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휴대폰 감청 불가’를 외치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감청이 어려운 휴대폰이야말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필요성을 주장한다. 현행법상 휴대폰 감청은 법적으로 가능하나 기술적으로 어려워 통신사업자들에게 협조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필자는 휴대폰 감청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기본 전제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감청 범위의 확대에 반대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독재정권 시절 횡행하였던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감청을 막기 위해, 모든 감청에 헌법상의 영장주의-즉 수사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법부가 범죄 발생의 개연성을 서면으로 인정하였을 때만 압수/수색이나 구속이 허용된다는 원리-를 적용하자는 취지로 1994년에 탄생한 ‘좋은 법’이다. 특히 피감청자가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감청은 ‘수색’ 의사가 공지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수색보다 훨씬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크기 때문에 법원 허가의 요건도 더 엄격하고 피감청자에게 별도의 통지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번호 또는 아이피(IP)와 언제 통신했는가 등의 정보(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음은 물론 통신의 연결 및 진행을 위해서는 통신자가 어차피 통신사업자에게 ‘공개’해야 하는 정보이므로 일반적인 수색의 경우보다 수사기관이 더욱 쉽게 취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가 감청을 허가함에 있어 감청 대상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수호하는 독립적인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2000년대 들어 감청 신청 기각률은 평균 2%대이고 통신사실 확인자료 취득 신청의 기각률은 1% 미만이다. 우리나라는 감청 허가에 대한 판례가 없어 낮은 기각률에 대한 평가도 불가능하다. 미국은 감청이 기각된 판례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색 및 감청영장이 발부된 뒤에 그 영장 발부의 불법성을 다투는 절차가 없어 기본적으로 피의자는 수사기관들의 수색 및 감청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또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취득 허가 요건이 너무 느슨하며, 감청 기간이 2개월 내지 4개월로서 미국이 테러 및 총기사건 등의 위험까지 고려하여 정한 30일에 견줘 너무 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감청자 통보 시점이 기소나 불기소 결정 이후라서 수사가 길어지면 아주 오랫동안 감청 사실을 모르게 된다. 미국의 통신비밀보호법(ECPA)은 감청 허가가 기각되거나 인용되면 무조건 통지하도록 하고 있어 감청이 신청만 되어도 감청 대상자는 통보를 받는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휴대폰 등으로 감청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반대한다. 같은 취지로 개정안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통신사실 확인 자료에 포함시켜 훨씬 더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반대한다.
더욱이 지피에스 위치 정보는 통신자가 통신을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공개’한 정보가 아니므로 통신사실 확인 자료도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미행은 영장 없이 시행될 수 있지만 사적 공간으로의 ‘미행’은 일반적인 영장을 필요로 한다. 이번 개정안이 상정하고 있는 지피에스 정보는 5m 이내까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적 공간으로의 미행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감청 협조 의무가 부과되는 대상은 접속서비스 제공자뿐만 아니라 포털이나 웹호스팅 업체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군소업체들을 포함하는 이렇게 많은 사업자들이 타인들 사이의 대화 및 통신 내용을 국가에 넘겨줘야 한다면 이 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통신비밀공유법’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뭐가 달라지나요? 촛불집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대학원생이 문득 나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 촛불집회가 과연 무엇을 실질적으로 바꿔낼 수 있나요? 뭐가 달라지나요?" '88만원 세대'인 스물 네살 짜리의 냉철하고도 절망적인 질문은, 우리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 회의를 담은 것이었다. 과연 그러하다. 장관 고시가 철회되면, 혹여 전면재협상이 선언되면, 아름답게만 보이는 저 촛불이 꺼지고 다시 사람들은 일상으로 뿔뿔이 돌아갈 것 아닌가? 저 뜨거운 거리의 10대들과 20대들도 차갑고 끔찍한 경쟁의 나락으로 돌아갈 게 아닐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정치적 불복종과 연대의 첫경험을 아련한 기억으로만 간직한 채 말이다. 이 촛불은 무엇을 바꾸고 남길까? 이미 여러가지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12.18(대선)과 4.9(총선), 철옹의 아성을 구축한 줄 알았던 보수우익을 청소년들이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너나 쳐 먹어!". 단 3개월만에 한국의 보수우익은 자신의 온알몸을 국민 앞에 폭로당했다. 대중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잘 살겠다'는 욕망이 제도정치 속에서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점도 재차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야말로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한 젊은세대를 우리는 얻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명박정부는 이제 국민의 눈치를 좀 더 보는 스타일로 바뀔지 모른다. 대운하도 진짜 중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체제를 떠받치는 불안의 뿌리인 비정규직과 '88만 원' 문제나 이 끔찍한 교육모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가고 때문에 서민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결국 양극화는 중단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저항은 새로 출범한 정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이 물려받은, 이전 '개혁정권'이 길고도 오래 잘못 든 길과,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10년'이 쌓아온 모순을 고쳐내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
▲ 촛불집회가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봐야할 때다. ⓒ프레시안
촛불과 실질적 민주주의 질문을 받고, 6월항쟁 세대인 나는 20년 전의 그날들을 떠올렸다. 6월항쟁이 만든 그야말로 실질적인 변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그때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7-8월 노동자대투쟁과 함께 왔다. 그 대투쟁을 통해서, 노예처럼 감시받고 일상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일하던 노동자도 '인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80년대의 고도성장의 과실도 조금이나마 노동자들에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민주노조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연대의 틀이 생겨났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독재타도-호헌철폐'라는 정치적 항쟁을 통해 그렇게 느리게 왔었다. 그리고 목졸림을 당해 지난 20년간 서서히 망가졌다. 노조를 공격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노무현정권과 이명박정권은 정확히 동문선배격이다. 아무리 예쁘게 보려 해도, 노무현정권은 교육과 비정규직문제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오늘날 '88만 원 인간'도 인간이 아니길 강요받는다. 그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노동하고 해고된다. 그래서 그들은 동료인간에 대한 연대의식과 관심도 차단당한다. 초등학생부터 그렇게 하기를 강요받는다. 오로지 경쟁과 약육강식이 학교와 일터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데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10대와 20대는 사실 기적이다. 예쁜 촛불에 온 눈이 팔려 있는 동안에도, 사회는 '양극'으로 빨리빨리 움직이고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공 농성 중이고, 이랜드와 코스콤 노동자도 여전히 거리에 내몰려 있다. '10대의 반란'이 거대한 행진을 촉발했지만, 다시 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든 감옥 속에 구금되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포기될지 몰라도, 촛불과 비정규직 문제는 전혀 무관해보인다. 과연 오늘의 촛불이 우리들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를 담고 있을까? 촛불이 내 식탁과 내 '건강권'을 지키자는 것만이면,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쇠고기 문제에 아무리 많은 새 패러다임이 담겨 있어도 그렇다. 87년 체제의 '아래로부터의' 종언 그러나, 인터넷과 거리에서는 연대가 꽃을 피운다. 또 다행스럽게도(?),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의 구호들이 외쳐진다. 뜬금없이 헌법 제1조까지 외쳐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보수우익은 시위의 배후를 운운하고, 비현실적 정치구호에 대해 일부 지식인들은 비웃음을 보낸다. 하지만, 이 정치구호들이말로 절망을 부르는 경제적 모순과 모순에 가득 찬 정치체제를 한꺼번에 꿰뚫고 있다. 국민의 직접행동은 쓰레기 같은 제도정치와 민중의 열망 사이의 참기 힘든 간극을 폭로하며 또한 메워주고 있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거리의 10대와 20대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외침은 여전히 정치가 '최종 심급'임을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 '비현실적'ㆍ'초법적'구호들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상상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주의'를 넘어서버린 진리의 목소리이다. 소위 지식인들과 진보진영은 87년체제의 종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정권이 바뀌자 다시 개헌론도 솔솔 피어오른다. 그런데 오늘의 촛불은 '위로부터' 논의되어온 '87년체제의 종언'에 관한 논의가 아무 의미 없음을 보여준다. 민중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고, 근본적으로 그것을 반영할 정치체제가 아니면 논의는 헛짓이다. 촛불은 위로부터의 체제 재편에 대한 진정한 안티테제이며, 우리가 보듬어 꽃피워야 할 진테제이다. 어찌 18대 국회가, 오합지졸로 패퇴한 야당이 이 진테제를 받아안을 수 있을까? 이미 몸으로 87년식 운동과 통치가 불가능함을 젊은 촛불들은 너무 많이 보여줬다. 87년 체제의 종언은 이미 거리에 있다. 2008년의 6월 10일, 우리는 일단 다같이 촛불을 들고 길이 막히는 데까지, 아니 그 너머서까지 끝없이 행진해야 한다. 거기서 대다수 인간을 위한 새로운 체제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혹여 우리는 이번에 쇠고기 문제 이외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 혹 집에 뿔뿔이 돌아가더라도, 마음속의 촛불집회를 이어가야 한다. 5년간 계속 촛불 거리에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군정종식도 혁명도 아닌, 거대한 기만이었던 87년의 6.29가 그래도 헌법과 노동을 바꾸게 됐듯이, 이 촛불이 거대한 변화의 초석이기를 바란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때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 것 같니?’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스물 넷.’ 왜 하필 스물넷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때쯤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몰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나의 스물넷은 그런 식으로 펼쳐지지 않았다. 황금기는 자꾸만 늦춰졌고, 어느새 그 질문을 몇 번 되뇌어 볼 틈도 없이 나는 삼십 대로 밀려 와 있었다. 삼십 대가 됐다고 갑자기 내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 것은 아닐 텐데, 분명 세상은 이십대에 내가 살고 있던 그 세상 그대로가 아닌 듯 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마음속을, 혹은 머릿속을 뚫고 지나간 것일까. 이 시대의 다른 삼십 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어떻게 다른지 자꾸만 붙잡고 묻고 싶어졌다.
KTX 여승무원 노조 지부장 민세원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다. 이십 대에 화려하게 하늘을 날던 그녀가 삼십 대에 땅위로 내려온 것은 얼핏 보기에 아주 운 나쁘게 불시착한 것처럼 보였다. TV 드라마 속 화려한 전문직 여성의 단골 메뉴요, 남성들이 미모의 신붓감 후보로 늘 거론하는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KTX 여승무원이 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업무 공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계급과 계층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십 대와 삼십 대 사이의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여성으로서 할 말이 많을 것 같았고, 현재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인 청춘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을 것 같았다.
2007년 1월 6일 용산역에서 드디어 민세원을 만났다. 함께 파업을 시작한 380명의 KTX 여승무원 노조원들 가운데 그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노조원들은 70명가량 되는데, 그들은 2006년 5월 말 이후 용산역 근처의 노조건물에서 기거하고 있다. 3월 16일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었던 민세원은 경찰의 눈을 피해 거의 비공식적인 활동만 하며 실내에 머물러 있었다. 인터뷰를 약속을 잡을 즈음 그녀가 경찰에 자진출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간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조사받고 46시간 만에 나왔어요. 표면상으로 철도노조 이철의 대표가 모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분도 집행유예가 나왔거든요. 이미 거의 종결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저를 구속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버티기는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녀의 앳된 외모 때문인지, 여성으로서 장기간의 파업 투쟁을 계속하려면 딸린 가족이 없는 혈혈단신이어야 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나는 당연히 그녀가 미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가정을 지키는 것과 직장을 사수하는 투쟁을 병행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과는 달리 기혼자였다.
“남편이 저랑 이념이나 가치관까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제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부장이라서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냥 열심히 하라고만 하죠. 시부모님께서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고 송구스러울 뿐이죠.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은 직장을 구할 때였어요. 대한항공을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었다가 다시 직장을 구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죠. 특히 여성은 능력이나 경력과는 별개로 결혼하면 직업을 다시 갖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요.”
그녀는 어떤 계기로 험난한 투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걸까. 대한항공에 다닐 때부터 노동자의 처우 문제 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노동 문제에 눈을 뜨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항공사 객실승무원으로 5년간 일하고 몸이 아파서 그만둘 때는 회사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어요. 1년 남짓 쉬었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정규직으로 직장을 잡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다른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경력도 인정해 주고 정규직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대우를 해 주어서 비정규직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를 못 느끼고 그냥 잠시 거쳐 가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었죠. 대한항공 다닐 때는 제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먹고 살기에 바빴어요. 사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의 권리나 여성의 권리 자체를 생각하기 힘든 것 같아요. 알 기회도, 여유도 없었다고 봐야죠.
그냥 ‘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몸으로는 이미 겪은 것들을 머리로는 나중에야 알게 된 거죠. 아, 그게 그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면서 깨달아 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있었던 거고요.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제가 지부장으로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현실의 고통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켜켜이 갖고 있었기에 그런 문제들의 원인과 배경을 정리하고 ‘투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정 빛나는 이십 대를 위하여
그녀의 이십 대는 IMF로 무너진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가정 경제를 책임지느라 온통 회색빛이었다고 한다. 예쁘게 꾸미거나 연애를 하는 일은 사치였고, 항공운항과라는 그녀의 전공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그녀의 빛나던 이십 대와 힘들어진 삼십 대를 비교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이십 대는 빛나지도, 꿈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다시 이십 대를 살아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이건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허망하게 외워 보는 소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십 대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전공을 그렇게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차피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은 아니니 어려운 여건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집안 사정에 이끌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선택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그때 그 선택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KTX 승무원도 결국은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힘들었어도 전공을 그리고 직업을 그런 식으로 선택한 것은 잘못인 것 같아요. 선택의 기준을 잘못 둔 거죠. 김치에 밥만 먹기도 힘든 상황에서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시는 걸 보고 돈 버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택했던 거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좀 더 못 먹고 못 입어 힘들더라도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사실 이것도 KTX 승무원이 된 다음에 생각했던 거예요. 그 전에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방만하고 부당한 공기업과 싸우며 사회 현실과 내 존재에 대해 알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세원의 바쁜 스케줄 속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있다. KTX 여승무원 노조 문제는 이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어쩌면 잠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인지도 모르는 대학생들을 제자로 둔 대학교수들이 모임을 만들어 이들에게 지지를 표명하며, 대학에서 특강을 주선하고 있다. 그녀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 그리고 그녀의 눈에 비친 요즘의 대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좀 답답합니다. 저도 대학생 때 나 외의 문제나 사회 현실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대학생들도 그런 것 같더라고요. 성인이 된 다음에는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또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저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대한항공을 다닐 때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을 한 적도 없었고, 노동자라는 단어의 의미도 제대로 몰랐어요.
그래서 지금의 이십 대들은 자신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권리 중에서 어느 부분이 침해당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이 강의실 하나 빌리고 캠퍼스 내 시설 하나를 이용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대학 내에도 여러 가지 부당한 일들과 착취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노동자 운동, 대추리, 남북통일 같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는 것도 물론 훌륭하고 필요하지만, 학생 신분에서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착취와 부당함에는 맞서지 않고 큰 사회 운동만 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냥 ‘한때 해 보는 학생 운동’으로 수명이 길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말이 있지요. 가까운 문제에서부터 원칙과 신념을 지키면서 사회운동도 함께 해 나갈 때에야 그 운동이 ‘한때’의 투쟁이 아니라 ‘내 삶과 함께하는 투쟁’이 될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뚫고 지나왔던 터널이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것일까. 그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켜본 풍경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오늘날 대학은 취업 준비를 위한 공간으로 변질되었고, 학생들은 좋은 학점과 높은 토익 점수만이 밝은 미래와 결부되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학생들을 교문 밖으로 이끌던 총학생회는 자취를 감추었고, 정치적 이슈를 학교 밖으로 몰아내고 재밌는 축제를 보장하는 선본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실정이다. 이곳저곳의 대학을 다니다 보니 그런 학생회의 구호들이 그녀의 눈에도 들어온 모양이었다.
“이미 ‘탈정치’를 외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동인 것이잖아요. ‘탈정치’ 즉 정치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소박하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삶을 일구는) 공동체 사회로 가자는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고요. 그런 불가능하고 위선적인 이야기를 어린 나이 때부터 하면서 선거 공약을 내걸고, 되고 나서는 학생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것이 아주 우려스러워요. 자기에게 직결된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신념, 가치관 그리고 의지가 생기고 그것을 통해 사람이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저나 KTX 여승무원들은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싶었을 뿐인데, 원리 원칙대로 ‘아닌 것은 아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끝까지 말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거든요. 학생들도 자기 주변의 일들을 해결해 나가다 보면 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성노동자의 유통 기한
나 역시 한 여성이고, 노동자이며, 비정규직 종사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도 정규직은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입사해서 가장 먼저 기가 막혔던 건, 내가 일하는 직장 건물에는 여자 화장실이 없는 층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 최근 쿼터제를 도입해 가며 여성의 비율을 높이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태부족이다. 대신에 이 분야에서 최근 3~4년 사이 생겨난 비정규직은 또 반대로 여성들이 대다수이다. 처음 들어올 때에는 남성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들은 계약 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나갔다.
3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다른 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자 선배들이 계약 해지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던 나는 민세원 씨에게 이런 사정을 한탄조로 꺼냈다. 그녀는 내 얘기를 찬찬히 듣고는 “정말, 어디나 다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녀에게 더 물었다. 내가 사실 여전히 확신이 안 서는 것에 대해. 고용조차 되지 않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으로라도 고용이 되는 것이 나은 것은 아닐까. 끝끝내 정규직에 들어서지 못할 바에야 이런 식으로라도 우리 여성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지는 건, 그렇게라도 문이 넓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아닐까.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무슨 문이 넓어진다는 거죠? 그 새로 생긴 일자리라는 것이 정해진 그 기간 동안만 필요한 것인가요? 상시적으로 하는 일이고, 그 일이 향후 계속 필요해서 만든 일자리라면 정규직으로 뽑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 일은 계속 필요한데 이삼 년마다 부품 갈아 끼우듯 사람만 갈아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죠. 그리고 그 소모품 자리에는 여성들이 언제나 최우선으로 배치되고 있고요. 당장 이렇게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워낙 취업난이라 비정규직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갈수록 노동 여건은 악화될 것입니다. 막아야지요. 모두 함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싸워서 막아야 합니다.”
KTX는 이러한 성차별적 고용 모순의 전형을 보여 준다. 남성 승무원은 정규직으로 뽑고, 여성 승무원은 비정규직으로 뽑은 뒤 팀장급인 남성 밑에서 세 명의 여성이 지시 감독을 받게 하는 구조이다. 분명 남녀 승무원 어느 쪽이건 KTX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필요한 직종이기는 마찬가지임에도 말이다. 그런데도 여승무원은 젊고, 예쁜 여성들만 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철도공사 임원들은, 여승무원이란 직종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더라도 그 직종에 적합한 여성들의 유효기간은 짧아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란다. 그들은 내 직장 동료들이 겼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차별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차별은 노동 운동 내부도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들 안에도 정규직/비정규직, 여성/남성 등에 따라 계급이 있다.
“철도노조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매우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나 봐요. 그렇지만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보통 ‘대공장’ 노조들은 그 주체들이 다 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주지도 않아요.
내 직업과 권리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직업과 권리도 중요하다고 여겨 줘야 할 텐데, 노동력의 종류에 따라서 많은 편견을 갖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하는 서비스업과 같은 감정 노동은 특히 더 하찮게 여기고 젊은 여자가 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죠. 노동력의 종류나 대가로 받는 임금의 액수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똑같은 계급임을 노동자 스스로 제대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노동자를 계급화해서 차별하는 잘못을 계속해서 저지르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본가들, 사용자들이 바라는 바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고 진정 노동자가 한 마음이 될 때 세상이 변할 겁니다.”
‘일상’으로서의 운동
그녀는 거듭 ‘의식’의 변화가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나 하나만이라도, 우리만이라도 생각을 바꾼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녀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작게, 주변에서 문제를 찾아 운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듯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로, 한편으로는 지나친 현실주의자로 보이기도 할 것 같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 내가 착취당하고 있는 것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전(全) 사회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게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과거 1980년대 운동권들이 군대 가기 전에 잠시 화염병 좀 던져 보고, 최루탄 좀 맞아 본 다음에 지금은 자기 삶에만 매몰되어서 사는 것, 분명 그러한 일들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는 몰라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부조리에 맞서 끊임없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과정 못지않게 결과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 사그라져 없어지는 운동이 아닌 작게나마 하나씩 지속적으로 성취해 나가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언젠가 386세대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자기 몸을 불살라 가며 사회를 위해 싸웠던 그때의 감정이 정말 순수한 이타심일까에 대해서. 그때 선배는 그게 일종의 사랑과 같은 감정이라고 했다. 사랑이란 일시적인 것이어서 언젠가 변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의 감정마저 ‘가짜’라고, 그것이 ‘없었다’라고 폄하할 순 없다고. 자신들에게 운동도 그러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녀라면 그 선배의 말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을 것 같다. 격렬한 감정은 아니더라도, 목숨을 걸진 않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386세대에게 운동이 ‘사랑’과 비슷한 거라면, 그녀에게 운동은 그냥 ‘일상’인 듯 보인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전태일의 분신마저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했지요. 물론 그분 때문에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노동자의 처우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겐 합법적인 시위조차 쉽게 허용이 안 되는 것이 37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이지요. 그분께서 살아서 활발한 투쟁을 계속하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전 있어요.”
그녀의 말은 ‘전태일 신화’에 대한 도전처럼 들렸다. 1990년대 중반 이전 학번들은 잘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386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운동의 아우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배들처럼 ‘나가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막연한 부채의식과 경외심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나로 하여금 두려움과 함께 묘한 해방감을 함께 느끼게 했다. 그녀의 말처럼, 전태일이 죽는 것보다 살아서, 살아남아서 끝까지, 변치 않고 투쟁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변해 버린’ 철도공사의 이철 사장이나 한명숙 국무총리에 대해서도 격렬하게 비난했다.
“12월 31일 새마을호 승무원 단식 투쟁에 지지 방문을 갔다가 우연히 이철 사장을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사실 이철이란 사람에 대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과거에 신념이 있어서 국가에 대항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선뜻 만났는데, 얘기해 보니 아니었어요. 나는 박정희 욕한 것밖에 없었다. 박정희 욕한 게 불법이냐, 하지만 너희의 행동은 불법 행위다. 그러니 하지 마라. 그러더군요. 제가 다 창피하더라고요. 과거에 한 일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조차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자기부정을 하다니……. 그리고 박종철 열사를 떠올렸지요. 과거 민주화를 위한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며 싸웠던 열사 중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거나 자본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곧 답이 나오더군요.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와 마찬가지로, 진정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훌륭한 분들은 2007년, 이 시대에 절대로 살아 있거나, 권력과 자본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한명숙 국무총리는, 우릴 파업 초기부터 지지했던 여성민우회의 회장 출신이고 과거에 민주화 운동도 했다기에 다른 정부 관료들과는 조금 다를 줄 알았어요. 여덟 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는데 절대 만나 주지 않더군요. 국무조정실 담당자가 민원인이 한둘도 아닌데 총리님이 어떻게 다 만나느냐, 그리고 KTX 문제에 대해서 총리님께서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더군요. 1970~80년대 피눈물을 흘렸던 여성 노동자들의 지지와 믿음을 바탕으로 첫 여성 총리가 됐으면서 그 절절한 믿음을 철저히 저버리고 있는 현재 총리의 행보에 분노를 느낍니다. 자리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성’이 ‘여성’인 총리가 처음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성적’ 운동과 연대의 가능성
마음이 답답해 왔다. 왜 한 총리는 끝까지 노동자, 여성들의 편에 남아 주지 못했던 걸까. 정치인은 다 그렇게 되고 말아야만 하는가. 워낙에 사회 이곳저곳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게 여성인지라, 우리는 모이면 그런 농담까지 했었다. “여성이 승리하려면 대선 때 무조건 여성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더니 민세원은 정색을 했다.
“저는 여성 정치인들을 보면서 ‘간택’이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그동안 만나거나, 접촉을 시도해봤던 여성 정치인들에게서는 별로 희망을 못 봤다는 게 솔직한 제 느낌이에요. 그들은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수록 오히려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성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남성들에 의해 ‘선택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성별이 여자일 뿐인 정치꾼이 되어가는 것이죠.”서울시장 후보들 간의 공방전이 한참 있을 무렵 후보들 모두 상류 계급의 삶만 살아왔기 때문에 서민의 생활에 대해 상상과 추측만 할 뿐이었죠. 그러니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닌 수박 겉핥는 식의 정책만이 난무하지요. 그래서 전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승리’할까. 우리 여성들만의 힘은 어디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대장금>이나 <황진이>처럼, 여성들이 연대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적이 있었다. <대장금>에서 한 궁녀가, 명나라 사신에게 겁탈당해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자라서 다시 궁녀가 될 때까지 몰래 키운 일이 밝혀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관료 남성들이 놀라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자 궁녀들이 말했다. “그게 궁녀들입니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궁녀들이란, 궁에서 가장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들이 하는 일이야 말로 궁을 유지시켜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들은 궁이라는 커다란 집 안의 ‘주부’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가진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이러한 ‘궁 안에서 몰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다. 왕의 성은을 입는 것 외에는 평생 처녀로 살아야 하는 궁녀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궁녀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낳은 아이를 궁 안에서 십 수 년을 몰래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궁녀들이기에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연대하면 그 정도의 국법을 어기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황진이>에서도 그랬다.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자존심을 ‘기예’로 지켜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을 억압하고 짓밟는 자들에게는 기생들의 힘을 모아 대항한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삶을 위해. 나는 그런 여성들의 힘을 믿고 싶었다. 그 과거의 허구일지 모르는 이야기가, 2007년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었으면 좋겠다. 민세원은 나를 달래듯, 자신들 KTX승무원 지부만이 가지는 힘, 강점에 대해 얘기해 준다.
“투쟁 방법, 냄새, 색깔이 많이 다르대요. 처음엔 ‘투쟁’ 하면 무력시위처럼 과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쟤네 뭐야’ 하며 안 좋은 시각으로 보고, 욕을 하기도 했어요. 정복 입고 행진한다든가, 열차에 들어가서 서비스하는 걸로 우리의 역할을 증명해 보이기도 하고, 서명받기, 인사하기, 안내하기, 선전물 나눠 주기…, 그리고 금요일 촛불문화제에서는 승무원들이 준비해서 공연도 보여 주기도 하고. 지금은 좋은 평가를 많이 받고 있어요. 여성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게다가 같은 또래들이기 때문에 갖는 강점, 특징인 듯해요. 우리를 지지, 후원하게 된 단체의 사람들이 말하길, 그것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었대요.”
그러한 새로움이 대중에게 다른 방식으로 어필한다는 데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보았다. “노동자 스스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바꾸려고 노력만 한다면 세상이 바뀔 거예요. 어차피 여론은 대중이 만드는 거고, 대중의 대부분은 노동자니까.”라고 말하는 그녀는 대중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대중에게, 다른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 믿어도 될까? 그들이 쟁취해 낼 것이라고,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해 봐도 좋은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다 불가능할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해야 되는 거죠. 얼마나 오래 걸리고 힘들지 모르지만, 옳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버텨 온 이들, 같이 고생해 온 동료 승무원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고 한 대로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겪게 해주고 싶어요. 지난 3년의 시간을 삭제당할 순 없잖아요. 그걸 지워야 한다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해야 한다면, 이후의 삶이 참 비참할 것 같아요.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왜 그녀가 지부장을 맡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선 동료 여승무원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포용력이 보였다. 그녀는 타고난 ‘맏언니’였다. 그래서 그녀는 아등바등하는 이십 대의 어린 ‘동지’들을 최대한 감싸 안으려 했다. 자신이야 이미 삼십 대에 입사했고 직장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조금 달랐지만, 다른 여승무원들에게는 대학을 갓 졸업한 이십 대 초중반의 가능성 많은 시기에 선택한, 믿었던 첫 직장이었다. 그래서 이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들을 기특하고, 또 안쓰럽게 여긴다. ‘배신’하거나 ‘포기’하고 떠나간 동생들마저도.
“회사에서는 2004년 입사 후 승무원끼리 전화번호를 공유하는 것조차도 막았었어요. 그렇지만 인터넷 카페를 통해 우리 내부에서 문제의식들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2005년도에는 상조회든 뭐든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모였어요. 그러던 차에 사람들이 나를 지부장으로 추천했죠. 이 일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하자.”라고 결심했을 때, 그때가 제가 변한 결정적 순간이었지 않나 싶어요. 전 사실 승무원들에 대한 애정이 많아요. 이 친구들이 당당하게 승무원으로 일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부장 일을 맡았어요.”
민세원의 30S
그녀는 서른다섯, 이제 삼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지만, 다른 KTX 여승무원들은 이십 대이다. 그녀는 삼십 대이면서 이십 대들의 삶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삼십 대 여성의 역할과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우리나라 여성은 삼십 대냐 이십 대냐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도 외모나 기혼/미혼이냐 가 더 중요해요. 미혼인, 외모가 남자들이 보기에 ‘즐거운 또는 괜찮은’ 여성들만 인정을 받고, 그나마 그런 여성들도 비정규직이나 쉽고 싸게 부릴 수 있는 소모품으로 활용되고 있죠. 삼십 대 여성들은 그런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이를 알려 주고 조금이라도 바꿔 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전업주부든 비정규직으로 일하든 전문직을 하든 간에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조직, 여건 내에서 여성의 삶이 바뀔 수 있도록 자신이 무얼 하면 좋을지를 고민해 봤음 좋겠어요. 이십 대에는 뭔가 매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퇴보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거든요. 지금 이십 대인 승무원들이 파업 투쟁을 하는 와중에도 일하지 않으니까 퇴보한단 걱정에 토익, 공부 등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십 대엔 저랬지 생각하죠. 그런데 삼십 대는 좀 더 시야가 넓어지고 경험에 의해 사고를 더 객관적, 이성적으로 할 수 있고, 삶에 대한 중심을 잡아 가는 나이인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을 최대한 하면서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십 대가 되면 뭐가 달라도 또 다르겠죠. 궁금, 불안하기도 해요.”
자신의 이십 대를 되새기고 40대를 그려보는 그녀의 눈에 강한 의욕이나 투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헤어지는 우리에게 깍듯한 인사 대신 따뜻한 포옹을 해 왔다. 그게 그녀의 힘이 아닐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는 것. 그리고 그 품 안에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그녀 말대로 사십 대가 되면 그녀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라면 아마 여전히 사회를 위해, 자기 주변의 세상의 변화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민세원씨를 인터뷰 한 이래로 KTX 여승무원 노조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그와 관련된 기사는 챙겨보는 편이었다. 이 기사 역시 그러했는데..
KTX여승무원 문제에 관한 기사는, 그 기사 내용보다 리플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 많은 네티즌들이 이들에게 이렇게도 잔인하고 가혹할까? 그들은 도대체 신분이 뭐길래, 이렇게도 '사측'의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볼까? 다들, 자신은 비정규직에 갈 일 없고, 여성과 같은 소수자가 될 리 없고, 늘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만 있을 거라 확신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KTX에 승무원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가?승무원의 역할이 '안전관리'가 아니라 방긋 웃어주며 자리나 안내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 KTX 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그때마다 승무원, 안전요원 부족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데...왜 승무원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걸까?
<괴물>의 비극은 괴물이 한강변에 나타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강두(송강호)가 현서(고아성)의 손을 놓치는 데서 시작된다. 관객이 무자비한 괴물과 무책임한 정부를 책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서가 그 끈적끈적한 손에 감겨 한강 둔치 어딘가로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두는 현서의 손을 놓쳤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네가 그러고도 아빠냐’는 비난을 듣는다. 그 말 속에는 아빠라면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보호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서는 아빠의 손을 놓치는 순간 어른들이 알 수 없는 ‘괴물’의 세계로 끌려갔지만 거기서 그녀는 스스로뿐만 아이라 어린 동생을 돌보며 탈출을 기획하며 ‘맥주 한 모금’의 맛을 깨닫는 어른이 된다. 비록 그것이 어른의 상상인지, 아이의 현실인지는 모호할지라도 말이다.
소년, 소녀의 통과의례는 영화화하기에 언제나 매력적인 주제이다.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기에 성장통이 갖는 보편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동시에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주체가 아직은 사회적으로 홀로서지 못한 미성숙한 주체이기에 그들의 성장에는 언제나 부모 혹은 어른들로 대변되는 기존 세계와의 관계 정립이 포함된다. 그런데 2006년 상반기에 눈에 띄는 성장 영화들의 공통점은 부모의 부재 혹은 ‘손을 놓친’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조력자들
조창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피터팬의 공식>은 전형적인 성장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피터팬’이라는 아이콘이 환기시키는 바 그대로, 이 영화는 남성적 자아가 형성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잘 나가는 고교 수영선수였던 한수(온주완)은 어느 날 갑자기 “나 이제 수영 안 해요”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수영장을 떠난다. 수영장에 갇혀 지내느라 오히려 낯설어진 교실에 앉아서 창 밖만 내다보던 그에게 전해진 엄마의 자살기도 소식. 엄마는 삶이 “허무해서”라는 말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의 주소만 쪽지에 남긴 채 혼수상태에 빠진다. 한수는 졸지에 엄마의 병원비와 자신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지만 주변엔 도움을 청할 어른이 한 명도 없다. 다만 그는 옆집 아줌마 인희, 그녀의 딸 민지 그리고 같은 병실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혼수상태의 엄마를 보살피는 미진과의 관계를 통해서 숨을 쉴 뿐이다. 세 명의 여인들은 돌아가면서 그에게 웬디나 팅커벨이 되어 준다.
이 영화에서 한수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이다. 그의 엄마가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그 순간 아들 한수는 모든 의무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그가 마지막 보루로 믿고 찾아갔던 아버지는 다른 가정의 가장이 되어 이미 한수를 잊어버린 상태이다. 사실적인 시각을 견지하기보다 환상적, 상징적인 기법을 빈번하게 차용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한수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수영장의 레인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여유있게 유영하던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와 대조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 속의 한수는 허우적거리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한수에게 닥친 삶의 조건들은 아직 미성숙한 ‘피터팬’인 그를 바다 속으로 팽게친다. 그러나 사실 이 ‘피터팬’이라는 수사는 그에게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피터팬’이란 어른이 되어야할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고 아이로 안주하고 싶어하는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지, 한수처럼 충분히 성숙할 틈도 없이 비자발적으로 어른이 되도록 강요된 청소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피터팬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여건때문에 어른이 되도록 강요받고 방황하는 사이 피터팬으로 내몰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거친 파도 속에서 살아나느냐, 죽느냐에 대한 고민은 온전히 한수의 몫이며, 어른들은 그의 고민을 들어주지도, 현실적인 책무를 덜어주지도 않는다....
내가 사는 일산의 한 동네 입구에도 현란한 채색의 간판을 단 “오션파라다이스” “황금성” 같은 게임장들이 몰려 있었다. “바다이야기”도 물론 있었다. 몇 개월 전 처음에 이사 와서 나는 막연하고도 순진하게, 이 크고 화려한 오락실들이 어렸을 때 다니던 전자오락실이 대형화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코발트색 간판이 하도 눈에 띄게 예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바다이야기”에 같이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바다이야기” 파동이 나서, 그것이 ‘성인’ ‘전자’ ‘도박장’이고 그 ‘성인오락’에 중독되어 파산자가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바다이야기” 같은 전자도박에 우리 ‘국민’이 쏟아 부은 돈이 무려 3조에 달하고 이 큰 액수가 근래 우리 경제의 문제라는 ‘민간소비의 위축’에도 단단히 한몫했다 한다. 얼마쯤 되는지 짐작하기도 힘든, 이 3조라는 돈이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전자 도박에 중독된 비용으로 지출된 것이다. 그 돈이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갔을까?
“바다이야기”는 노골적으로 돈을 갖고 하는 도박이어서 그 중독의 여파가 이처럼 쉽게 경제적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독을 매개로 돈을 쓰게 만들고 돈을 벌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중독의 이율배반
몇 년 전 잘 아는 한 교수가 게임산업의 법적 규제에 대해서 연구하겠다고 찾아왔다. 그 교수는 그 전까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거의 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규제를 말할 자격을 갖추려면 규제대상이 되는 게임이라는 것을 직접 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성실하고 순진한 그를 내심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난생 처음 게임의 세계로 푹 빠져들었다!!! 그가 빠져든 게임은 요즘은 너무 흔한 인터넷 “맞고”의 일종이었다. 두 달 후 그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나 “맞고에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했다.
대부분의 우리는 무엇인가에 진심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칭찬한다. 그러나 몰두가 지나친 사람이 있으면 걱정하게 된다. 몰두가 지나치면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주위 사람과 ‘사회질서’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지나친 몰두가 자꾸 반복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그가 “중독”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중독”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중독을 몰아내야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시에 “중독”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돈벌이 수단이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다. 친척 동생이 게임을 개발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녀석은 “잘 나가는” 게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을 얼마나 그 게임에 푹 빠지게 하는가에 달려있다고 강변을 해댔다. 중독성이 없는 게임은 인기 없는 게임일 것이다.
남을 중독시켜야 큰돈이 된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중독”이 문제라 하면서, 동시에 “중독”을 이용해 경제나 정치에서 성공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독의 이율배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개인의 가치관 문제일까? 이 이율배반은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 사회에서 다 목격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중독의 이율배반은 경제생활과 권력현상에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2007년은 오 년 만에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며, IMF 경제 위기를 겪은 지 십 년, 그리고 6월 항쟁이 있은 지 이십 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에 대한 회고와 변화된 의미 찾기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국에 대한 생각들로, 대중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에 어떤 ‘주기’가 있는 것이라면, 올해 이 땅에서는 또 한 번 거대한 변동이 일어날 조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직장과 대학, 책과 영화, 신문과 인터넷, 그리고 여자와 남자들은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습니다. 돌아보면 마음보다 몸이 변하는 속도가 더 빨랐고, 그보다 세상 변하는 속도는 좀 더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동을 향해 ‘모순’이 착착 누적되고 있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려고 한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새로 태어날 것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수반합니다. 한때는 가장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었던 ‘새로움’이라는 가치는 속도와 손잡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끝없는 현기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기존의 것들에 대한 부정과 혁신적 태도에 대한 요구는, 한꺼번에 몰아닥친 수많은 ‘조정’과 ‘개혁’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좀 더 경제적이고, 좀 더 효율적이고, 좀 더 대중적인 어떤 것이 선한 것이라는 막연한 동의하에, 각자 자기 방식의 경제와 효율과 취미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며 다른 이들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립니다.
간헐적으로 이 새로운 시간을 사는 이들의 의식과 그들이 영위하는 ‘문화’의 의미에 대해 점검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발언하고 네트워킹하는 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블로그와 미니홈피들 그리고 댓글과 UCC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 왔지만, 그 안의 많은 이야기들은 누군가가 이미 뱉어놓은 것들을 복제하거나 추인하거나 엉뚱한 말놀음만 벌이다가 으스러지기도 합니다.
많은 고민과 곡절을 겪은 후에, 기대했던 것보다 반년이 넘어 지나서 무크 <소문>이 나왔습니다. 기다리시던 독자들과 필자들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은 좀 근본적인 의문에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아직도 종이잡지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종이 잡지는 낡은 것이 되어 문화의 주변으로 밀려 나고 있습니다. 앎과 일과 향유는 모두 종잇장보다 더 가벼워져서 ‘디지털’의 공간에 떠돌아다닙니다. <창작과 비평> 세대의 의식과 문화를 지양해야 하는 힘은 단지 내용에만 있지는 않은 것이지요. 거대한 소통 체계의 변화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아직 명징하지 않습니다. 다만 계속 더듬어 나아가며 실험해야 한다는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요. <소문>은 그러한 실험의 하나로서 기획됐습니다.
<소문>의 작은 실험은 우리가 품은 다음과 같은 의문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달라진 삶의 양식과 정치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읽고 묘사할 것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새로운 세대는 ‘386’세대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근본적이고도 비약적인, 동시에 아래로부터 추동되는 저항과 변화는 아직도 가능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진보’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386’세대의 함의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이 외치고 지키려 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난 십여 년 사이에 현실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괴물로 변화해 가는지를 보았습니다. ‘시장’은 삶을 갈가리 찢어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참을 수 없게 떼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세대 안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유지하는 이들과 그 이후의 세대는 어떤 방식의 운동성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인 가치여야 할 자치와 연대는 이러한 과정에서 점점 달성 불가능한 미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3할의 희망과 7할의 낙담이 뒤섞인 심정으로, 우리의 오늘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소문>의 첫 발자국은 우리의 평범한 생각과 몸에 육박해오는 음험한 힘들 앞에 새기려 합니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첫 번째 기획 테마를 ‘중독’으로 정했습니다. 중독은 원치 않는 어떤 행위를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강제하는 자기 자신 속의, 또한 우리 몸 바깥으로부터의 위력적인 메커니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독은 주관과 객관이 극단적으로 만나는 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주제로 여러 가지 논의와 생각해볼 거리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마약ㆍ술과 같은 물질중독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는 보편으로서의 과정중독들, 그리고 이를 강제하는 배후의 힘과 그에 연관된 역사적·정치적·문화적 ‘증상’들까지 아우르고자 했습니다.
이런 기획과 더불어 천명관ㆍ정희진ㆍ로쟈ㆍ신윤동욱과 같은 ‘탈근대’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감각과 위치를 가진 필자들의 다양한 시각과, 공원국ㆍ김국현ㆍ신호철 씨처럼 90년대에 성장하여 21세기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젊은 목소리도 담았습니다.
<소문>의 첫걸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시련의 시간들은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의 과정이었으리라 믿습니다. 많은 격려와 질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