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행복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허진호 감독은 남녀간의 사랑이 시작되고 깨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순간들을 포착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데뷔작이었던 <팔월의 크리스마스>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남자와 너무도 건강하고 해맑은 여자 사이에 호감이 연애 직전까지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다뤘다. 미래가 없는 남자는 여자를 일정한 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남자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여자는 그의 태도가 원망스럽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 끝을 예감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사이의 마음 아픈 관계는 이후 그의 작품에서 계속 변주되는 모티프이다. <봄날은 간다>의 여주인공인 은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상우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없었지만, 마음마저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돌아왔다 떠나기를 반복한다. 상우는 은수와의 이별이 한번 두번 쌓여갈수록 마음속의 미련들을 조금씩 털어내고, 결국 그들의 사랑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덧없는 ‘봄날’처럼 아스라히 사라져간다. 각자 서로의 배우자들이 저지른 외도 때문에 만나게 되었던 <외출>의 두 주인공들의 관계는 이미 여러 한계들로 답답하게 막힌 출발선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예감하면서도 따듯한 봄날에 갑작스럽게 내린 눈(April snow-외출의 영어 제목)같은 감정의 폭풍 속에서 잠시 길을 잃는다.



그의 새 영화 <행복>의 모든 이야기는 영화의 첫 씬에서 영수(황정민)가 틀어놓은 라디오  DJ 멘트 안에 다 담겨있다. ‘처음 만난 날의 설레임으로 사랑한다면, 첫 출근하는 각오로 일을 한다면, 병이 나은 날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그렇다면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겠죠?’ 영화는 이 멘트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수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그는 애인 수연으로부터 결별을 확인받고, 자신이 경영해 오던 클럽을 친구에게 팔아넘겨야하는 경제적 상태이며 간경변으로 인해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요양원 ‘희망의 집’에 도착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아무것도, 심지어 웃음마저도 잃은 영수는 요양원에서 폐가 사할밖에 기능을 못한다는 중증 폐질환자인 은희(임수정)를 만나면서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영수보다 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건강함이 그를 조금씩 물들이게 된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우리 같이 살래요?’라는 은희의 제안에 영수가 한다발의 들꽃으로 응답함으로써 행복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이 느끼는 행복이란 감정은 언제나 시간과 그것에 동반하는 변화들에 무력하다는 치명적 약점을 갖는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영수에게 주어진 소박한 행복은 그가 잃은 것들을 조금씩 회복해나가면서, 즉 수연이 그를 다시 욕망하기 시작하고 친구는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고 결정적으로 그를 시골에 묶어두었던 병든 간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이제 영수에게 고즈넉한 시골의 풍경은 한없이 지루한 것이 되어가고, 소박한 은희의 성품은 궁상맞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그의 행복은 은희가 없는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때는 분수처럼 쏟아지던 행복의 근원이었던 은희가 행복을 가로막는 방해물처럼 여겨지면서, 그는 자기만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조차 부담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함께하기를 갈구하는 은희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고 싶은 영수가 그녀에게 들려줄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한마디뿐인 것이다.


감독은 이 작품에서 ‘행복’에 대한 아주 오래된 우화 ‘파랑새 이야기’를 현대적 멜로드라마로 재해석한다. 행복을 꿈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영수의 눈길은 언제나 자기가 있지 않는 곳을 향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보려하지 않는 이는 끝없는 결핍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결핍은 어딘가 다른 곳에 숨어 있을 것 같은 행복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후반부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노후자금 ‘4억 7천’은 현대인들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하찮게 여기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없는 먼 미래를 위해 지금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무시하고 쉽게 스쳐지나가 버리며 행복의 순간들을 끝없이 유보해버리는 것. 영수가 은희를 떠나서 추구하는 삶은 고작 그런 것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말로 포장된 허상들을 추구하기 위해 초래된 지금의 고통을 술과 담배와 같은 말초적인 자극들로 마비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현대인의 삶이다.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도저히 몸을 빼낼 수도, 달음박질을 멈출 수도 없는 거대한 수레바퀴같은 삶으로 돌아간 영수가 행복과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은희가 그보다는 조금 더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더 현명하거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라도 닥쳐올 수 있는 죽음 때문에 살아있는 순간들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가 얼마나 행복으로 더 멀어지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행복은 어쩌면 그것에 무심할수록 우리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실천하기는 힘든 행복의 아이러니가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화된 공간 안에서 대조적으로 펼쳐지는 남녀의 연애를 통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를 통해 사랑하는 이를 통해 자아는 어떤 욕망이 충족되기를 원하고 그것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추동해나가는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 작품은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유머러스해졌지만 그렇다고 더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사랑 안에서 진동하던 감정의 울림들이 삶으로 더 많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somun.info/trackback/55 관련글 쓰기

Comment

  1. 2007/10/13 23:17

    옹~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줄 위에서 2번째.. '더 많은 유머러스해졌지만' '더 많이 유머러스해졌지만'의 오타인 것 같아요 :)

    참.. 그런 것 같아요.. '팔월의 크리스마스'랑 '봄날은 간다'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외출>이후는 보기가 싫어서 안 보고 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봄날은 간다 3- 김윤아 ‘봄날은 간다’

앞서 살펴본 영화 ‘봄날은 간다’의 포스터, 김억 ‘봄은 간다’와 함께 울려퍼지는 노래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이다.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쓸쓸함의 고백으로 시작하고 싶다. 4년 이상 사귄 연인과 관계를 되돌아보다가, 그녀가 보냈던 메일들 함께 썼던 일기들을 다시 들춰보았다. 그녀의 열정적인 고백들, 외로움과 그리움과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 특히 그녀는 진로 선택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고 그 힘듬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지금보다는 다소 어린 말투로 한자한자 적혀있는 편지들을 읽었다. 그때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해주었는지를 떠올려보며, 쓸쓸해진다.

3년여 전쯤의 글들을 보다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다시 들어본다.

봄날은 간다 -김윤아 작사, 노래 / matsutoya yumi 작곡, 조성우 편곡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눈을 감는 행위는, 우리에게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의 차단을 의미하며, 이로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게 한다. ‘마음이 저려 오는 건’ ‘사람도/피고 지는 꽃처럼/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이다. 머물 수 없음에, 꽃처럼 피고 진다는 것이, 슬프고 또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이 ‘무심’하게 흘러간다는 것이, 슬프고, 또 그래서 또 아름답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그녀와의 기억이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이, 이제 ‘추억’에 그친다는 것이, 사랑은 끝날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사랑 자체도 환상이며 대문자 ‘여성’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즉 내 안의 단절과 균열과 욕망의 원인인 대상‘a'로서의 ’여성‘ ’사랑‘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착각, 환상이라는 것을.. 결국 내 외부에 나를 완전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을 횡단하고 자기 자신의 균열, 단절, 욕망을 응시해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사랑의 한 시기가 끝났을 때, ’봄날‘이 갈 때, 우리가 조금씩은 쓸쓸해지는 것. 그럼에도 그 환상에의, 그 합일감에의 추억이,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기에 쓸쓸함을 넘어서 ’아련히 마음‘ 아파지는 것.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어쩌면 또 봄이 오고, 또 환상적인 합일감을 체험할지도 모른다. 그 환상을 믿는 순간만은 한없이 행복함으로.. 그래도 몇 번의 이별을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알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지나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결국은 단독자임을.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졸업”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바라던 여인을 결혼식에서 ‘납치’해서 버스를 타고 그 버스가 출발하던 순간 더스틴 호프만의 허탈한 표정을 우리는 기억한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문득 돌아보면, 봄날은 가 있다. 봄과 여름 사이에 어떤 단절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봄이고, 또 여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고 또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혹 이별했다고 해서, 갑자기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닐 터이고, 계속 사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6월부터 여름인 것도 아니고 5월 말까지만 봄인 것도 아니 듯이.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삶은 지속되고, 환상을 횡단하고 강해진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환상 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제 ‘사랑’이 아니면 어떠랴. 내 삶의 봄날은 가지만, 혹은 영영 갔지만, 아직도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이에 진정 사랑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예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느끼고 있는 사랑의 압도적 경험은, 예전 사랑의 기억들을 눈부신 낮에 비껴있는 낮달처럼 희미하게 한다. 김윤아의 이 노래가 쓸쓸한 것은, ‘봄날은 가고 있다’나 ‘봄날이 간다’나 ‘봄날이 갔다’가 아니라 ‘봄날은 간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새로운 사랑을 하기 전, 또는 ‘사랑’의 불가능성을 깨달은 성숙한 화자이기 때문일 터이다. 우리는 흔히 열병과 같은 20대와 성숙의 기점에 서 있는 30대를 구분하고는 한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김윤아의 노래, 김억의 시, ‘봄날은 간다’ 영화 포스터와 함께 울리는 까닭은 여기 있을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somun.info/trackback/8 관련글 쓰기

Comment

봄날은 간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변해..." "어, 그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 믿음이 깨진 것은 보봐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를 읽고 나서였다. 그 작품의 불사의 존재인 주인공 은 영원히 산다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권태로움과 사랑하는 이와의 계속되는 이별 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버리려 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신의 불안감을 얼르고 달래도 여전히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은 눈 떼기 힘든 매혹을 가지고 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의 간다'는 사랑에 관한 이런 매혹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한 영화이다. 사랑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고 그것 중 어떤 것도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 듯이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랑이 단순히 상대의 육체나 재산을 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즉 사랑 그 자체의 무목적성을 충족시킨다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일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 랑의 방식이 일치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적절한 타이밍을 포함 하고 있는데,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사랑은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겨주 고 끝나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와 은수의 사랑 역시 봄날처럼 덧없이 왔다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추운 겨울 대합실에서 만나 대밭으로, 냇가로, 산사로 소리를 잡으러 다니던 둘은 서로의 눈 길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들의 막연한 호감은 은수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두 마디, "라 면 먹고 갈래요?" 와 "자고 갈래요?",에 상우가 빙그레 웃음을 보냄으로써 연애로 전환된다. 이제 두 사람이 잠시라도 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고, 술만 마시면 그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 같아서 서울서 강릉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단숨에 달려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는 영원을 말한다. "우리도 저렇게 같이 묻힐까?" 그녀가 영원을 말할 때 그녀는 영원을 믿고 있었을까? 적어도 그 순간에는 믿고 있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다음 순간까지 그녀가 영원을 믿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원을 말하던 여자는 그들의 사랑이 점점 일상이 되어갈수록 권태를 느끼고 상우가 그녀를 가족에게 소개하려고 하자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정말로 변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 던 사람은 여자인지도 모른다. 처음의 그 떨림과 가벼움이 점차 편안함과 무거움으로 대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테고, 이미 결혼생활의 온갖 비루함을 맛보았을 그녀에게 결혼은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은수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추측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반해 상우의 사랑은 감정을 자 극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인물이 상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일 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아픔을 겪었을 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여자는 떠날 준비 를 하고 있는데 그의 (그녀와 같이 먹으려고 사들고 온) '떡볶기같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 기 때문에 그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슬픈 것이 되고 만다. 그녀가 올 때마다 흔들리고 눈물 짓는 그를 보면서 약간은 촌스럽지만 사랑에 있어서 그 절대성을 인정받는 '순정'이라는 단 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 거지. 그렇게 그를 위로하고 싶 지만 그것 때문에 보는 사람 역시 가슴이 아파진다.

이 영화를 보면 가슴이 아파진다. 한없이 우울해지고 답답해진다. 애인이랑 보러 가지 말라 는 애초의 카피와 주위사람의 만류를 들었어야 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아도 답답 하고 우울해지는데 그것은 이것과는 약간 다른 이유에서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고 난 뒤의 감정이 '그래 일상은 저렇게 지리멸렬한거지. 내가 사는 것도 저렇게 비루하고 궁상 맞고 속물스러운 데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을 테지.'였다면, 허진호감독의 이 영화들은 '그래 저렇게 예쁘고 따뜻해 보이는 사랑에도 결국 끝은 있는 것일 테지. 그리고 그 끝은 사 랑했던 만큼 아픈 것이겠지'였다. 정말 다른 과정을 통해서이지만 그래서 보고 나면 어떻게 든 나의 감정을 안으로 꽁꽁 싸두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끝없이 우울해지곤 한다.

그렇지만 그런 아픔들을 피해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아픔도 고통도 없는 삶은 성장 없는 삶과 다름없을 것이다. 봄날은 가지만 봄날 뒤에는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도 가을 의 쓸쓸함도 있고 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있기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봄날이 지속되기만 바 란다면 그 봄날이 가지고 있는 서툰 몸짓과 불안정한 심리상태까지 억지로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가 상우의 봄날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떠날 준비를 하는 그의 또 다른 미소로 끝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somun.info/trackback/14 관련글 쓰기

Comment

  1. BlogIcon 짐씨네 2007/06/26 14:09

    긴의 글을 보다가 예전에 써놓았던 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아...이것을 쓰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군요. 그래서 그때는 말로만 조잘조잘 읊조렸던 부분들이 이제 마음으로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습네다.

    뭐 봄날이 요란스럽게 가든, 마구 상채기를 내서 살 맛이 안나든...
    결국은 잘...살아야 하는 것이겠죠.

  2. BlogIcon 2007/06/27 00:11

    :)
    이 영화 개봉 쯤에 쓰신 거에요? 벌써 6년전이네요...
    6년전.. 떠올려봅니다... :)

  3. 짐씨네 2007/06/27 09:45

    응. 극장에서 보고 쓴 거니까. 그게 벌써 6년이구나.

  4. 2007/06/28 08:09

    네.. ㅎ 누나가 제 나이 무렵이었을 때네요 ^^;
    시간이 흐른다는 것...

    ㅎ 요즘 감상적이되어서 그런지..
    신기하기도 하고 애닯기도 하네요..

    밤이도다/봄이다/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날은 빠르다/봄은 간다

    괜히 김억이 또 떠오릅니다 ^^

  5. BlogIcon Gore 2007/07/03 16:01

    여백이 많은 영화는, 다시 볼 때마다 그 빈공간을 또 다른 의미로 채워가며 보는 재미가 있지요. '봄날은 간다'도 다시 봐야겠네요.

    요 전에 '오아시스'를 두고 사랑이 어쩌니 한 번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봄날은 간다를 다시 보게 되면 '그들이 서로 사랑하긴 했나'가 화두가 될 것 같아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영애가 이쁘니까 강추! =_=b

앞서, '봄날은 간다'의 포스터가 제3의 시선으로, 사진과 문자 텍스트의 어긋남으로, 남녀의 시선의 거리로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김억의 아래시는 화자가 직접 독자에게 어떤 풍경을 그려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다.


봄은 간다 - 김억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태서문예신보 1918. 11)


1연부터 ‘밤이도다/봄이다’로 시작되는 대구는 이 시에 지배적인 표현양식이다. 이 시의 모든 연은 대구로 구성되어져있다. 연인이 서로에 대해 서로 대구인것처럼. 형식상으로도 두 연인은 마주보고, 함께있다.

‘밤’과 ‘봄’은 초성을 둘 다 ‘ㅂ’으로 시작하고 종성을 둘 다 ‘ㅁ’으로 끝내며 이 둘이 각각 양성모음 ‘ㅏ’와 ‘ㅗ’로 연결되어 있다. 최소의 의미분절단위로만 이루어진 차이. 그러나 차이. 밤이도다/봄이다 라는 이 짧은 1연은 시적 상황을 나타내며 동시에 시적 정조를 보여주고 있다.

밤이라는 시간은 일상의 낮과는 다른 시간이며 낭만적인 시공간이다. 봄 또한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이며 낭만적인 사랑의 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봄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서가 어울릴 수 있지만, 시인은 곧 이어 ‘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라고 하여 애달픈 밤과 생각이 많아진 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2연은 ‘~인데’로 끝나고 다음연에서 ‘~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날은 빠르다/봄은 간다’라는 것이다. 밤이라는 시간 자체도 애달프고, 봄이라는 시간 자체도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데, 이 봄밤은 빠르게 지나가니, 더욱 애달프고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 깊은 생각에 ‘아득이는’ 화자에게 슬피우는 새 소리와 종소리가 들리고, 검은 안개도 보인다. 그 외에는 조용하고 고요한 봄 밤. 화자에게 밤은 서러운 시간이지만 말이 없고 고요하다. 말이 없고 고요하니 더욱 서럽다. 이 때 꽃이 떨어진다. 꽃은 봄의 상징이자, 봄을 대표할 수 있는 대유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꽃이 떨어진다는 것은 ‘봄은 간다’라는 내용과 같은 의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지막에 ‘님은 탄식한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마지막은 일종의 반전이다. 이 시를 처음 읽는 독자들은 화자가 홀로 있는 줄만 알았고, 그저 봄밤에 취해 우울해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화자의 곁에는 ‘님’이 있었고, 그/그녀는 탄식하고 있었다. 이 시의 모든 형식이 대구로 2행이 1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항상 두 연인이 그렇게 있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왜 화자가 그렇게 ‘봄밤’에 우울해했는지, 왜 '날은 빠르다/봄은 간다'라며 슬퍼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라는 청춘, 사랑의 상징적 계절 속에서 그리고 ‘밤’이라는 연인들의 시간 속에 함께 있는 ‘화자’와 ‘님’이지만 ‘님’은 '꽃'이 지는 것을 보고 고요히 말없이 탄식만 하고 있다. '꽃은 떨어진다/님은 탄식한다'는 인과적 관계라기보다는 대구로,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꽃은 떨어진다=님은 탄식한다. 우리는 이별을 짐작할 수 있다. 꼭 이 순간이 아니더라도, 꽃은 지고 봄은 가는 것이다.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그리고 ‘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날은 빠르다/봄은 간다’. 우리는 앞서의 포스터와 함께, 김억의 시를 다시 읽을 수 있다. 어느 고즈넉한 봄밤에 서로 조금은 떨어져 앉아있는 연인. 새가 울고, 검은 안개가 끼고, 종이 울리는 풍경이 보인다. 꽃이 떨어지고 연인은 탄식한다. 시인은 '봄은 간다'라고 제목을 붙인다.

앞서 살펴본 포스터와 이 시 모두, 회귀할 수 없는, 멈출 수도 없는, 짧디 짧은, 깨달으면 이미 지나가버린, 또는 지나가고 있는 봄을 이야기한다.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이러한 '봄날'이 아름다운 까닭에 대해 노래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somun.info/trackback/9 관련글 쓰기

Comment

봄날은 간다. 차이와 함께 반복되는 주제들 중 하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표현되는 이 '봄날은 간다'라는 주제를, '시 천천히 읽기'의 첫번째 테마로 잡는다. '차이와 함께 반복하는 것'을 다시 묶는 것은, 각각의 차이들을 풍요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처음 다룰 아래 포스터, 그 '전'에 있는 김억의 시와, 이와 '함께'있는 김윤아의 노래, 또 이와 조금은 비껴있지만 연상되는 김광석 등. 이들이 함께 울려퍼질때, 서로는 서로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해볼 대상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이재용 사진작가의 이 포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 포스터는 일종의 영화 '광고'이며, 영화라는 서사를 한 순간에 압축하고 상징하여 보여주는 '시'이다.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라는 한글 문자 텍스트, 그 아래 'One Fine Spring Day'라는 영어 문자 텍스트는 서로 보완하며, 그림 텍스트를 보조한다.

대나무가 깊은 곳에 두 남녀가 있다. 남자는 소리를 듣고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응시한다. 응시하고 있지만 보고 있지는 않다. 그는 소리를,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지만, 자신의 내면에 직접 울려퍼지는 듯한,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에 기대있으면서도,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분명 무엇인가를 '보고'있으며, 표정 또한 신선하고 밝은 느낌이다. 그녀의 밝은색 피부와 붉은 입술, 붉은 목도리는 시각적으로 남자의 보다 짙은색 피부와 짙은 옷과 대비된다. 그녀는 유혹당할 수 있는/유혹하는 존재라면, 그는 이별당하는/이별하는 존재가 아닐까. 무언가를 '보는' 붉은 여성과 무언가를 '듣는' 어두운 남성.
이 둘의 시선차이, 남자는 듣고 있고 여자는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그림 텍스트.

이는 미묘하게 문자텍스트와 어긋난다. 분명 그림 속의 남녀는 '봄'이라기 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날씨의 옷차림이다. 그러면 '봄날'이라는 것이 '은유'임을 더 강하게 나타낸다. 'one fine spring day'라는 것도 그 사랑했던 시절임을, 그것이 'fine'하지만 두 남녀의 차이는, 이별에 대한 예감은, 마치 '봄날'은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가는 것일 수밖에 없듯이, 드러나 있다. 봄이라고 말하고, 겨울을 보여주기.

이러한 의미망은 남녀가 있는 곳인 '대나무숲'이라는 배경에  의해 아이러니한 효과를 가져온다. 매난국죽, 사군자. 대나무는 전통적으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였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거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영화 속 유명한 남자의 대사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신세대'를 대표한다고 여겨졌던 카피.

거리들, 차이들... 두 남녀의 겨울 옷차림과 '봄날'이라는 문자텍스트의 거리, 두 남녀의 시선의 거리. 그 두 거리가, 애달프다.

그리고 이 포스터의 '뒤'에 있는 김억의 '봄은 간다'를 떠올리면, 그 거리가 더욱 시리다. 태서문예일보에 1918년 11월에 발표된 김억의 '봄은 간다'는 시간적 격차와 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somun.info/trackback/7 관련글 쓰기

Comment

  1. BlogIcon coolya 2007/06/13 12:00

    어...이거 왜 비공개로 해놨어?

  2. BlogIcon 2007/06/13 13:43

    아; 쓰고 있는 건데요 ㅋ;; 우선 대충 써놓고 다듬으려고요 ^^;

  3. BlogIcon 2007/06/13 14:37

    비공개는 관리자들만 볼 수 있는거죠? 우쨌든 보이는지 몰라서 화들짝; 마무리해놓습니다. 김윤아랑 김광석도 얼릉 써야되는데 ㅋ
    '비공개'로 되있는 것은 읽지 말아주세용~ ㅎ 조금씩이라도 계속 고치고 다듬거든요~ ㅎㅎ

  4. BlogIcon coolya 2007/06/13 15:20

    아..그런 것이었고나...^^아마도 관리자에게만 공개되는 것이겠지~알겠어요~(그런 의미에서 천정황 이 김전하의 글들은 비공개로 바꿔야겠다..이건 내부용이니까^)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