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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4 The Jane Austen Book Club
  2. 2007/10/09 한국 드라마 인기 순위 1990-2007 (3)
  3. 2007/10/05 Dessa Rose (8)
  4. 2007/09/24 여성이 쓴 중세 기사 이야기 (2)
  5. 2007/09/14 미국 의학 드라마의 계보도 (5)
  6. 2007/09/04 슬램덩크와 안 선생 (7)
  7. 2007/09/04 Gilmore Girls (4)
  8. 2007/08/04 Jodi Picoult, 대중소설의 공식 (1)

The Jane Austen Book Club

2008/01/24 11:06 | Posted by 하이腦


The Jane Austen Book Club
★★★★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의외로 적다. 여섯권이 그녀가 남긴 전부다. 그 여섯권의 작품이 숱하게 영화로 텔레비전 시리즈물로 각색되어 유통되었으니,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 작가나 영화 제작자들은 우회로를 택해 '제인 오스틴 열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BBC의 나름 권위있는 각색과 헐리웃판 영화를 울궈먹기란 더이상 불가능해보였을 테니 말이다. (Pride and Prejudcie의 변주인 Bride and Prejudice도 언급할 만하겠으나, 이 작품은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제대로 된 변주라고 보기 어렵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의도 찾기 힘들다.)

<<비커밍 제인>>(Becoming Jane)가 작가 제인 오스틴의 개인사에 치중해서 그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 제인 오스틴을 보여주려 했다면, <제인 오스틴 북클럽>(The Jane Austen Book Club)은 제인 오스틴의 책 여섯권을 나누는 책모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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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출판된 Karen Joy Folwer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논문 쓰다 뻥뚫린 내 가슴을 위로해주던 책이었지), 상당히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인지 책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특히나 각색하면서 소설의 군더더기 살을 잘 빼서 책보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오스틴 소설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책읽기 모임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다섯명의 여자들과 훈남 그릭이 자아내는 이야기가 오스틴의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웠다. 2005년에 책을 읽으면서도 충분히 매료되었지만, 이번에 새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책보다 산뜻하고 아기자기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 

왜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릭을 이렇게 매력있게 그려내지 못했을까 안타까울 정도로 영화속 그릭은 귀엽고 아기자기 사랑스러운 오스틴 소설 속 남자 인물이었다. 다시(Darcy)의 21세기형 현현이라고나 할까? 

프루디는 발음상 prudish란 형용사를 대변하듯, 얼마나 깍쟁이처럼 잘 나왔는지! (Emily Blunt란 배우에 대한 관심까지 생겼다.) 또, 프루디는 여기 모인 여섯명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영문학과 수업방식대로' 북클럽을 진행하는 인물이다. 알레그라가 "에마는 속물이라 싫어!"라고 하자, 프루디는 "책을 토론하는 자리가 고등학교 인기투표 자리가 아니"라고 일침을 놔버리는 순간도 참 재밌다. 이들 책모임을 들여다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을 때 던지고 싶은 질문들을 대신 듣게 되어 속이 후련해진다는 점도 영화의 강점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오스틴은 왜 결혼 후는 쓰지 않는가? 그녀는 작가로서 어떤 자의식을 갖고 어디까지 쓰려고 하는가? 매리앤의 엄마는 어느 정도 이성과 감성을 갖춘 인물이었을까? 류의 질문들 말이다.  그런 질문들을 쏟아내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저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졌으면서도 질적으로도 꽤 알찬 독서클럽 하나 가져보고 싶단 소망을 하게 된다.  (맥락 외의 이야기지만, 시트콤 Joy에서 Joy가 맘에 드는 여자를 꼬시려고 북클럽에 가입하는 대목, 그리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설득>>(Persuasion)으로 끝을 내면서 작품속 인물들의 화해를 그린 것은 인위적이랄 수도 있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마무리였다. 문학작품의 치유효과에 대해서 부담갖지 않고 담담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과 영화의 매력은 제인 오스틴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 한들 (혹은 들었다 한들), 다시 그녀의 책을 손에 쥐고 천천히 제인 오스틴의 문체를 음미하고 싶어지게 한다는 데 있다. (나같은 경우 Pride and Prejudice는 지겨워서 더 못읽겠지만, Emma와 Persuasion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디 이런 흥미진진 북클럽 없을까나?
'이론'에 대한 강박없이, 마구 떠들어댈 수 있는 북크럽. 살면서 겪는 마음의 고민과 상처를 해독시켜줄 북클럽이 해보고 싶어졌다. 그릭같은 남자 한 명 있다면 금상첨화! 므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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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인기 순위 1990-2007

2007/10/09 06:00 | Posted by 하이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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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2007년까지 시청률 베스트 순위입니다.


01위 : 첫사랑 (KBS2) ------------- 65.8% (1997년4월20일)(최수종,배용준)
02위 : 사랑이 뭐길래 (MBC) ------- 64.9% (1992년5월24일)(최민수,하희라)
03위 : 모래시계 (SBS) ------------ 64.5% (1995년2월6일)(고현정,최민수)
04위 : 허준 (MBC) ---------------- 63.7% (2000년6월27일)(전광렬,황수정)
05위 : 젊은이의 양지 (KBS2) ------ 62.7% (1995년11월12일)(이종원,배용준)
06위 : 그대 그리고 나 (MBC) ------ 62.4% (1998년4월12일)(박상원,최진실)
07위 : 아들과 딸 (MBC) ----------- 61.1% (1993년3월21일)(최수종,김희애)
08위 : 태조왕건 (KBS1) ----------- 60.2% (2001년5월20일)(최수종,김영철)
09위 : 여명의 눈동자 (MBC) ------- 58.4% (1992년2월6일)(채시라,최재성)
10위 : 대장금(MBC) --------------- 57.8% (2004년3월23일)(이영애,지진희)

11위 : 파리의 연인(SBS) ---------- 57.6% (2004년8월15일)(박신양,김정은)
12위 : 보고 또 보고 (MBC) -------- 57.3% (1998년10월12일)(김지수,정보석)
13위 : 진실 (MBC) ---------------- 56.5% (2000년2월24일)(박선영,최지우)
14위 : 질투 (MBC) ---------------- 56.1% (1992년7월21일)(최수종,최진실)
15위 : 바람은 불어도 (KBS1) ------ 55.8% (1996년2월26일)(최수종,유호정)
16위 : 목욕탕집 남자들 (KBS2) ---- 53.4% (1996년8월25일)(이순재,강부자)
17위 : 국희 (MBC) ---------------- 53.1% (1999년11월16일)(김혜수,정선경)
18위 : 청춘의 덫 (SBS) ----------- 53.1% (1999년4월15일)(심은하,유호정)
19위 : 토마토 (SBS) -------------- 52.7% (1999년6월3일)(김석훈,김희선)
20위 : M (MBC) ------------------- 52.2% (1994년8월30일)(심은하)

21위 : 폭풍의 계절 (MBC) --------- 52.1% (1993년12월22일)
22위 : 야인시대 (SBS) ------------ 51.8% (2002년12월9일)(안재모,김영철)
23위 : 엄마의 바다 (MBC) --------- 51.6% (1993년12월26일)(최민수,고현정)
24위 : 야망의 전설 (KBS2) -------- 50.2% (1998년10월25일)(최수종,유동근)
25위 : 여인천하 (SBS) ------------ 49.9% (2001년11월13일)(강수연,도지원)
26위 : 아들의 여자 (MBC) --------- 49.7% (1994년2월22일)
27위 : 용의 눈물 (KBS1) ---------- 49.6% (1998년5월30일)(유동근,김무생)
28위 : 별은 내가슴에 (MBC) ------- 49.3% (1997년4월29일)(안재욱,최진실)
29위 : 야망 (MBC) ---------------- 49.0% (1994년2월23일)
30위 : 서울의 달 (MBC) ----------- 48.7% (1994년3월27일)(한석규,최민식)

31위 : 정때문에 (KBS1) ----------- 48.7% (1997년12월11일)(이재룡,하희라)
32위 : 마지막 승부 (MBC) --------- 48.6% (1994년2월22일)(손지창,장동건)
33위 : 이브의 모든 것 (MBC) ------ 48.3% (2000년7월6일)(장동건,채림)
34위 :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SBS) 48.2% (1993년5월25일)
35위 : 신데렐라 (MBC) ------------ 48.0% (1997년7월13일)(황신혜,이승연)
36위 : 인어아가씨 (MBC) ---------- 47.9% (2003년2월5일)(장서희,김성택)
37위 : 올인 (SBS) ---------------- 47.7% (2003년4월3일)(이병헌,송혜교)
38위 : 사랑할때까지 (KBS1) ------- 47.1% (1997년2월27일)(류시원,전도연)
39위 : 파일럿 (MBC) -------------- 46.2% (1993년11월2일)(최수종,이재룡)
40위 : 딸부잣집 (KBS2) ----------- 45.9% (1995년1월22일)(하유미,변소정)

41위 : 마지막전쟁 (MBC) ---------- 45.5% (1999년9월7일)(강남길,심혜진)
42위 : 미스터Q (SBS) ------------- 45.3% (1998년7월16일)(김민종,김희선)
43위 : 사랑을 그대품안에 (MBC) --- 45.1% (1994년7월12일)(차인표,신애라)
44위 : 왕과 비 (KBS1) ------------ 44.3% (2000년3월11일)(안재모,채시라)
45위 : 장미와 콩나물 (MBC) ------- 44.1% (1999년9월5일)(손창민,최진실)
46위 : 신고합니다 (KBS2) --------- 43.4% (1996년8월20일)(이휘재,구본승)
47위 : 이 여자가 사는 법 (SBS) --- 43.1% (1995년3월6일)
48위 : 장희빈 (SBS) -------------- 42.9% (1995년9월26일)(정선경)
49위 : 코리아게이트(SBS) --------- 42.5% (1995년10월22일)
50위 : 천국의 계단 (SBS) --------- 42.4% (2004년2월5일)(권상우,최지우)

51위 : 가을동화 (KBS2) ----------- 42.3% (2000년11월7일)(송승헌,송혜교)
52위 : 예감 (MBC) ---------------- 42.3% (1997년10월21일)

* 분석해 봅시다.

1. 방송사별 : MBC(26), KBS(13), SBS(13)

2. 배우별 : 최수종(7), 최진실(4), 최민수(3), 김영철/김희선/배용준/송혜교/심은하/안재모/유동근/유호정/이재룡/장동건(2)

3. 연도별 : 92(3), 93(5), 94(6), 95(6), 96(3), 97(6), 98(5), 99(5), 00(5), 01(2), 02(1), 03(2), 04(3)
                (94년 ~ 00년까지가 절정이고, Mass 드라마의 시대는 끝나고 있는듯)

4. 시청률 : 60%(8), 50%(16), 40%(28)

========
저는 이 중에서 스물여덟개 편을 봤네요;;; 세고 보니 많군효.
그런데 <첫사랑>을 안 본 게 참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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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첸씨 2007/10/09 08:23

    정말 분석의 욕망을 자극하는 자료입니다... 제게 저중에 가장 기억나는 단 한편을 꼽으라면 "Boys be ambitious"라는 한석규의 대사로 끝나는 <서울의 달>입니다. 코믹과 멜로에 비극적 '현실'이 하모니를 이뤘지요.

  2. BlogIcon coolya 2007/10/09 10:10

    음,,저는 제대로 본 건 35편정도군요. 나머진 보다 말았던 것들이고...좋은 자료입니당~제가 앞으로 써볼까 하는 <매혹의 법칙>이란 글에도 유용할것 같아요~하이뇌님 감샤~~^^

  3. BlogIcon coolya 2007/10/09 10:29

    00년 이후 매스드라마의 시대가 끝난건 아무래도 케이블티비의 확산으로 다채널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겠지요...그래서 지금은 30퍼센트만 넘어도 완전 흥행드라마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50%를 넘는 00년이후 드라마들은 약간은 대중들의 '오기'와 '기록갱신'욕망도 작용하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파리의 연인>같은 작품이 평균시청률은 30% 중후반이었을텐데요, 마지막회로 치달을때 어찌나 언론들이 40%넘길까?-넘겼다!, 50%넘길까?-넘겼다! 식으로 대중들을 자극했던지...<태극기..>, <실미도>, <왕의남자>같은 영화를 천만관객을 넘기도록 만드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었던 것 같습니다.

Dessa Rose

2007/10/05 00:45 | Posted by 하이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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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Toni Morrison만큼이나 중요한 미국의 현대 여성 작가인 Sherley Anne Williams의 작품입니다. (갑자기 빨강머리 앤이 자기는 우아하게 e가 뒤에 붙는 Anne이 그냥 Ann보다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Sherley란 성이 얼마나 상상력이 부족한 성인가를 마릴라에게 설득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쨌거나, 영어로 썼지만, 그럭저럭 읽히길 바랍니다횻.) 흑인 도망 노예와 그녀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백인 여성의 우정이 성립하는 과정을 나름 세밀하게 그린 소설. 실제로 뮤지컬도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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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n this novel, Dessa Rose, we are led to a more intricate friendship between Dessa and Ruth. Of course, it took more than 200 pages and struggle for both protagonists to identify themselves with the very names I so conveniently put here. Unlike the excess perpetrated by Sethe and Beloved in Tony Morrison’s Beloved, I find it rather subtle and satisfying the way Dessa and Rufel came to mutual understanding in the course of the plot.

After escaping the lustful grasp of Nehemiah (it might be the second flee), Dessa took an unwilling shelter under the wing of an insecure white woman, Rufel. Finding the unknown white woman to breastfeed her own baby, a “negro,”Dessa was dumbfounded. She could not understand how and why the white woman breastfed, if not touch, the black baby. That Rufel nursed the baby (later named Desmond Kayne) was the reverse of customary black wet nurse (for Dessa as well as me). It was interesting to see Rufel, with full reminiscence of her Mammy and typical white prejudice against the black, enjoy the moment of breastfeeding and naming Dessa’s child. Contrary to Rufel, Dessa callously dismisses any opportunity to know the white woman. (“But if she understood the white woman, she would have to. . . have to do—Something And—” 114.) Dessa knew and refused any obligation following such understanding.


And the scene in which Dessa and Rufel argued about the name of Mammy was intriguing. Here Rufel, who cherished so much of her memory with Mammy, got slapped in the face by Dessa’s heated argument that “Mammy ain’t nobody name, not they real one” (119). Of course these two women were arguing about two different mammies, but the argument itself led to rather unintended consequences. First, Dessa’s rather harsh but angled argument betrayed Rufel’s ignorance not only to Mammy but her husband (in the later chapter of the novel). Here Dessa boasted over her detailed knowledge about her own Mammy. Her name Dessa remembered. Second and more importantly, this scene brought up more serious issue: motherhood under the slavery. In the same vein with Beloved’s emerging motif, Dessa Rose incessantly unearthed the inconvenient truth about motherhood before readers: No black mother can raise up her own children. Nada. However stubbornly she wanted to cling to the memory, Rufel had to admit the brutal crime that white people committed against black race. Her admission does not necessarily deny her precious memory that “Mammy, through caring and concern, had made Rufel hers, had laid claim to her affections” (147).


Dessa, on the other hand, had to learn that she was not the only one suffering from the slavery. After she witnessed the love-making between Nathan and Rufel, she contemptuously named her “Mizz Ruint[Ruined]”. That drove Rufel crazy. She in the first place had no room for understanding that relationship could be natural. Rufel was seen in her eyes another would-be-cruel mistress. And then, she knew that white women also were vulnerable to male violence; they can also be easily violated.  After Oscar-Happening, they came to mutual understanding, enjoying the presence of each other. That is depicted well in the climactic revelation:

“My name Ruth,” she say, “Ruth. I ain’t your mistress.” Like I’d been the one putting that on her.

“Well, if it come to that,” I told her, “my name Dessa, Dessa Rose. Ain’t no O to it.” I didn’t even not think about my tongue. This was the way she was, you see, subject to make you mad just when you was feeling some good towards her. And she was good. (232)

They were finally bonded in “womanhood,” which Nehemiah disdained in the end of the novel. Someone might complain the way Dessa and Ruth came to friendship and further bond was too aesthetically structured.  I enjoyed, however, this unexpected bildungsroman. At least it was not so “thick” claim as shown in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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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영어!!! 2007/10/05 09:37

    하이뇌님 ,영어로 글을 쓰시다닛...대단합니다!!!^^(저는 사전찾아가며 읽겠슴다~)

  2. 2007/10/05 10:36

    breastfeed... It's first time I wonder, how would it feel to breastfeed your own baby, or any baby. Can woman feel some fluid going out of her body? It's really interesting, and no man can experience it!!
    Caring baby inside one's body is amazing too. But breastfeeding... It seems kind of self-sufficient system! I wish someday later, some VR device comes out to experience being a woman. It's pity, that we can't share our body experiences.. :)

  3. BlogIcon heine 2007/10/06 13:40

    기인, frankly I have no idea what it would be like breastfeeding one's own child. but i heard a lot from those undergoing breastfeeding themselves that it involves DEFINITELY unbearable soreness and causes lack of sound sleep. as for newly-borns, you have to breastfeed them every two hours, which sounds obviously NOT pleasant at all. to me it seems quite scary, even after reading those sceneric depiction of breastfeeding in novels.

    Anways, the point of the novel is the fact a white woman, the former slave owner, breastfeeding a black baby. it was quite the reversal image, as i had put earlier above, of tradition black Mammy.

  4. 2007/10/06 21:46

    So you can't feel the fluid run out of your body.. hm;;;
    Ya I heard that, when you get a baby you can't have much sleep..
    and all those responsibilities!..
    pains also..

    But somehow my girlfriend kind of talked me into it ^^; Hope I can get one someday~ They say, especially women ususally say that having a baby was one thing they don't regret. I wonder that is true.. Maybe that's only voice we can hear...

    Like marriage, having baby is something you do and regret, or you don't do and regret it.. They say... So just do it... hm..
    Nowdays its kind of my inquirities.. ^^;
    You can give me some advices about it :)

  5. @.@ 2007/10/08 13:24

    점입가경임미다~!!!누구 소외감 느끼라고 이런 영문대화를......ㅋㅋ저도 못봤습니다만, 지난주 토요일 <그것이 알고싶다>의 주제가 "내 아이가 죽도록 밉다"였다던데요...못봐서 아쉽지만 궁금하더군요...모성애라는 게 마치 '천부'적인 '본능'인 것처럼 만드는 '모성신화'가 얼마나 오랜 세월 여성들을 억압해왔는가...나혜석도 생각나고요.

  6. 2007/10/08 14:09

    네~ 머리 아파요 ㅋ
    인생 두번 살아볼 수도 없고 참. 모성애이든 부성애이든, '애'보다는 우선 지금은 있지도 않으니까 책임감인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을지... 요즘은 절에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입니다. 쩝;;

  7. BlogIcon heine 2007/10/08 20:57

    점입가경은 아닌디...흐흐...그나저나 긴쿤께서 제 말을 달리 해석하신 것 같군횸. 그냥 저는 단순히 젖을 먹이는 행위를 여성만의 자족적 행위라고 보기가 어렵구..그걸 너무 이상화하는 게 거시기 하다는 댓글이었지요.

    뭐 닥치면 다 하기 마련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뭐 기쁨이 있겠죠, 당연히. 저는 그게 너무 이상화되는 게 싫다는 거죠. 여성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행위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답고...뭐 자족적이다, 라고 명명하는 게 남자들이 쉽게 '성녀화' 해버리는 전형적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요. @.@님의 말씀처럼. 뭐 그렇게 아름다운 일이면, 젖을 맘편히 먹일 수 있는 곳을 좀 설치해주시든지. 사실 젖먹이를 둔 많은 엄마들이 집 밖을 나가면 마땅히 젖먹일 곳을 찾지 못해 고생이잖아요. (작품과 관련 없는 글들이 주루룩...)

  8. 2007/10/09 12:45

    응 그네요~ 그게 성녀화일수도 있겠네요. 실제 현실은 너무 깝깝할텐데..

    제가 가끔 '여성'이 되고 싶다거나,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한 동경(?)내지 호기심을 갖는 것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지만 소유욕이거나 내가 되고 싶은 것은 20대 미모의 여성만으로 한정되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대 여성이 되어보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일종의 판타지죠.

    CHANGE 같은 영화처럼..
    트랜스젠더 분들은 '예쁜 여자'가 되고 싶은 건지, 그냥 '여자'가 되고 싶은 건지, 이게 경계가 애매하기도 하고, 예전에 누나가 말한것처럼 하리수같은 분들은 과도(?)하게 성적인 여성성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은데..

    예쁜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 예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 흠..

여성이 쓴 중세 기사 이야기

2007/09/24 00:26 | Posted by 하이腦
[중세문학 이야기]

마리 드 프랑스는 여성주의 비평이 힘을 얻으면서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 여성작가이다.  그녀가 프랑스 어로 시를 썼기 때문에 과연 영국 중세문학의 갈피에 끼워넣을 수 있느냐의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12세기 영국의 문맥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이제는 중세 영문학 시간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영문학과의 필독서 또는 must-have (or must-carry)인 Norton Anthology 8판에도 그녀의 글이 실렸다고 하니, 나름 정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 마리 드 프랑스는 14세기 시인 초서에 비견되는 여성작가이이기도 하고, 남자 작가들이 때때로 보이는 일방적 관음증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에서 섬세하게 글을 썼다는 점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여성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야심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도 하고 이 책에 담긴 Chaitivel과 같은 이야기시에선 궁정식 사랑(courtly love)의 구도에서 수동적인 입장만 요구받는 여성이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선 11편의 이야기 중 기사 랑발의 이야기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수업 발제문을 약간 고친 것!^^)


Marie de France의 Lais: 기사를 기사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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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서언과 열한 편의 이야기로 짜인 마리 드 프랑스(Marie de France)의 『이야기』(The Lais)는 사랑의 충만함과 이지러짐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사랑을 모르던 한 기사는 사냥하다가 치명적 부상을 입어 사랑을 강제적으로나마 배우게 되고, 인내와 우연의 개입을 통해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된다(Guigemar). 어느 연인의 사랑은 보답되지만(Lanval, Yonec), 또 다른 지순한 사랑은 보답되지 못한 채 산에 묻히기도 한다(Les Deus Amanz). 어떤 사랑은 정도가 지나쳐서 끔찍한 최후를 맞기도 한다(Bisclavret, Equitan). 누군가의 외도는 사랑으로 칭송되지만, 또 누군가의 사랑은 부덕함으로 지탄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랑의 면면만큼이나 그 길이와 구성 방식 또한 다양하다. 어떤 경우는 사랑을 돕기 위해 초자연적인(현대의 눈으로 보건대 비과학적인) 대상물도 등장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민화적 소재에 흥미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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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대식 낭만 이데올로기의 원형이라 불리는 중세 로맨스의 ‘개인간의 사랑’이, 혹은 쉽게 이름 붙이는 ‘사적’인 감정이 마리 드 프랑스의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인가? 12세기 중후반의 유럽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궁정식 사랑이 사적 감수성의 전형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열 한 편의 이야기 모두 기사와 기사를 둘러싼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손쉽게 근대적 사랑의 모태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 이들의 사랑을 둘러싼 사회 구조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글은 궁에서 내쳐졌던 기사 Lanval의 이야기를 통해 봉건제 내 후원인-피보호인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세의 견고한 후원인-피보호인 관계 내에서는 가장 내밀한 개인간의 감정도 개인적 영역으로 남아있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이러한 사회망 내에서 중개인(go-between)으로 오가는,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요정여왕과 Guinevere, Guildeluec과 Gualadun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영주-가신의 관계망에서 어떤 전복적 힘과 한계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도 Andreas Capellanus의 가르침처럼 청년을 유능한 기사로 성장하게 하는 교육 효과를 지니지만, 크레티엥(Chretien de Troyes)의 로맨스와 다르게 여성인물의 역할이 적극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두 이야기의 문제적인 결말을 통해 기사도의 지향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랑발」: 버림 받은 기사의 회복기
「랑발」은 『이야기』에 수록된 열한 편의 이야기 중 유일하게 아서 왕의 궁전과 그의 기사를 다룬다. 크레티엥의 전작이 아서 왕의 기사들에 할애된 것에 비하면 마리 드 프랑스가 아서 왕의 궁전에 보이는 관심은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이 유일한 아서 왕 이야기에서 아서의 기사 중 한 명인 랑발은 아서의 관대함에서 제외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후원인-피보호인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군주는 자신의 가신에게 충분한 물질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아서는 랑발을 제외한 모든 가신들에게 넉넉하게 쓸 것을 (심지어 아내까지) 제공하는 군주임이 드러난다.

He[Arthur] gave out many rich gifts:
To counts and barons,
Members of the Round Table—
such a company had no equal in all the world—
he distributed wives and lands,
to all but one who had served him.
That was Lanval; Arthur forgot him,
And none of his men favored him either. (13-20행)

그러나 랑발은 잊혔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의 용맹스러움, 관대함, 그리고 아름다움 모두 너무나 탁월해서 다른 가신들의 질투를 받을 정도였는데 아서는 그를 잊었다. 랑발은 아서 왕에게서 어떤 물질적 후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곧 그곳을 떠나야 했다. 실제로 그는 “높은 지위를 가진 왕의 아들이었지만, 유산을 기대할 수 없는”(the son of a king of high degree / but he was far from his heritage) 지위였기 때문에 아서 왕의 궁전으로 흘러들어 그의 기사가 된 것이다(27-28행). 당시 장자 상속에 밀린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군주의 궁에 들어가 자신의 용맹스러움과 기량을 증명해야 했다. 랑발은 본디 갖추고 있는 기량 때문에 동료 기사들 사이에서 견제되었던 것에 반해, 왕은 그 기량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군주의 눈밖에 나는 일은 기사 로맨스에서 흔한 줄거리일 수 있는데, 주인공 기사 주변에 동료 기사가 없다는 것은 남성간의 관계가 중시되는 기사들의 세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를 견제하는 다른 기사들에게서 모함을 받은 엘리둑도 홀로 궁전을 빠져 나오지 않았다는 게 랑발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랑발의 고립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해본다면 첫째, 랑발은 자신의 밑에서 섬길 부하를 거느릴 자금이 없었다. 둘째, 요정여왕을 만나기 전 랑발은 사랑을 알지 못해 진정한 기사라고 인정되지 못했다. (사랑을 알아야 진정한 기사가 된다는 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예) Troilus and Crysede의 트로일러스나 Guigemar) 셋째, 이 이야기의 후반부에 귀네비어가 접근하는 것으로 보건대 사실 그는 여왕의 총애를 받아서 질투에 눈이 먼 아서 왕이 그를 고의로 잊은 것일 수 있다. 어느 것이 가장 큰 이유인 줄은 모르겠지만, 아서 왕의 재원을 나눠 받지 못한 랑발이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분명하다.
어찌 됐건 랑발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되어 Cardoel을 떠나 들판으로 온다(43-44행). 자신의 말도 건너길 거부하는 강 앞에서 그는 홀로 누워 고민한다. 마리 드 프랑스는 랑발의 고립 상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때 진한 자줏빛 옷을 입은 여인들이 그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요정 여왕이 있는 곳으로 랑발을 이끈다. 요정 여왕은 적극적으로 랑발을 찾아와 그를 사랑했다고 고백하고, 그가 그녀의 사랑에 성실하게 반응한다면 어떤 것이든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랑발은 의무성실이행을 약속한다. 물론, 그것을 말로 약속하기 전에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Lovely one,” he said, “if it pleased you,
if such joy might be mine
that you would love me,
there is nothing you might command,
within my power, that I would not do,
whether foolish or wise.
I shall obey your command;
For you, I shall abandon everyone. (121-28행)

이들이 사랑의 서약이 군주와 가신의 보호-충성 서약과 전혀 다를 바 없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계약을 맺음으로 랑발은 훌륭한 후견인을 얻었다. 버림받은 기사를 요정 여왕이 거둬서 먹이는 대목은 마리 드 프랑스의 안도와 함께 잘 드러난다(Now Lanval is well cared for. /The more lavishly he spends, / the more gold and silver he will have. 140-42행) 랑발은 이제 충분한 재원을 확보했고, 그가 요정 여왕의 계약 조건만 충실히 이행한다면, 곧 기사로서의 입지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보여준다. 요정 여왕은 그를 자신의 궁전에 오래 두지 않고 랑발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낸다. 요정 여왕이 랑발을 제외한 다른 남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그가 요정 여왕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만 한다면 그녀의 관대함은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은 남성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를 성숙시키는 외부 기제(deus ex machina)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름다운데 관대하고, 관대하면서 오직 한 남자만을 위해 봉사하는 여왕은 궁정식 사랑에서 기사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여인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얻고, 돈을 얻은 랑발은 이제 원탁의 기사들을 떠날 때의 어리석고 세련되지 못한 기사가 아니다 (“he was no fool, no boor”177행). 177행으로 추정해보건대, 랑발은 돈도 사랑도 몰랐기 때문에 그가 본디 갖추고 있던 덕성으로도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돌아온 랑발은 요정 여왕이 제공해준 재화로 수많은 사람들을 자기 궁으로 끌어 모은다. 이 지점에 오면 랑발이 아서와 동등한 후원자/영주의 자리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랑발이 주체가 되어 모든 행동을 한다.

Lanval gave rich gifts,
Lanval released prisoners,
Lanval dress jongleurs[performers],
Langal offered great honors.
There was no stranger or firend
To whom Lanval didn’t give. (209-14행)

기사에서 준 영주의 자리까지 성장한 랑발은 이제 마지막 시험을 남겨둔다. 자신을 잊은 적이 있던 아서의 여왕(귀네비어)의 유혹 앞에서 랑발이 끝까지 군주-가신의 서약을 지킬 수 있는지를 요구 받는다. 그가 이 유혹을 이길 때 아서 앞에서도 충직한 가신이 되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자신이 섬기는 요정 여왕과의 계약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랑발」에서 보여지는 사랑은 개인적 사랑일 수 없다. 계약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까. 여왕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길 거부하고, 자신의 요정 여왕의 아름다움이 낫다고 이야기한 랑발은 다시 고립된다(Lanval was alone and forlorn, / he had no relative, no friend. 398-99행). 왕에 대한 충성을 지키기 위해 귀네비어를 모욕하게 된 랑발은 도리어 왕의 분노를 산다. 왕의 분노를 해결하는 것이 아서 궁의 ‘정의’(436행)이기 때문에 랑발이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그는 다시 아서 궁에서 쫓겨나야 한다. (*기사가 되는 길은 험난하고나!) 그러나 때에 맞춰 도착한 요정 여왕과, 그때까지 두 군주에게 충성스러움을 보여준 랑발의 덕성 때문에 그는 구출된다. 요정 여왕은 현실의 왕과 그의 가신들에게 경외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요정 여왕은 랑발의 충성심을 제대로 알아 보지 못하는 아서와 아서의 기사들을 꾸짖고는 랑발과 함께 아발론(Avalun)으로 떠난다. 이 결말부만 보면, 아서의 궁으로 대변되는 현실 정치에서 랑발처럼 성실한 기사가 도리어 오해받고 고립되는 상황을 고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랑발이 요정 여왕을 만남으로써 권력관계에 적합한 기사로 성숙했다면, 그의 남다른 도덕적 고귀함은 현실 정치에 그리 맞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랑발과 같은 기사가 정착할 곳은 이상향에 가까운 아발론일 뿐이다. 마리 드 프랑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요정 여왕과 랑발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 주기보다, 무엇이 기사를 기사로 만들어 주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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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07/09/24 18:23

    오.. 요정여왕 이야기 흥미롭네요~ 이영도 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주변부 인물 설정에 도용된 것이 있는데, 이영도 소설 읽다가 춘향전이나 반지의 제왕 설정을 적극적으로 변용하여 재미주는 것들이 좋았는데 ㅎㅎ 이영도 "드래곤 라자"나 그 후 작품 추천 :)

  2. BlogIcon 짐씨네 2007/09/26 13:00

    마리 드 프랑스의 이 작품이 Norton에 올라와 있는 건 이 작품만은 영어로 된 작품이라서인가요? 아니면 로망스 문학의 전통속에 있어서 번역판이지만 영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사랑과 돈이 덕성을 입증해주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건 시대를 막론한 현실 논리인 모양이군요. 그나저나 초반에 있는 '개인간의 사랑'이 그림 덕에 절묘하게 띄어쓰기가 되어서 한동안 犬人間으로 읽으며 랑발이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기사인가라는 얼통당토 않은 생각을 수초간 했다는 ^^;

intro

서른 해 남짓 살아오면서 생물, 화학엔 전혀 관심도 재능도 보이지 못했다. 노란 싹수와도 같은 관심이 잠시 부끄럽게 고개를 내민 적도 있었으나 그 관심은 관심에 합당한 점수로 보상/응답되지 못했다. (호르몬의 체계는 아름다웠지만, 어느 호르몬의 부작용이 무엇인지는 외우는 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이거나, 번지수 잘못 찾은 사랑이 바로 순수과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니 이 알량한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 대학에 올라와서 과학탐구영역 한뭉치에 해당하는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건 해방이었다. 과정이 가상해도 답이 틀리면 틀리고마는 과목과 거리가 먼, 썰을 풀 수 있는 과목을 전공으로 삼을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절대 정답이 있을 학문에 대한 목마름이 참 커졌다. 스도쿠를 하다가 수학을 잘 할 것이란 착각과도 같은 그런 심리일 것. 그럴 때 찾아온 것이 미국판 의학 드라마였다. 미국판 의학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병리학의 기초는 이해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무식한 인문대생에게 심어주는 놀라운 교육 효과를 갖고 있다. 특히 House는 하우스 선생님과 함께하는 CSI의 병원판이 아닐까 싶다. 척척박사 하우스 박사님과 함께하는 병리학 시간. 짜잔 오늘은 우리의 하우스 박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하우스 박사님께 바로 직행하기 전에 내가 사랑해왔던 미국 의학드라마의 맥을 따라가보자. (사실 열심히 본 게 ER, Grey's Anatomy, House이므로 요 세 가지 드라마만 이야기 할 것이다. General Hospital을 못 본 게 심히 안타까운.)

 
ER
(199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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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병아리 미드 팬에게 처음 찾아온 것은 ER이었다. ER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공중파를 탔던 것 같은데, 어렴풋이 보다 말다 했고, 굳이 TV에서 사람 죽는 응급실을 봐야겠냐는 아버지의 역정에 지레 겁먹고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후 다시 다른 경로로 ER을 시즌 4까지 보면서, 병리학은 몰라도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하는 검사 용어인Chem 7, 삽관intubation이란 말을 알아듣는 나름 기특한 경지에 올라섰다. (호르몬 종류와 담당 기관도 못 외우는 주제에) 사실 ER은 13년이란 방영 햇수만큼이나 끈질긴 권위를 가진 의학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긴박한 스피드 (항상 ER의 상황은 응급실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포착한다! 응급실이 늘상 그렇게 일분 일초를 다투는 게 아닐 진대.)와 이글이글한 동료애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연애 작대기로 가득 찬 공간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펼쳐보인 게 이 드라마가 아닐까. (사실 이 드라마와 함께 General Hospital의 장구한 역사와 수용자층, 그리고 결말도 이야기해봐야 겠는데, 워낙에 이 드라마엔 문외한인지라 잠시 스킵) ER의 배경이 되는 병원은 늘 부족한 재정과 의료진에 시달리고, 그곳에 근무하는 의사도 카터 말고는 부요한 사람이 없는 참으로 보기 드문 병원이다. 누군가는 숨기고 싶은 못난이 가족이나 밝히고 싶지 않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고, 또 누군가는 갚아야 할 학비 융자금이 산적해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곧 무너질 것 같은 결혼생활을 간신히 지탱해 간다. 의사는 부자/곧 부자(would-be-rich)라는 90년대 한국의 일반상식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는 드라마였다. 아~의사도 저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안겨준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의 팍팍한 삶은 닥터 그린이 늘상 통근할 때 이용하는 시카고의 을씨년스러운 지하철역 이미지로 잘 드러난다.  의사 선생님이 아우디도 아니고, 비엠더블유도 아니고 지하철을 타셨다. 그리고 공격적인 시카고의 겨울 날씨가 이들의 삶의 비극성을 한층 고조시킬 때도 있다. (폭설에 사고가 나서 안 그래도 손 달리는 병원이 급물자부족, 급의사부족을 경험하곤 하니까.) 그리고 이 병원에 찾아드는 환자층은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 부모에게 학대 받는 아이, 가난해서 문제 많은 미국 의료보험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어느 시즌에선가 루시 리우가 무명시절 영어를 잘 못하는 이민자로 나와서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신인 시절엔 다 어려운 게다) 어쨌든 이 징글징글하게 가난한 병원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기 시작했는지, 2005년부터 방영된 Grey's Anatomy는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워진다.

Grey's Anatomy
(2005-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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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타이틀롤을 맡은 닥터 그레이가 인턴으로 일하게 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은 ER이 위치한 팍팍한 시카고의 느낌과는 대비되는 좀더 부드러운 시애틀에 위치한다. 잠못 이루는 도시라지 않던가. 병원은 예산이 아주 넉넉해보이는 사립병원이다. 이곳에서 치프들은 과장 자리를 놓고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외교적으로 경쟁을 벌이고, 그걸 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과장은 다른 병원에서 다크 호스를 데려다 앉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주 관심은 과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정치게임도, 치유의 과정에도 있지 않다.

ER에 비하면 아주 호사스런 병원에서 어떻게 우리 젊은 인턴들이 연애를 하시는지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다. 아주 경쟁적이고, 아주 똑똑한 20대 중후반의 인턴들은 그들의 의학적 지식을 시청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그들이 똑똑한 건 알고 들어간다. (All that matters in this drama seems to me is who f****ed whom.)  내 개인 취향으로 볼 때, 닥터 오말리를 제외하면 모두 선남선녀 핫걸/핫보이가 드글드글 모인 인턴집합소이다. 누구는 병원에 들어와 완전 똑똑한 상사 레지와 자고 보니 임신이되고, 또 누구는 원나잇 스탠드 상대였는데 알고보니 담당 레지였고, 더 알고보니 그는 이혼도 안 한 유부남이었다는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또 처절하게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힘들게 의사가 되어 들어온 금발머리 의사는 환자와 사랑에 빠지나 그 환자가 죽어버려 실의에 빠진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마음껏 빠진 뒤, 뒷감당을 못해서 마구 괴로워하는 20대의 피곤함을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남자의사 앞에 Mac-이란 접두사를 붙여 별명을 짓는 새로운 작명법을 선보이기도 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MacDreamy, MacSteamy 등이 있겠다.) 시즌3은 샌드라 오의 결혼 참사(marriage-fiasco)로 막을 내려서, 성질 급한 팬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으나 무심하게도 아직 시즌4는 방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이상 많은 연애전선과 Grey가 매 에피소드 말미에 붙여주는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연애에 대한 어줍잖지만 귀여운, 때론 감동을 주는 조언들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다. 이제 하우스 박사님의 세계로)

House MD
(2006-Present)

잘은 모르지만 House는 이런 의학드라마의 지난한 역사과 각축장에서 어떻게 '새로운'면모를 보여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드라마다. (고백: 아직 시즌1 15화까지밖에 못 보았음.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려구횻)

프린스턴의 Teaching hospital이란 점에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의 연속선상(병원은 깔끔하고 예싼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 있지만, 연애구도를 최소화 하려고 애썼다. 하우스가 이끄는 진단의학과 팀을 보면 하우스를 포함한 남자의사 셋, 여자의사 하나로 짜여있다. 닥터 캐머론(제니퍼 모리슨 역)이 유일한 여의사지만, 10화까지는 어떤 연애의 싹도 보이지 않았다. Grey's Anatomy였다면 10화에 이를 동안 여러 경우의 수를 보여줬을 텐데 말이다. 물론 13화인가에서 닥터 캐머론이 단도직입적으로 하우스 박사님께 자신의 마음을 어렵사리 고백하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는" 이 괴짜 박사님은 어린 부하 의사에게 난 안 좋아해! 하고 말을 자른다. (눈빛은 거짓말을 한다만. 향후 에피소드 전개에 따라 이 이야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둘째, 앞서 의학드라마의 CSI 판이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 에피소드에 새로운 의학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House는 굳이 매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지 않아도 크게 방해받지 않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한 회 한회가 완결성을 가진 독립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의사 양반들이 흰 가운을 벗어놓고 환자의 병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환자의 집으로, 집 주변으로 마구 찾아 다닌다. 무단 잠입도 불사하며 병인을 찾는 그들의 노고는 CSI 수사팀에 맞먹는다. 셋째, 팀단위로 움직이긴 하지만, 타이틀 롤인 하우스 박사님의 순발력과 집중력이 치료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다리의 고통을 잊으려고 먹는 진통제에 중독 된 하우스 박사님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자신의 치료 이유를 설명하는 것엔 인색하지만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남겨둘 뛰어난 의사로 그려진다. (지팡이와 약물 중독이란 점은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혼자 추측해 봄) 게다가 이 의사 선생님은 뛰어난 인문/예술 소양을 갖춰서 단테의 싯구를 예사로 읊고, 피아노 연주에 능하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수염은 덥수룩하고, 일견 왜소해보이는 하우스 박사님이 그 파란 눈동자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젊은 닥터 캐머론이 반할 만도 하지.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이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병인을 분석하고 해결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본 의학 드라마들이 그저 장소만 병원을 빌어 권력을 향한 정치, 경쟁, 혹은 동료애나 사랑,인생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병원'드라마에 그쳤다면 House는 의사가 병원에서 업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근사하고 세련되게 보여주는 진정한 '의학' 드라마이다. 증상을 보고, 여러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물론 이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딘까 질척거리고 어리버리한 의사들이 벌이는 연애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2007년 시청자에게 새로운 맛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House의 미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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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왕 이렇게 된 것 한국 병원드라마의 계보도도 그려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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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07/09/14 10:45

    오옷 잼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의학드라마 보다보면 의대를 갈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더라고요. 진짜 최근에 진지하게 의대친구에게 물어봤는데, 절대 하지말라고, 나는 니 삶이 제일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남들 삶이 부러워뵈는 건지. 의대애들은 인문학하면 고상하게 사는 줄 알아요 참.. 뭐, ER보다는 '고상'하려나... 고상이라... ㅡ.ㅡ;

  2. 서구의학 2007/09/14 19:23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그레이 아나토미> 밖에는 없지만 덕분에 다른 미국의 의학드라마에 대해서도 좀 알게됐네요..궁금해지기도 하고..시간날때 봐야겠어요.^^

    그런데요, 서구의학이라는 것...근대과학이라는 것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회의'가 많이 들어서요...'증상을 보고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물론 저도 병원에서 '연애질'만 하는 드라마들, 싫어합니다-그게 모두 '의학'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근대의 인간, 또는 서구의학의 '오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도 인간이라 실수 많이 하고요, 증상의 원인이라는 게 굉장히 복합적이어서 의학적 접근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요..(그게 묘하게 미국인들의 '오만'과 겹쳐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위에 말했듯, 연애질로 점점 흘러가는 것에는 저 역시 불만이 많았습니다만, <그레이 아나토미>에도 미덕은 있지 않았나 생각했지요. 그곳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요. 주인공들은 절대 안죽지만...삶이란, 인간이란, 인생이란...꼭 의학지식,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매 주제별로 병원내의 환자/의학관련 에피소드와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의 접합부분들을 통해 보여준 것. 그런 점은 꽤 흥미로웠거든요.

  3. BlogIcon 하이腦 2007/09/18 15:19

    /기인/ 난 가고싶어도 의대 쪽 재능은 전혀 없기 때문에 못 가. ㅎㅎ 근데 내가 주변 사람을 보건데 의사들만큼 자기 연민이 강한 직업인도 없는 것 같음. 꽤 괜찮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면서도 스스로를 측은히 여기는...ㅋㅋ 차라리 하우스 박사님처럼 오만한 게 더 좋음. 대놓고 똑똑한 사람.

    /서구의학님/ 말씀하신 것처럼 대놓고 '오만한' 것이 하우스의 강점이예요. :) 깔끔하게 오만한, 냉철한 하우스식 진단법/치료법. 참, 저도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아주 좋아해요!! ^^ 연애질에 질릴 만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중독성이 있어서요. 각 드라마마다 따로 글을 쓰고싶을 정도로 저 세 병원드라마 각각의 매력이 있죠. <그레이즈 아나토미>는 따뜻하지요..서로에게 연민을 갖는.

  4. 2007/09/18 20:20

    응~ 근데 진짜 의사들도 불쌍하기는 하죠. 그레이즈 아나토미 보기 시작했는데, 제가 심리검사에서 '여성적' '심리적'이라고 나온 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프리즌 브레이크나 24시 같은거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서사만 있고..
    저는 심리묘사가 좋은 거 같아요 :)

    근데 실제 의학도들 자신도 서구의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신체란 사회 구조와 같이 중층결정이 되 있어서, 하나의 병도 실제 그 원인을 알아서 치료한다기보다는 대증요법식이 많죠.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증상이 날때 이런 치료를 하니까 먹혔더라 정도. 개연성 정도.. 백인-남성중심성도 문제가 있고..
    등등이 이게 서구의학의 현단계적 인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의학드라마는 이런 경향보다는 누나말대로 '탐정식-근대과학적 인식'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ㅎㅎ

    ㅎ 아나토미 끝나면 하우스도 볼께용 :) 이런 드라마 소개 좋아요. ㅋㅋ
    누나 땜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한두개가 아니네요 룰루~ ^^*

  5. BlogIcon heine 2007/09/21 11:48

    hehe I'm so flattered, 긴. 근데 시즌1까지 보고 나니까 몇 가지 수정해야 할 이야기도 있어. 역시 love line 없인 드라마의 감동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시즌1 마지막 두 회에선 하우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져.

슬램덩크와 안 선생

2007/09/04 00:46 | Posted by 하이腦

개강을 앞두고 <슬램덩크>에 몰입해서 결국 사흘만에 서른 한 권을 다봤다. 주로 남발하는 대사들이 "나는 천재니까" "절대 질 수 없어!" "반드시 해낸다!"류지만, 스포츠 만화니까 당연한 거겠고, 그 대사가 유치하게 들리지 않을 만큼 치열한 경기들이 이어져서 거의 18년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여전히 생생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만화다. <노다메>에도 감동했지만, 스포츠를 다룬 만화/영화 등이 갖고 있는 특유의 승부 드라마는 참 감동적이다. 난 늘 그들의 승부근성이나 연대감에 마구마구 동감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고 보면 <미스터 초밥왕>도 승부가 있는 휴먼 드라마구나. 쇼타가 별로 안 잘 생겼다는 게 흠. ㅋㅋ) <슬램덩크>엔 귀엽고 깝죽대는, 그러나 사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강백호와 자기중심적 천재 플레이어 서태웅, 고릴라 채치수,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정대만, 그리고 송태섭 등이 주축이 대는 것 같지만 (여성인물들은 너무 부수적이다. 그저 예쁜 얼굴로 남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그네들...뭐 부럽단 얘기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렇게 예쁠 수 있었음 얼마나 좋았겠수.. 스포츠팀 매니저는 아무나 하나요? 한나씨도 소연이도 다 너무 예쁜 걸. 사실 소연이는 내가 중학교 때 가장 되고싶은 이상향이었는데.) 안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스포츠 만화에 불과했을 것 같다. 별로 말도 없고, 안경 유리면만 그려서 눈동자도 잘 보이지 않는 켄터키 할아버지 같은 감독님이지만, 사실 그가 선수들에게 조언을 하고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내가 꿈꾸는 멘토의 이상이시다.

썰은 길었는데, 사실 안 선생님의 이런 저런 이미지들을 꼭 정리해보고 싶었다.

▽ 미국으로 건너간 제자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 안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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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웅의 미국 유학 바람을 막고, 더 성장할 것을 독려한 안 선생님.
나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있음 좋겠어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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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만화다운 커멘트지만 감동적 울림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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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빙긋-웃어준다. 아 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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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권을 끝낸 후 <에필로그>에서 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이 만화를 집필하던 당시 농구만화는 전무했다고 하는데, 내가 이 만화를 보던 90년대 중반 한국은 정말 농구의 전성시대였다. 만화가게에 가서 <슬램덩크>를 빌려보고, 티비를 켜면 <마지막 승부>와 연대와 고대의 대학전, 그리고 농구대잔치를 볼 수 있던 그런 시대였다. 우지원, 이상민, 서장훈, 현주엽을 필두로 하는 대학팀과 다 늙은 허재와 한기범 등의 기아군단 등이 함께 버무러져서 뛰던 던 시대였다. 삼성과 연대의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열렬히 연대를 응원하던 때가 떠오른다. 실업팀과 대학팀이 분리되면서 농구에 대한 내 관심도 점차 식었는데, 이 만화를 보면서 다시 그런 90년대 감수성의 농구가 부활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미국식 농구인 쿼터제가 들어온 게 아직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슬램덩크>를 보면서 딱 한 번만이라도 전후반제 경기를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안 선생님 얘기로 시작해서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새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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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첸씨 2007/09/04 05:03

    재밌게 읽었네요. <슬램덩크>와 <노다메>의 유사성... 그 주인공들이 소년-소녀들이라서인지 일본인이어서인지...

  2. BlogIcon Gore 2007/09/04 23:40

    왼손은 거들 뿐.

  3. heine 2007/09/05 19:27

    맞아요. "왼손은 거들 뿐"도 참 멋진 대사 중 하나.

  4. BlogIcon 2007/09/05 21:00

    입술은 뽀뽀 뿐이라는 대사도 멋졌죠 :)
    이건... 슬램덩크가 아니었나? ㅋㅋ

  5. BlogIcon 2007/09/05 21:02

    당신은 방구 뿡
    이라는 대사도 괜찮은 듯 ㅋ
    나도 방구 뿡
    너는 밥 먹었냐?
    나는 밥 먹었다
    왜 사냐건 웃지요

    등.. 헐.. 강백호의 진지한 표정을 생각하면서 대사를 치니, 대충 다 웃기군요. ㅋ

  6. BlogIcon 2007/09/05 21:07

    캬 근데 다시 슬램덩크 찾아보니, 앙숙이던 서태웅과 강백호가, 서태웅의 패스를 받은 강백호가 점프 슛을 한 후 서로 손을 타치하는 장면은 진짜 감동이네요.
    서태웅의 예전 지혼자 잘난척 슛과, 강백호의 피나는 연습 등을 생각하면..
    캬.. 진짜 감동만화였는데. 헐헐..

    당신은 방구 뿡!

  7. 그러고 보니 2007/09/08 09:52

    스포츠 중계를 지뢰밭처럼 피해가는 제가 농구중계를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 글을 읽다가 번개처럼 떠올랐어요.
    코트 안과 밖에서 잘난 척하는 서태웅이 어찌나 멋지던지...
    오랫만에 회상에 젖어보는 흐뭇함 ^^

Gilmore Girls

2007/09/04 00:19 | Posted by 하이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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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어씨네 여자들과 나이 먹어가기
<길모어 걸즈/Gilmore Girls>가 시즌 7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드라마의 한 시즌은 얼추 한 해가 되니, 일곱 해가 지난 셈이다. 여러 해 간격을 두고 연작이 이어지는 영화 시리즈를 봐도, 영화를 본 시기를 기준으로 듬성듬성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연속으로 몇 해를 두고 이어지는 드라마는 등장인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특권을 제공한다. <길모어 걸즈>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갔던 시기에 처음 만났던 드라마였던 만큼, 이 드라마의 마지막을 보는 느낌은 마치 정든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주인공 로리 길모어가 열 여섯에서 스물 둘이 되는 사이에, 나 역시 여섯 살을 더 먹었고.  시즌 7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레인과 로리가 현관 의자에 앉아 흘러간 옛시절을 돌아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목요일 밤 <길모어 걸즈>를 보기 위해 결국 기숙사에서 티비를 대여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2001년부터 2007년 사이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어찌 됐건 새로운 매체의 발달로 한국에서 시즌 1부터 7까지 꼼꼼하게 챙겨볼 수 있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온스타일이 길모어 걸즈를 해주다가 시즌 4인가 부터 불규칙하게 방영 편성을 짜서 그걸 찾아 보느라 무지 애먹었던 기억이 나는고나. (2007년 9월 현재 온스타일에서 <시즌7>을 방영중이다.) 대학원 숙제를 쌓아놓고도, 길모어걸즈 하는 시간에 티비 앞에 앉아있었으니. 크흣.


길모어 걸즈의 매력: 미혼모에 대한 새로운 정의
흔히 가족물로 구분될 수 있는 이 드
라마의 미덕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암울하게 그려내는 미혼모 이야기를 유별나게 밝게 그려냈다는 점일 수 있다. 시즌 1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상당히 우울할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게 썼구나!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타즈 할로우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 열 여섯 살 차이나는 모녀간의 아기자기한 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정말 귀여운 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놀라운 입담 (정말 위트있는 대사가 압권! 대사의 여왕!) 똑똑한 세상 비평, 그리고 은근히 재밌는 프렙스쿨, 예일 대학교 이야기 (이건 현실감이 떨어지지만,그래도 재밌는 드라마 요소) 등 이야기는 특별히 큰 사건없이 흘러가지만, 그래서 더 옆집 사람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재밌다. (of course I have to admit that season 6 was the major pitfall--which was the most tedious episode ever in Gilmore Girls!)

Socally Liberal, Fically Conservative
열여섯 살에 미혼모가 되어 사립학교(prep school)을 중퇴해야 했던 로렐라이는 보험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아버지의 집을 나와서, 스타즈 할로우에 정착한다. 아이의 아빠가 되는 사람도 자신과 같은 사립학교의 학생이고, 양가 부모 모두 "차라리 결혼을 해!"하고 주선을 하지만 "독립적"인 로렐라이는 혼자 힘으로 스타즈 할로우의 헛간 한 칸을 빌려 아이를 낳고, 서빙과 같은 일을 통해 결국 자기만의 inn의 사장님이 되신다. 여기까진 어떻게 미국 상류계를 거부하고 탈출한 자칭 타칭 민주당 지지자의 자수성가기였다면, 그녀가 열여섯 살에 낳은 딸 로리가 열여섯살이 되어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프렙 스쿨을 다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즌1의 시작점이 여기다. 로렐라이의 과거는 일곱 시즌에 걸쳐 천천히 회상되고, 회고되고, 반복되어 설명된다.) 여인숙(inn)의 주인으로서 (사실 굉장히 예쁜 모텔인데, 한국말 번역어가 마땅히 안 떠오른다.) 잘 살던 로렐라이 입장에서 딸의 비싼 학비를 댈 수 없던 게 문제였다. 그간 연을 끊고 살던자신의 부모에게 결국 돈을 빌리기로 하고, 그들과 연락을 시작한다. 학비 지원에 대한 거래로 매주 금요일 formal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앞서 말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로리와 로렐라이의 유머와 적당한 조롱에는 약간 수상쩍고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 드라마가 전개 되면서 이들의 윤택한 유머와 여유의 이면엔,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조롱당하고 상처 받는 공화당 지지자로 추정되는 Gilmore씨의 돈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려고 시즌 5인가 6에서는 로리의 아버지인 크리스토퍼가 유산을 상속받아서, 딸 로리의 예일 대학교 등록금을 다 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크리스토퍼의 할머니 돈이나 길모어 아저씨의 돈이나 다 거기서 거기가 되어버린다. 소설 <Prep>에서 이런 사립학교를 다니는 한 남학생이 스스로를 "사회적으론 진보적이고, 재정적인 면에선 보수적"(Socially liberal, fiscally conservative)라고 일컫는 것처럼, 길모어 가문의 2-3대 여자들은 사회적으론 적당히 진보적이고, 재정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선택을 일삼는다. 뭐 재밌게 봐놓고 이제 와서 문제 삼는다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Rory's Bookshelf
사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된 건 로리가 제법 영리한 독서 목록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 외에도 워낙에 책에 빠져지내는 아이다보니, 그런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많았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로리가 읽는 책 리스트를 정리해서 올려놓은 것을 보고, 사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사실 이 드라마를 통해 난 Dorothy Parker를 사서 읽었기 때문에 고맙기도 한 책이다. 보고 즐기기에 재밌으면서도, 적당한 지적 만족감을 주는 교육적 기능도 갖고 있는 드라마다. 한국에서 이만큼 위트있는 대사를 가진 드라마를 찾기 힘들었던 만큼, 이 드라마는 꼭 소장해놓고 두고 두고 보고싶은 드라마다. 물론, 이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은 당연 재밌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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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아... 2007/09/04 08:50

    이 드라마 함 보고싶군요~비교하긴 어렵지만, 김수현 드라마도 약간씩의 새로움이 있으면서도 늘 꼭 '재정적으로는 보수적'입니다. 꼭 부자, 재벌이 등장하죠. <불꽃>의 차인표네 집안, <내남자의 여자>의 김상중네 집안, <부모님 전상서>의 허준호네 집안, <사랑과 야망>의 전노민네 집안 등... 물론 그들이 모든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고, 다른 드라마들의 천편일률적인 재벌들과는 다른 '살아있는' 인물들로 그들의 삶도 그린다는 점에서 다르지만요.

    • BlogIcon 하이腦 2007/09/04 15:58

      아마 재정적으로까지 진보적이기엔 드라마 작가도 드라마속 인물도 피곤한가 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대사 특성을 혹자는 김수현의 것에 비교하지만, 김수현 드라마의 통속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여서 전 그 비교는 귀담아 듣진 않았어요. 김수현 드라마는 꼭 회장님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 부분은 재밌는데, 그런 회장님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도리어 회장님네 가정을 꽤 괜찮게 그려내는 편이라는 게 <길모어 걸즈>와의 차이 같네요.

  2. 열심히 보다가 2007/09/04 15:48

    모녀의 수다가 재밌어서 한 때 열심히 보던 드라마였지요. 한국인 가정도 나와서 나름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었는데, 딸한테 미친듯이 집착하고 보수적인 굉장히 스테레오 타입화된 동양 가족으로 묘사되서 살짝 기분 나쁘더군요. 게다가 너무 똘똘하고 이쁜 애들이 자꾸 나오니 (로리 똘똘한 것은 그렇다쳐도, 루크 딸까지 천재스런 아이가 나오다니...) 위화감도 느껴지고, 돈 많은 것두 그렇구. 한때 중독되어서 보다가 점차 투덜거리며 안 보았는데 끝났군요. 결말이 우찌되었는지 궁금스럽슴다.

    • BlogIcon 하이腦 2007/09/04 15:56

      정말 모녀의 관계 설정은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인데, 갈수록 구린 요소들이 그 강점을 감춰버리죠. <열심히 보다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인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좀 심해서 그게 굉장히 거슬리죠. Lane네 가족들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어딘가 cult 풍이 풍기는...으로 묘사되는 게 괴롭죠. 결말은 나름 열린 결말이긴 한데요. 시즌 6에서 끝맺을 걸 너무 오래 끌어서 지지부진한 느낌도 있었죠. 시즌 6-7에서 로리가 사귀는 로건이란 캐릭터도 사실 더 이야기를 했어야 하긴 하는데...로리가 로건의 청혼을 거절하는 게 나름 liberal한 톤을 유지하려고 앴느 흔적이라고 저는 보았답니다.

Jodi Picoult, 대중소설의 공식

2007/08/04 09:30 | Posted by 하이腦
Beyond Airport L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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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경로는 참 다채롭다. 믿을 만한 사람들의 추천을 받거나 (한국 소설은 꼭 국문과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읽는다는 등),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는 책은 궁금해서 찾아본다거나, 좋아하는 잡지의 서평에 실린 책은 무모하게 사보거나 하면서 새로운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Jodi picoult의 작품은 상당히 특이한 경로를 통해 만났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서점에 들렀는데, 책장 한 줄이 다 이 작가의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같은 영어판 문고본이라 할지라도 영국 쪽에서 출간된 것이 표지가 더 예쁘다는 걸 깨달으며, 피쿠? 피코? 삐꾸? 되뇌이며 그 책장 주변을 맴돌았다. (정확한 발음은 '피코-오'란다) 그러나 작가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예쁜 표지 디자인이 주는 강렬한 유혹 속에도 꿋꿋이 버텼다. 그리고 영국 여행을 하며 들어가 본 모든 서점에 또 진열되어 있는 그녀의 책을 보며, 이제는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누군데 저토록 홍보가 잘 되어서 어딜 가나 이 책이 보이는 걸까?

결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궁금해서 사버렸다.
궁금해서 사버리다니..홍보의 승리다. 눈도장으로 구애하는 책들에 져보긴 처음이네. 사실 교보문고에 들어와있는 문고판은 이 책과 The Pact, The Tenth Circle 이렇게 세 권이다. 세 권을 놓고 망설이다가 다 배경만 다르고 상실, 사랑이란 이야기란 걸 알고 제일 싼 걸 골랐다. (사실 Tenth Circle에 손이 마구 갔지만 비싸서 다음을 기약했다.) 통속소설을 고르는 방법이랄까?

뒷표지 광고는 이렇게 나온다. "In Second Glance, best selling author Jodi Picoult tells an evocative story entwining drama of the heart's redemption with the disturbing history of eugenics." (베스트 셀러 작가 조디 피코가 내놓은 『두번째 시선』은 영혼의 구원과 우생학의 끔찍한 역사를 엮어놓은 환기성 이야기이다.) 사실 511쪽을 다 읽고 나니 이 한 문장이 모든 걸 포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조디 피코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두터운 소설을 반드시 읽게 만든다! 한 번 펼치고 나면 쏙쏙 빨려들어간다. 우생학자의 딸이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 그녀의 죽음에 뒤따르는 타살 의혹, 네이티브 어메리칸(인디안)에게 실시했던 불임시술들, 그것을 뒷받침했던 1930년대 우생학 이론들. ....게다가 유령을 좇는 사람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가 이리 저리 조합되어 상당히 잘 읽히는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워낙 쑥쑥 읽히던 소설이라 줄거리를 요약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야!'하는 꼴이 되어버릴까봐 자제 중.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범인을 잡는데 촛점을 맞추기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그리고 상당히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가는 데 촛점을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코 역시 자신의 인물들이 왜 이런 상실감과 오해를 갖고 살아가는지를 상당히 세세하게 풀어낸다. 물론, 풀어가는 대목에서 진부함을 느끼기도 하고, 지나치게 길구나! 란 생각을 하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읽게 된다. 특히 유령세계와 인간세계가 만나는 장면은 은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guilty pleasure) 그런 점은 The Pact의 진부함과 예측가능성을 넘어선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The Pact는 80쪽 가량 남겨놓고...아쒸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란 생각을 하며 접어버렸다. 곧 이 책에 대해서도 써야지.)

거의 일 년에 한권을 써낼만큼 마흔 살의 작가가 지금까지 열세권의 책을 썼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피코는 자기만의 공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점은 <옵저버>지의 한 필진이 잘 써놔서 그대로 옮겨본다.

1. 엄청난 분량의 사전 조사
2. 범죄물이나 칙릿이 아니라는 점-->인간의 내면을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하려고 노력.
3. 논쟁이 될 만한 소재를 찾아낸다. 자극적 소재를 찾는 데 능하다. 정말로!

Sunday April 15, 2007

The Observer

What's really strange about the Picoult phenomenon is that these are bestselling novels which are neither ditsy chick lit nor doughty police procedurals. Instead they're heavily researched stories centred on subjects one might have presumed few would choose to read about, and even fewer would choose to read about over 500 pages of dense type.


Picoult has a formula: choose a subject which is soon to become controversial and tell the story through a rotating cast of characters. Stem cell research, date rape, domestic violence, sexual abuse, teenage suicide - here are some of the knottiest moral issues of our times sandwiched between the soft-focus covers of what is commonly dismissed as an airport novel.

이 대목에서 진짜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공식을 잘 조합해서 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소설가들에게 '공항 소설'이란 명예롭지 않은 별명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내가 그녀를 발견한 곳도 공항이었는데, 공항소설이면서도 공항소설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피코의 노력은 존경스럽기도 하다. 무조건 공항 소설이라고 폄하하면 우습겠지만, 이런 책을 몇 권 읽고 나면 영문과 내에서 '규정해주신' 리딩 리스트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걸 보면 가끔씩 머리 식히는 용도로도 좋을 것 같다. (혹시나 해서 JSTOR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았지만, 피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런 장르에 대한 무관심. 이시구로 가즈오는 꽤 언급되는데...)

영국 통속작가들 읽기는 계속 이어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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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4 13:10

    오오.. '공항소설' 예전에 '철도소설', 철도여행의 발달과 함께 미스테리 소설이 잘 팔렸는데..
    '공항소설' 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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