약간 수상쩍고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 드라마가 전개 되면서 이들의 윤택한 유머와 여유의 이면엔,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조롱당하고 상처 받는 공화당 지지자로 추정되는 Gilmore씨의 돈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려고 시즌 5인가 6에서는 로리의 아버지인 크리스토퍼가 유산을 상속받아서, 딸 로리의 예일 대학교 등록금을 다 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크리스토퍼의 할머니 돈이나 길모어 아저씨의 돈이나 다 거기서 거기가 되어버린다. 소설 <Prep>에서 이런 사립학교를 다니는 한 남학생이 스스로를 "사회적으론 진보적이고, 재정적인 면에선 보수적"(Socially liberal, fiscally conservative)라고 일컫는 것처럼, 길모어 가문의 2-3대 여자들은 사회적으론 적당히 진보적이고, 재정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선택을 일삼는다. 뭐 재밌게 봐놓고 이제 와서 문제 삼는다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Rory's Bookshelf
사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된 건 로리가 제법 영리한 독서 목록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 외에도 워낙에 책에 빠져지내는 아이다보니, 그런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많았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로리가 읽는 책 리스트를 정리해서 올려놓은 것을 보고, 사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사실 이 드라마를 통해 난 Dorothy Parker를 사서 읽었기 때문에 고맙기도 한 책이다. 보고 즐기기에 재밌으면서도, 적당한 지적 만족감을 주는 교육적 기능도 갖고 있는 드라마다. 한국에서 이만큼 위트있는 대사를 가진 드라마를 찾기 힘들었던 만큼, 이 드라마는 꼭 소장해놓고 두고 두고 보고싶은 드라마다. 물론, 이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은 당연 재밌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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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아... 2007/09/04 08:50

    이 드라마 함 보고싶군요~비교하긴 어렵지만, 김수현 드라마도 약간씩의 새로움이 있으면서도 늘 꼭 '재정적으로는 보수적'입니다. 꼭 부자, 재벌이 등장하죠. <불꽃>의 차인표네 집안, <내남자의 여자>의 김상중네 집안, <부모님 전상서>의 허준호네 집안, <사랑과 야망>의 전노민네 집안 등... 물론 그들이 모든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고, 다른 드라마들의 천편일률적인 재벌들과는 다른 '살아있는' 인물들로 그들의 삶도 그린다는 점에서 다르지만요.

    • BlogIcon 하이腦 2007/09/04 15:58

      아마 재정적으로까지 진보적이기엔 드라마 작가도 드라마속 인물도 피곤한가 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대사 특성을 혹자는 김수현의 것에 비교하지만, 김수현 드라마의 통속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여서 전 그 비교는 귀담아 듣진 않았어요. 김수현 드라마는 꼭 회장님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 부분은 재밌는데, 그런 회장님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도리어 회장님네 가정을 꽤 괜찮게 그려내는 편이라는 게 <길모어 걸즈>와의 차이 같네요.

  2. 열심히 보다가 2007/09/04 15:48

    모녀의 수다가 재밌어서 한 때 열심히 보던 드라마였지요. 한국인 가정도 나와서 나름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었는데, 딸한테 미친듯이 집착하고 보수적인 굉장히 스테레오 타입화된 동양 가족으로 묘사되서 살짝 기분 나쁘더군요. 게다가 너무 똘똘하고 이쁜 애들이 자꾸 나오니 (로리 똘똘한 것은 그렇다쳐도, 루크 딸까지 천재스런 아이가 나오다니...) 위화감도 느껴지고, 돈 많은 것두 그렇구. 한때 중독되어서 보다가 점차 투덜거리며 안 보았는데 끝났군요. 결말이 우찌되었는지 궁금스럽슴다.

    • BlogIcon 하이腦 2007/09/04 15:56

      정말 모녀의 관계 설정은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인데, 갈수록 구린 요소들이 그 강점을 감춰버리죠. <열심히 보다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인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좀 심해서 그게 굉장히 거슬리죠. Lane네 가족들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어딘가 cult 풍이 풍기는...으로 묘사되는 게 괴롭죠. 결말은 나름 열린 결말이긴 한데요. 시즌 6에서 끝맺을 걸 너무 오래 끌어서 지지부진한 느낌도 있었죠. 시즌 6-7에서 로리가 사귀는 로건이란 캐릭터도 사실 더 이야기를 했어야 하긴 하는데...로리가 로건의 청혼을 거절하는 게 나름 liberal한 톤을 유지하려고 앴느 흔적이라고 저는 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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