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작가가 근래 읽은 작품 중에서 이 소설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래서 읽게 됐는데, 과연 <고래>에 필적할 만했고 그 작가가 좋아할만했다. 2007년 미국은 도미니카 역사와 ‘현대의-판타지’를 가득 담은 이 소설에 퓰리처상을 비롯한 거의 모든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여했다. 작품은 한국에서도 목하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모양이다. 이런 문학은 사랑할만하다. 여전히 ‘문학의 힘’ 같은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번역소설인데도 소설의 문장들은 그야말로 ‘즐겁게’ 읽힌다.
> 문학적 글로벌리즘 : 오스카의 면모가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내듯, 문화적 글로벌리즘 위에 이 소설의 서사가 펼쳐져 있어 놀랍다. 오스카는 중남미 ‘지역’ 고유의 문제(미국과의 투쟁, 인종 문제, 중남미 나라끼리의 독특한 관계)를 담지한 ‘민족’(도미니카)의 인간이면서, 동시에 미국(과 제1세계)의 온갖 현대적 대중문화와 문학(특히 SF를 필두로 한 장르소설!) 및 또한 일본 문화(아니메와 오타쿠 등)가 만들어낸 세계적이며 현대적인 인간이다.
도미니카는 (우리에게는 거의 비가시적일만큼) 불가해한 인종적-문화적 특수성을 가진 고유의 실체인 듯하지만, 기실 이미 그 속에서의 삶은 현대와 자본주의,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 속에 있다. (아마도 ‘근대’는 그 이전부터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신세계’가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이래. 그것이 세계문학 및 세계대중문화의 최초의 성립 요건이기도 하다.)
오타쿠이며 숫총각인, 장르와 게임 마니아이자 ‘뚱땡이’인 젊은 남자들은 목하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지 않은가? (오히려 가장 다른 것은 원래적인 도미니칸과 한국인들이다.)이런 존재를 통해 글로벌-하이퍼-모더니티는 ‘아래로부터’(?) 구현된다.
> 비유와 문체 : ‘언어적-예술적인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고, 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은 문장이다. 한국말로도 잘 옮겨진 이 문장은 우리가 말하는 좋은 의미의 ‘구라빨’(세계와 ‘시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권력에 대한 지극히 풍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내 주변에서 이런 식의 문장 구사력을 가진 이는 딱 두 사람인데, <고래>의 작가와 <현대사 인물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쓴 작가이다. 전자는 새 장편소설 출간을 앞두고 분투중이라 하고, 후자는 근자에 생계와 프로야구 때문에 글을 잘 못 쓰고 있다.
(그외 :
* 문체/비유의 글로벌리즘 : ‘백만 년만에 만난’ 등의.
* 오늘날 한국소설의 문체 : <완득이> 식 문체가 한동안 유행할 듯. 이 문장체는 과연 미덕이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갈까?)
> 모든 위대하고 중요한 문학이 그러하듯, ‘역사’로부터 <오스카>의 서사는 왔다. 다시 말하면, 시간(역사)에 관한 사유가 이 소설의 스케일이다. <고래>도 <백년 동안의 고독> 등도 그랬듯, 역사에 관한 가장 독특한 방식의 해석과 전유가 소설의 특징이다. 이 소설에 있어 그것은 중남미사+도미니카사이다. 그것은 한편에는 중남미식 군사독재(소설의 허두에 ‘푸쿠’라 칭해지는)와 CIA의 음모,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쿠바혁명과 체게바라와 고난에 찬 민중의 삶이 대칭을 이뤄온 그 역사이다. 또한 그것은 ‘미국으로의-디아스포라’사(史)이다.
‘미국으로의’ 디아스포라는 19세기 이래, 미국을 꼭지점으로 한 세계적 모순과 그에 입각한 문화적-상상력의 원천 그 자체이다. 이탈리아계는 <대부> 시리즈와 마피아를, 유태인과 아일랜드계는 미국의 지배력 자체(의 일부)를, 중국계는 미국의 아시아 표상과 차이나타운으로 요약되는 온갖 것을, 일본계는 재패니메이션과 자동차를... 아마도 이 소설은 지금 당장의 미국에게 중요했으리라. 다양한 라티노들이 미국의 ‘하부’를 잠식하게 됐으니까.
글로벌-하이퍼-모더니티는 물론 ‘미국’을 무대로 하여 ‘영어’로 씌어진 것에 의해 펼쳐짐으로써 완수된다.(<고래>가 <오스카 와오>보다 못할 게 뭐가 있나? 하기는 <고래>도 작년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이는 또다른 ‘제3세계’ 소재의 작품인 <슬럼 독 밀리어네어>의 경우와 비교할만하다. 인도의 뭄바이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고 영국 감독이 만든(영어와 인도어가 반씩 나오는) 이 작품의 젊은 주인공은 또 다른 오스카이다. ‘퀴즈쇼’의 패자(覇者)가 되는 그는, 제3세계 가운데에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자라난, 비참한 ‘운명’(카스트의 질서나 ‘세계사적’ ‘빈곤’이 한 명의 개인에게 부여하는 운명)의 담지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의 ‘현업’은 휴대폰 회사 텔레마케터이다. 그는 텔레마케팅용 컴으로 형과 연인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찾아낸다.
이 작품도 ‘아카데미’를 비롯해서 영화상을 다 휩쓸었다. 오바마 전후(前後)의 미국, 또는 ‘부시 이후’의 미국의 문화담당자들은 제3세계와 ‘유색인’들에 대해 뭔가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 제3세계인들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 미국에서 성공한 도미니칸의 상징일 A.로드.
야구는 이번 WBC에서 잘 나타난것처럼 미국을 중심(정점)으로 한
환태평양+카리비안 대중문화의 중대한 매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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